"나도 당했다" 가짜가 판 치는 '부동산'…정부가 손 놓은지 '26년'
[편집자주] 국민들의 '살 권리'가 위협받는다. 전세사기 같은 불법거래는 대부분 관계당국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서 벌어진다. 국내 부동산시장 거래의 절반 정도는 직거래, 이 중 상당수는 무늬만 직거래인 '불법·무자격 중개'다. 규모에 비해 미성숙한 부동산 시장의 민낯이다.
12일 머니투데이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1월~2024년 8월 34개월 간 국내 부동산 거래는 총 318만6963건 이뤄졌다. 이중 중개거래의 비중은 54.2%(172만8659건), 직거래 비중은 45.8%(145만8304건)였다. 해당 기간 거래대상별 직거래 비중은 △아파트 11.7% △분양권 16.4% △오피스텔 30.9% △연립다세대 31.9% △공장창고등 41.2% △단독다가구 43.8% △상업업무용 53.9% △토지 76.0% 등이다.
공인중개 업계에선 직거래 중 90% 이상이 기획 부동산, 부동산 컨설팅 업자 등의 불법중개 또는 '무등록 공인중개사'가 주도한 거래일 것으로 추산한다. 무등록자는 실거래가 신고를 하지 않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개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직거래가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주택 임대차, 특히 월세에 국한된 것으로, 매매거래가 직거래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불법·무등록 중개를 잡아낼 시스템이 없어서 모두 직거래로 통계가 잡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거래대상에 비해 투명성이 높은 아파트·분양권 거래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직거래 비중이 낮았다. 그럼에도 해당 기간 중 아파트 11만6939건, 분양권 1만7380건의 직거래가 이뤄졌다. 아파트 시세가 높아지면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거래를 택하는 사례가 나온다. 직거래 가격이 중개거래 가격보다 낮은 경우가 많은데, 최대 77%에 달하는 양도세를 아끼기 위해 '다운계약' 등 편법 거래에 직거래가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피스텔과 연립·다세대주택, 단독·다가구주택은 10건 중 3~4건이 직거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대상 주택은 대부분 '직거래'로 분류된다. 당시 집주인을 사칭한 사람이 개업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세입자와 직접 전세계약을 맺은 후 잠적하는 등 사기수법이 활용됐다.
토지 거래는 4건 중 3건이 직거래였다. 토지거래는 대부분 지방 군단위에서 이뤄지는데, 논과 밭, 임야, 잡종지 등 '시골 땅'이 많다.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많지 않은 지방에서 공인중개사가 아닌 지역 유지 또는 컨설팅 업체가 무등록 중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이유로 직거래 비중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무등록 중개 관리·감독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입수한 지난해 '공인중개사무소 개설등록을 하지 않고 중개업을 하는 미등록중개사를 고발·수사의뢰 등 조치한 내역' 자료에 따르면, 조치내역은 지난해 전국을 모두 합쳐 169건에 그친다. 지역별로 △경기 42건 △서울 37건 △경북 18건 △인천 10건 △충남 10건 △부산 9건 △경남 9건 △세종 8건 △대구 7건 △강원 5건 △충북 5건 △광주 3건 △울산 2건 △전남 2건 △대전 1건 △제주 1건에 그쳤다. 전북에선 조치내역이 전무했다. 올해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세사기와 시세조작, 불법전매, 다운계약 등 부정 거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강남 로또청약 현장 주변에선 '떴다방'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행정관청이 매년 일시단속을 실시하지만 무등록 업자들은 이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행정관청이 불법요소를 파악해 검찰에 기소를 요청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무등록 업자가 직거래로 처리하면 계약서 등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군·구청마다 겨우 1~2명이 관내 수천명의 개업공인중개사들과 불법중개 행위자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도맡고 있어 민원처리만으로도 힘겨운 현실"이라며 "부동산 거래 관련 불법행위는 지역 내 공인중개사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탐지할 수 있지만 현재 공인중개사협회에 조사·고발권한이 없어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처음에는 '빌라왕', '빌라신' 같은 일부 임대업자들의 일탈적 범죄라고 여겼지만, 전국적인 피해가 확인되면서 국내 부동산 중개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배경으로 떠올랐다.
특히 무등록·무자격자들의 불법 부동산 중개행위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불법 부동산 중개행위는 계약당사자가 아니면 실상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관리 부실로 무등록 중개업자들의 불법 행위가 만연하지만, 여전히 단속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과거엔 강력했던 현장 공인중개사 단속 시스템, IMF 이후 사라졌다
1986년 공인중개사협회가 설립된 이후, 협회는 행정관청·경찰과 협력해 무등록 중개나 불법 중개 행위를 단속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특히 현장에 있는 공인중개사들이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 무등록 중개, 불법중개, 시장질서교란 사범들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어 불법 행위를 빠르게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공인중개사협회가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협회가 불법 중개인들을 찾아 연결해주면 행정관청과 경찰이 조사하고 단속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1998년 IMF 경제 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정부는 규제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협회의 단속 권한을 줄였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투기 세력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하면서다. 이후로 공인중개사협회가 다시 단속 역할을 맡는 일은 없었다. 그 결과, 무등록 중개업자들에 대한 단속은 사실상 방치됐고, 현재도 그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현장 공인중개사들의 역할 약화, 단속 권한 부재
무등록 중개업에 대해 현재 시·군·구청에서 이뤄지는 단속은 '전시행정' 수준에 그친다. 담당 공무원은 겨우 1~2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수천 명의 공인중개사와 불법 중개업자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다른 행정 업무도 병행하고 있어 불법 중개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부동산 거래는 현장 공인중개사들이 가장 먼저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협회에는 조사나 고발 권한이 없다. 규제할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한 상태다.
불법 중개업자들은 계약서를 보관하지 않고, 직거래로 처리해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불법 요소를 발견해 기소 요청을 하려 해도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대부분 무혐의로 종결된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에게는 계약서를 5년간 보관할 의무가 있다. 반면 무등록 중개업자들은 그런 의무가 없다. 이런 이유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특정이 어렵고 결과적으로 단속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중개업계 관계자는 "수사의뢰를 해도 무혐의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단속이 나와도 불법·무등록 중개업자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던 건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불법 거래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는 것이다.
고질적인 불법·무자격 중개행위를 차단할 선제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단속 권한 부활과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재정비가 없다면, 불법 부동산 중개 행위는 계속해서 음지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현실적인 단속 체계와 효과적인 법적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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