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 칼럼] 주택정책의 우선순위, 렌트푸어

2013. 8. 1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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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거 문제는 우리 국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가계자산의 4분의 3이 부동산에 쏠려 있다는 한 가지만 보더라도 '주택정책에 민심이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선거 때마다 주택 관련 공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주택정책은 그 효과와 부작용이 정권의 임기 5년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200만호 건설', '수도권 신도시 개발'의 최대 수혜자는 뒤이은 김영삼 정부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집값 문제에서 행복한 대통령은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 열풍이 사그라지자 건설경기 활성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서민경제는 좋아졌지만 그 부작용은 노무현 정부로 넘겨졌다. 투기 과열로 '강남불패', '버블세븐'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집값 잡기에 사활을 걸어야 했던 노무현 정부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다주택자 중과세, 종합부동산세, 분양가 상한제,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등 규제책을 잇달아 내놓고, '수도권 2기 신도시 건설'이라는 공급 늘리기도 병행했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이명박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라는 난제를 넘겨받았다. 양도세 완화 등 매매 활성화를 시도했지만 얼어붙은 시장을 녹이기에는 미력했다.

현 정부로 들어서도 '4·1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다. 후속조처로 내놓은 취득세 영구인하 방안은 국회에 묶여 있고, 지방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불만도 더해져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다른 재원을 마련해 지방교부금을 늘려 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복지재원 마련에도 빠듯한 정부로서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재산세와 종부세를 높이자니 매매 활성화라는 본래 취지가 실종되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책들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은 정책이 잘못되어서라기보다 주택시장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택이 더 이상 투자수단이 되지 못하면서 소유 필요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또한 주로 월세가구인 1~2인 가구 증가, 베이비붐 세대 은퇴,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매매 수요 자체가 크게 줄고 있다.

무엇보다도 매매에서 임대로, 전세에서 월세로의 지각변동이 시작된 진앙지는 금융이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는 예치이자율 10%를 웃돌던 때에는 번성할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2~3%대 이자율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전세를 놓던 임대인들로서는 전세가를 올려 이자소득의 차이를 충당하려 하든지 줄어든 이자수입만큼 월세로 전환하려 할 수밖에 없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됨에 따라 전세가가 요동치고 보증부월세(반전세)로도 불똥이 옮겨붙고 있다. 결국 렌트푸어로 불리는 세입자들에게 부담이 전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책의 우선순위부터 따져야 한다. 지금은 렌트푸어 보호가 가장 시급하다. 현 정부가 '목돈 안 드는 전세' 등 일련의 렌트푸어 대책을 내놓자 일각에서는 주택 매매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렌트푸어들이 받는 충격 완화가 더 시급하다. 그리고 '전월세 상한제 도입' 주장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게 하는 반시장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의 90%를 넘는 비정상적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필요한 것이 정부의 개입이다. 세입자들의 주거비 폭등은 가계부채 증대와 실질소득 감소, 소비 위축, 경기 악화로 이어져 경제 전체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주택정책은 헌법처럼 한번 정하면 바꾸기 힘든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정책의 우선순위를 선명하게 해야 한다. 주택시장에는 건설사와 입주자, 집주인과 세입자, 정부와 지자체 간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한쪽이 좋으면 한쪽은 손해 보기 마련이기에 어떠한 정책도 장기적으로 크든 작든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주택시장의 변화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렌트푸어를 보호하는 일이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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