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금고지기'를 턴다

엄민우 2013. 5. 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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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자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CJ 수사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순 없지만, 단순히 과거 사건을 들추려고 수사를 시작했겠는가"라며 "이렇게 수사를 한다는 것은 과거 수사를 보완해줄 퍼즐 조각과 같은 무언가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CJ그룹 관계자 역시 "일단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수사가) 딱딱 집어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검찰 수사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검찰이 CJ를 향해 전 방위 수사에 들어갔다.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편법 증여 관련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몇 번 칼집에서 칼을 빼내 CJ를 겨냥했으나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엔 사뭇 다르다. CJ를 압박해 들어가는 모양이 파죽지세다. 5월2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는 CJ 본사와 서울 쌍림동 제일제당센터, 장충동 경영연구소, 필동에 위치한 인재원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진 전 재무2팀장과 현재 관리 책임자인 성 아무개 부사장의 자택에서도 관련 자료들을 확보했다.

검찰이 5월21일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CJ그룹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수개월 전부터 "검찰, CJ 들여다보고 있다" 소문

한번 불붙은 수사는 쉼표 없이 이어졌다. 압수수색이 시작된 다음 날 검찰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과 CJ건설을 압수수색하고 CJ 재무 담당 성 아무개 부사장과 경영연구소 실무진들을 불러 조사했다. 말 그대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재계는 갑작스런 검찰의 강력한 압박에 크게 놀라는 모습이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일부 정치권 및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CJ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관측이 수개월 전부터 나돌았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과거 재무2팀장을 맡으며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이 아무개씨(44)가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검찰과 CJ의 악연은 이씨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씨는 CJ그룹에 입사한 지 3년 만인 2005년 그룹 자금팀장을 맡았다. 이 회장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자금은 차명계좌로 분산돼 관리됐다. 이씨는 이 자금을 각종 금융 상품에 투자하거나 주식 매매를 통해 차익을 얻는 업무를 수행했다.

이씨는 5년 전 'CJ 살인 청부'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장본인이다. 결과는 '무죄'였다. 판결문 등 재판 자료를 통해 당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이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자금 중 170억원을 전직 조직폭력배이자 사채업자 박 아무개씨에게 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박씨가 이 자금 중 80억원을 이씨에게 되돌려주지 않았다는 것. 이에 이씨는 조직폭력배 2명에게 박씨를 살해할 것을 청부하고 범행에 사용할 차량을 구입할 비용 등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들은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범행을 실행할 한 탈북자를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특수공작원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성명 불상의 탈북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집으로 들어가던 박 아무개씨의 머리를 스패너로 내리쳤다. 그러나 박씨는 살아남았다. 재판부는 당시 살인 청부 혐의에 대해 "이씨가 박씨를 살해하라고 지시한 바가 없고 그 밖에 폭력적인 방법을 행사하라고 시키거나 그런 행위를 하는 것에 동의한 바도 전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때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CJ의 비자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피해자(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이 드러남으로써 차명 재산 관련 세금만도 1700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납부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위 피고인(박씨)이 대여한 170억원은 위 전체 차명 재산에 있어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이씨의 비자금 파일을 확보해 계좌 추적을 벌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CJ측은 170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는데 국세청은 CJ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세무조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에선 이 점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었다. 최근 검찰이 국세청의 중수부라고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검찰은 이번 국세청 압수수색을 통해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납세 자료 및 부동산 보유 내역까지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2009년 검찰 수사망에 다시 걸렸다. 대검찰청 중수부는 천신일 세중나모회장과 이 회장 사이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검찰은 이 회장을 참고인으로 세 차례 조사하며 세무조사 무마 로비 혐의 입증에 힘썼다. 그런데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검찰 수사는 중단됐다.

이씨 입 열게 하는 게 비자금 수사의 관건

4년이 지난 올해 초 이재현이라는 이름이 또다시 세간에 오르내렸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에 대한 국세청 탈세 혐의 조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CJ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1422억원 규모의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며 비자금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검찰은 CJ에 대한 내사를 펼쳐오다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 등을 바탕으로 본격 수사에 들어가게 됐다.

이번 수사로 검찰과 CJ 간 악연의 시작점이었던 이씨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씨가 최근 형사 보상 청구를 했다는 점이다. < 시사저널 > 은 검찰이 본격적으로 CJ 비자금 관련 수사를 하기 약 한 달 전인 4월9일 이씨가 법원에 형사 보상을 신청한 사실을 확인했다. 형사 보상이란, 형사 피고인으로서 구금됐던 자가 불기소 처분 또는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국가에 보상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보상을 청구했던 그가 불과 한 달 만에 또다시 검찰 사정권에 들어온 것이다.

현재는 CJ를 떠나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씨가 압수수색과 출국금지까지 당한 것에 대해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에 깊숙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씨는 2008년 9월1일까지 씨앤아이레저산업 감사로 재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가 그만둔 후 후임을 맡은 이는 성 아무개씨로 이번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인물이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이재현 회장과 그의 자녀들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2006년 굴업도 골프리조트 건립을 위해 설립됐는데, CJ그룹 내부 거래율이 97%에 달해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비난을 받았다. 검찰 특수통 출신의 한 법조인은 "검찰이 과거 사건에 연루됐던 이씨의 자택을 턴(압수수색) 것은 현재도 비자금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대진 부장검사 vs 박용석 전 중수부장 '창과 방패'

이번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윤대진 특수2부장 검사는 집요하기로 정평 나 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형적인 '불독' 스타일이며 피고인의 혐의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고 중수부가 폐지된 이후 첫 대기업 수사인 만큼 결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CJ도 최강의 방패를 준비하고 있다. 법무법인 광장에 소속된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용석 변호사와 법률사무소 김앤장 소속인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상길 변호사가 변론을 맡을 예정이어서 향후 검찰과 CJ 간의 창과 방패 대결도 관심을 끈다. 한편 이번 사건의 수사팀장 윤대진 특수2부장과 친분이 깊은 김앤장의 남기춘 변호사도 CJ 변호인단에 합류할 전망이다.

엄민우 / mw@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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