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전세가율 90% 육박 '미친 전세'..이러다 매매가 뛰어넘을라

2014. 2. 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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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전셋값이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90%에 달하는 단지가 속속 등장했다. 과거엔 봄가을 이사철과 방학 같은 특정 시기에만 전셋값이 급등했지만 이젠 성수기, 비수기를 따질 겨를이 없다. '00주 연속 전셋값 상승세'라는 뉴스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셋값을 잡겠다며 전세대출에 목을 맸던 정부도 전세 수요를 아예 월세 수요로 전환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민간법인이 주택을 지어 월세로 임대할 경우 세제 혜택을 주고 월세 소득공제를 늘리는 등의 대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치솟는 전셋값을 잡는 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래미안 2단지 전용 59㎡(24평) 아파트 매매가는 3억7000만원으로 1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동안 전세가격은 2억3000만원에서 3억원까지 올랐다. 전세가율만 81%에 달한다.

"2012년까지만 해도 어렵게 전세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하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최근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아예 결혼을 미루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더 이상 전세대출금을 늘리기 어려운 세입자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전셋값이 저렴한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세가가 매매가의 절반 정도였는데 지금은 비정상적이다. 봄 이사철이 다가오지만 전세 매물은 없어 전세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이러다 매매가와 비슷한 전세 물량이 쏟아질까 겁난다." 길음뉴타운 A부동산중개업소 대표 얘기다.

매매 시장 회복해야 전셋값 안정

강남권 전셋값 상승세도 심각한 수준이다. 반포 대표 아파트 단지로 꼽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래미안퍼스티지의 경우 공급 113㎡(34평) 전셋값이 9억5000만원을 넘어 10억원에 육박한다. 3.3㎡당 전셋값이 3000만원을 넘어 웬만한 강북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같은 평형 매매가가 13억원 정도로 떨어진 걸 감안하면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3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반포동 B중개업소 관계자는 "아무리 전셋값이 올라도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돈 없는 사람이 전셋집에 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전했다.

심지어 전세가율이 90%를 넘는 단지도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주공5단지 전용 76㎡(28평) 아파트는 집값 3억6000만원에 전세금이 3억3000만원이다. 전세가율 92%. 전셋값에 3000만원만 더 주면 집을 살 수 있다.

전셋값 상승세는 비단 몇몇 단지에 그치는 현상은 아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1월만 해도 58.9%였던 전국 평균 아파트 전세가율이 올해 1월 65.3%로 상승했다. 서울, 수도권 전세가율도 높지만 광주, 대구 등 지방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지역별 전세가율 통계를 보면 광주광역시의 평균 전세가율이 78.3%(올 1월 기준)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대구 전세가율 역시 75.8%로 뒤를 잇는다. 광주, 대구 외에도 전국적으로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선 지역이 수두룩하다. 경상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대전, 충청남도, 충청북도 역시 70%를 웃돈다.

서울은 지난해 1월 전세가율이 53%에서 올해 1월 60.4%로 올랐다. 평균치로 보면 전국 다른 시도보다 높지 않지만 단지별로 보면 상황이 다르다. 서울에서 전세가율이 90%를 넘어선 가구는 강서구 158가구, 서초구 89가구, 동대문구 60가구 등 총 553가구에 달했다.

아파트 전세가율만 오른 건 아니다. 서민, 중산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빌라, 연립, 다세대주택 전세가율도 급등하긴 마찬가지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서울 강남권의 연립주택 전세가율은 60.2%를 기록해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60%선을 돌파했다. 강북보다 집값이 상대적으로 비싸 전세가율이 낮았던 강남권 연립주택마저 전셋값 상승 대열에 동참한 셈이다.

집값은 하락하는데도 전셋값이 오르는 기현상이 초래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최근 몇 년 새 실수요자들의 전세 선호도가 높아진 데 비해 전세 매물은 부족하다 보니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의 수급 불균형이 일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하락하면서 투자 상품으로서의 부동산 투자 매력이 떨어진 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심지어 주택 구매 여력이 있어도 전세 살기를 희망하는 '자발적 전세 수요'가 증가한 것도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과거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 주택 구매로 갈아타려는 매매 전환 수요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심리 탓에 자발적 전세 수요가 급증했다. 반포래미안퍼스티지를 비롯해 30평 기준 10억원을 넘나드는 고가 전세 매물도 씨가 말랐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전세 수요는 늘어나는 데 반해 전세 공급 물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은행 금리가 높은 시절에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받아 다른 상품에 투자하면서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금리가 낮아 전세의 이점이 줄었다. 자연스레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전세 매물이 급감했다. 전세 수요는 늘고 매물은 줄어들다 보니 전세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2008년 이후 가계부채, 금융위기 불안으로 국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부동산 매매 시장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내집마련보다 전월세에 머무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셋값 급등은 당분간 지속될 우려가 크다. 서울 주요 지역 재개발, 재건축사업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주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서울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 가운데 사업시행인가 단계인 곳은 100개 구역, 9만6659가구에 달한다. 관리처분인가 단계는 32개 구역, 2만7980가구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기존 아파트 주민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인근 지역 전세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도 불안요소다. 보통 정비사업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1년 이내에 이주, 분양에 돌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2만8000가구의 이주 수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또 사업시행인가 단계에 있는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추진을 서두를 경우 이주 수요는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다. 올해 관리처분총회를 거쳐 이주까지 계획 중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개포주공2·3단지와 개포시영, 고덕주공2·3·4단지, 신반포5차, 반포한양, 과천주공1단지 등 1만2000여가구다.

이렇게 전세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데도 정부로서도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서민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저금리 전세대출을 늘렸지만 오히려 전세 수요만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전월세상한제는 오히려 전셋값 폭등을 부를 수 있어 대안이 아니라는 우려다. 이 같은 전셋값 급등이 지속될 경우 다른 나라처럼 전세제도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셋값 급등 현상을 잠재울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울, 수도권 일대에 대규모 주택을 지어 전세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처럼 1~2인 가구 주택 공급 대신 3~4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단기적으로는 전세난에 허덕이는 저소득층을 위한 전세금 대출제도를 활성화할 순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멀리 보고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때 월세 대신 전세 물량을 늘려 서민, 중산층에게 공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체가 미분양 아파트를 전세주택으로 활용할 경우 세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나온다. 한화건설이 지난해 11월 경기 김포 풍무지구 '한화 유로메트로' 520가구를 전세 전환으로 내놨는데 최근 계약이 모두 완료됐다.

부동산 매매 시장 회복이 근본적인 해법이란 얘기도 나온다. 경기 회복으로 매매 수요가 늘면 상대적으로 전세 수요는 줄어들어 전셋값도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부동산 거래를 막는 각종 세금을 줄이고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풀어 사업 속도를 높이면서 시장 회복을 이끌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서은내 기자 thanku@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44호(02.12~02.1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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