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드럼통 들어간 나경원, '윤심'과 함께 가라앉다
[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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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나경원 예비후보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가균형발전 대개혁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 유성호 |
2021년 4월, '부정선거'를 외치던 황교안이 전당대회 4강에 진출에 실패했다.
2025년 4월, 안철수가 나경원을 꺾고 전당대회 4강 자리에 올랐다.
국민의힘은 전신 보수 정당 시절부터 '최악'으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한 일종의 '제동 장치'가 발동될 때가 간혹 있었다. '아스팔트 극우'와 교감하는 강성 지지층이 당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지만, 조용한 '온건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과 당원들은 언제나 전략적인 선택을 해왔다.
부정선거를 예찬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며, '탄핵의 강'을 건너기를 격렬하게 저항하는 후보들이 언제나 이 당에 난립했다. 하지만 '태극기'와 결합했던 김진태를 오세훈이 꺾으며 최소한의 견제 동력을 확보했다(관련 기사: 그래도 2위 오세훈이 '졌잘싸'인 이유 https://omn.kr/1hm7e). '부정선거'를 목 놓아 외치던 황교안이 전당대회에서 컷오프됐고, 한동안 당내 인사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관련 기사: 1등만큼 중요한 국힘 경선 4등, 황교안이냐 아니냐 https://omn.kr/1vgea). 이는 '대선주자' 황교안의 종말이었고,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극우 인사들은 당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펼쳐진 국민의힘 대선 1차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나경원 국회의원을 꺾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국민여론조사 100%라고 하지만, 당 지지층과 무당층만 참여하도록 하는 '역선택 방지 조항'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였다. 무당층이나 중도층에서는 우위를 보이지만, 보수층 내 지지율이 밀리는 안철수 후보가 결국 고배를 마실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보기 좋게 이같은 예상을 뒤집어냈다.
반면, '윤심'을 등에 업고 잠시나마 대권의 꿈을 꿨던 나경원 의원은 중도하차했다. 당장 1차 경선 결과 발표 다음날인 23일 선거 캠프 개소식을 예고할 정도로 4강 진출을 자신했지만, 캠프 개소식을 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전형적인 '원툴(다양한 능력치를 갖추지 못하고 한 종류의 재능이나 기술에 몰려 있다)' 플레이어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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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나경원 후보였다. SNS에서 올린 의문의 사진 한 장. '드럼통에 들어갈지언정 굴복하지 않는다'라고 적힌 푯말을 든 나 후보가 드럼통 안에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AI로 생성한 사진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다수일 정도의 해당 사진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
ⓒ 나경원 후보 인스타그램 갈무리 |
나경원 의원은 누가 뭐래도 '윤심' 후보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도 '30분'에 그쳤던 면담인데, 나 의원은 윤씨와 1시간가량 독대하며 차담을 할 수 있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전선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며 인간 방패를 자처한 공이었다. 당초 서울특별시장이나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던 나 의원이, 대권 도전으로 방향을 튼 배경에 윤씨의 의중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윤심'이 이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당 대표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현직일 때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한 '윤심'이 파면된 이후에 제 효과를 낼리 만무하다. 심지어 나경원 의원은 전폭적으로 친윤계의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파면된 이후, 친윤계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도생하는 모양새로 갈라졌다.
친윤계 일부는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고 있고, 한때 친윤계로부터 적극적인 견제를 받았던 홍준표 후보 측에도 이철규·유상범 의원 같은 주류 친윤계가 붙었다. 이 자체가 더 이상 '윤심'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그러자 후발 주자로 뛰어든 나 의원은 광폭 행보를 보이며 강성 지지층 표심에 적극 호소했다. 말만 강한 게 아니라 SNS를 통한 무리수도 연속해서 나왔다. '드럼통'에 이어 내한 공연에 나선 '콜드 플레이'까지 활용하며 빈축을 샀다(관련 기사: "다음 대통령은 나경원?"... 분노한 콜드플레이 팬들 https://omn.kr/2d5kc).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나경원 의원이 안철수 후보한테 '조급한 거 아니냐'라고 공격을 하던데 오히려 본인이 조급했던 것"이라며 "더 강한 메시지를 내면서 선명성을 강조해서 극렬 지지층의 지지를 받고 싶었으나 선거 전략에 실패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토론회 때도 상대 후보에게 그냥 사퇴하라고 무례한 모습도 보였고 드럼통에 들어가고, 외국 팝 가수를 이용하고, 이런 캠페인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을 것"이라며 "결국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이들에게조차 김문수·홍준표 후보에 비해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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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강서구 ASSA아트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후보자 1차 경선 비전대회'에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그러나 안 후보는 이번 경선 국면에서 가장 주효한 기조를 놓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와의 결별을 강하게 주장하며, '비윤계' 주자가 한동훈 후보만이 아님을 분명히 각인시킨 것이다. 당내 역풍을 걱정하며 한동훈 후보 측이 머뭇거리는 사이, 안철수 후보는 당내 대권주자 중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윤씨의 탈당을 촉구했다(관련 기사: 안철수, 윤석열 첫 탈당 촉구..."이대로는 대선 필패" https://omn.kr/2d3qe).
안 후보 측의 활자로 된 메시지는 강하고 정돈된 톤으로 일관되게 '반탄(탄핵 반대)파'를 겨냥했고,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경선 불참을 선언하면서 붕 떴던 당내 중도 보수층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12.3 비상계엄 직후부터 탄핵소추안 표결까지 그가 보인 정치적 행보와 연결되며, 그간 안 후보가 대부분 상실했던 정치적 자산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원내에서도, 지역 조직에서도 뚜렷한 지지 세력이 없음에도 바람을 탈 수 있었던 이유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결국 핵심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었다"라며 "국민의힘이 정당과 대선주자들 모두 지지율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수층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나경원 대신 안철수를 택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엄 소장은 "국민의힘 지지층 일부와 무당층이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며 "안철수 후보의 '윤석열 출당' 등의 메시지가 먹혔다. 여태까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던 보수층이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내다 보았다.
그는 '찬탄' 대 '반탄' 2:2 구도가 성립된 것 자체가 경선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반탄으로 묶인 후보 측에서도 메시지 톤을 조절하거나, 입장 선회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반대' 후보들의 지지세가 물리적으로 확인된만큼, 예전처럼 강성 지지층만 보고 경선을 치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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