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수주’ 대한항공, 방산 기업으로 재이륙할 수 있을까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대한항공이 '이름뿐인 방산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약 1조원 규모의 방위사업청 사업 수주 기회가 열리면서다. 대한항공은 이번 수주를 계기로 여객·화물에 치중돼 있던 사업 구조를 다각화할 계획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방산을 새 먹거리로 점친 만큼 대한항공의 사업 확대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23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의 UH-60 헬기 성능개량사업을 진행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LIG넥스원, 콜린스에어로스페이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방사청 입찰에 참여했다. 이번 사업은 이른바 '블랙 호크'로 불리는 UH-60 헬기 36대를 조종실 디지털화, 창정비 통합 등 전 범위에 걸쳐 성능을 개선하는 게 핵심이다. 사업 규모는 약 9613억원으로, 성능 개량을 마친 후 2029년 우리 군에 기체를 인도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30년 넘게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풍부한 기술 데이터를 바탕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방위사업청과 세부 협상을 거친 뒤 최종 계약을 맺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수주로 대한항공이 꺾였던 방산 사업의 날개를 다시 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1975년 항공우주사업부를 설립한 이래 50년 넘게 방산 사업을 추진해 왔다. 전투기·헬기 생산은 물론 한·미 군용기 창정비(MRO) 사업을 담당하는 등 의미 있는 성적을 내왔다. 그러나 2018년 방사청 군 무인기 사업에서 품질 및 납품 지연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주 경쟁에서 밀려났고, 이후 연이어 대형 사업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황호원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교통물류우주법학부 교수는 "기술적 역량은 충분했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경쟁사가 약진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며 "코로나19, 아시아나항공 합병 등을 거치면서 방산보다는 꾸준히 잘했던 여객·화물에 집중했던 결과"라고 전했다.
방산 부문 실적도 해마다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방산 사업을 담당하는 항공우주사업부 매출은 2015년 913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하락해 2021년 3666억원까지 내려앉았다. 2022년 이후 매출은 개선되는 추세지만, 5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항공우주사업부는 지난해 매출 5929억원, 영업손실 157억원을 기록했다. 약 3% 수준의 미미한 매출 비중에 아시아나와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항공우주사업부 매각 카드를 고민하기도 했다.
실적 변동성 낮추려 방산 다시 키운다
대한항공은 매각 대신 재도전을 택했다. 선택의 배경에는 주 사업부문의 높은 경기 민감도, 경쟁사의 호실적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은 전체 매출 중 90%가 여객·화물사업에서 창출되는데, 두 부문 모두 경기변동에 민감해 실적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원태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도 "국제 분쟁, 공급망 불안 등 수익성을 저해할 수 있는 외부 변수를 제거해 생산성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힌 이유다.
반면 방산은 경기 흐름과 관계없이 수주만 확보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특히 KAI, LIG넥스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경쟁사가 연이은 호실적을 내면서 대한항공의 재도전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민간 항공사 중에서 유일하게 방위산업체 지위를 가진 회사라는 메리트를 갖고 있다"며 "합병이라는 큰 산을 넘어섰고, 이제는 방산 사업 강화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란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일회성에 머물지, 방산 기업으로서의 재도약 발판으로 작용할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화물 부문 실적 감소, 합병으로 인한 대규모 투자를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수익원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일에도 미국 방산업체 안두릴(Anduril)과 자율형 무인기 개발 협력을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방산 부문 경쟁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황호원 교수는 "지속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결국 수익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수익성을 위해서는 기술 인증을 위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수주 결과에 만족하기보다는 차세대 방산 기술인증을 받기 위한 투자에 박차를 올려야 할 때"라고 전했다.
한편, 대한항공의 올해 1분기 실적은 영업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시장 기대치를 하회했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9%, 4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정위 제재, 보복 관세 분쟁 등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이라며 "이제는 기단 현대화 등 재정비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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