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의 금융 상품화 어떻게 봐야 하나
[경향신문]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11층 높이의 나홀로 아파트 ‘삼성월드타워’가 최근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 사모펀드가 지난 6월 중순 이 아파트를 약 400억원에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삼성월드타워는 1997년 9월 준공된 46가구의 아파트로, 부동산 임대업을 해온 A씨 일가의 공동 소유였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매입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에 신규 공급할 주택부지가 없는 가운데 기관투자자가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로 노후 건물을 매입·리모델링해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하지만 부유층이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를 피하는 우회로로 사모펀드가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 20일 페이스북에서 “강남 한복판에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가 일어나고야 말았다”며 “다주택 규제를 피하고 임대수익뿐만 아니라 매각차익을 노리고 펀드가입자들끼리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새마을금고중앙회가 이지스펀드가 정부 부동산 규제를 초과해 총 27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초과 대출금 회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23일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최근 한 자산운용사가 강남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대출 관련 규제를 어겼는지 여부가 제기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관계기관의 철저한 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도 전날 검찰에 사모펀드 등 금융자본의 부동산 불법 투기에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금융상품이 된 부동산의 단면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정부가 점검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이지스자산운용은 결국 지난 7월 23일 삼성월드타워 리모델링 사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본래 사업 취지를 불문하고 여러 오해와 논란을 불식시키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펀드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부동산 규제 회피 의혹에는 “사모펀드도 일반 법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세제 적용을 받으므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부동산의 금융상품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사모펀드가 업무용 빌딩이나 상가를 넘어 아파트 시장에까지 손을 뻗치려다 이번에 크게 데인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 강남과 한강변 같은 특정 지역의 주거용 부동산은 단기 시세차익이 그 어떤 자본상품보다 높다”면서 “기본적인 공급의 희소성에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해 되팔 경우의 차익에 주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투자자 모집 인원은 개인과 법인을 포함해 49명 이하이고, 1인당 최소 투자금액은 1억원 이상이다. 50인 이상의 투자자를 공개 모집하고, 공시와 회계감사 의무가 있는 공모펀드와 차이가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삼성월드타워 매입 시점을 볼 때 사모펀드를 이용한 부동산 매입의 절세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도 있다. 자산운용사가 펀드로 매입하는 자산은 취득세율과 재산세, 종부세에서 일부 감면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전과 다른 강한 규제에 놓이게 됐다. 6·17대책으로 내년 6월부터는 법인소유주택에 대한 종부세율 최고세율이 최고 4%로 인상된다. 개인에 대한 종부세율 가운데 최고세율을 법인 부동산에 적용한 것이다. 법인 보유 주택에 대한 종부세 6억원 공제도 폐지되고, 주택 매매·임대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LTV)도 전면 금지된다. 7·10 대책으로 법인의 취득세율은 3주택 이상 다주택을 소유한 개인과 같은 12%로 대폭 인상됐다.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만들어야”
업계는 각종 규제로 수익성이 떨어진데다 정부의 점검 지시가 내려온 만큼 사모펀드의 주거용 부동산 매입이 한동안 되풀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주거용 부동산은 주거권이 달린 필수품이라는 점에서 일반 사무용 부동산과는 사회적 민감도가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며 “강남이라는 조건에 통째로 나왔기 때문에 매매가 이뤄진 것인데 이런 조건을 갖춘 매물을 찾기도 쉽진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펀드를 활용한 부동산 간접투자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이 직접 부동산을 구매하는 직접투자에 비해 시장 과열 효과가 작기 때문이다. 함영진 랩장은 “주택이 자본재가 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우린 너무 강해 문제가 됐지만, 공모형 펀드로 바꿔서 누구나 투자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만든다면 굳이 30~40대가 ‘영끌’해서 부동산 시장에 들어오는 일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자산운용 전문가는 “법인이나 개인이 몇십채씩 갖고 있는 건 시장에서 팔기 어려운데 규모 있는 사모펀드가 매입해 리모델링을 한 후 판매하면 공급을 늘리는 긍정적인 시장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모펀드가 주거용 부동산 매입에 본격적으로 달려들 경우 주택가격 상승의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 사모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397조원에 달한다. 2009년 말 108조원에서 거의 4배 성장한 것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고액 자산가, 기금, 법인의 자금이 사모펀드로 몰리면서 덩치가 커졌다. 이렇게 몸집이 커진 사모펀드의 돈이 최근 부동산 시장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
민주당은 사모펀드의 주거용 부동산 유입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7월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상 최대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유입해 집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세제와 법의 방파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하루빨리 7·10 대책 후속 입법을 완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사모펀드가 돈을 모아서 호텔·건물의 수익 모델을 만들 수는 있지만, 아파트 매입을 통해 부동산 투기라는 틈새시장에 들어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는 틈새시장이나 풍선효과를 규제하기 위한 ‘핀셋 대응’보다는 일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계속해서 구멍을 찾아내는 핀셋 규제보다는 법인이든 사모펀드든 어떤 주체가 들어와도 불로소득이 안 생기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보유세 강화를 요구했다. 재정개혁특위에서 활동했던 구재이 세무사는 ‘부동산 시장 감시기구’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세무사는 “세제로 사후에 막을 순 있지만, 사전적으로 투기를 유발하는 취약점을 없애도록 부동산 시장에서 금융감독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감독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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