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에서 쫓겨난 단종 ‘통곡·충절·인륜의 길’ 다시 걷다
서울·영월·원주 등 걷기행사
단종 국장 ·칡줄다리기 등 다채
야외무대서 정순왕후 선발대회
단종 실경뮤지컬 올해 첫 선
단종문화제 글로벌 축제 도약
1457년 6월 22일. 조선 6대 왕 단종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정든 궁과 작별하고 영월 청령포까지 먼 길을 떠나야 했다. 한양 창덕궁을 떠나 광나루를 거쳐 배를 타고 한강 물길을 따라갔다. 경기 여주 이포나루 등을 지나 6일만인 28일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이처럼 왕의 한이 서린 ‘단종유배길’을 걸으며 ‘왕의 길’과 ‘지역의 미래’를 잇는 행사가 열린다. 영월군이 후원하고 재경영월군민회, 재원영월군민회, 사단법인 영월군기업경영영인협회, 재단법인 영월산업진흥원이 공동주최하는 단종유배길 재현행사가 지난 20일 시작, 25일까지 열린다. 2027년 단종문화제 60주년을 앞두고, 세계가 주목하는 지역특화 문화관광축제로 발돋움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조선 6대왕 단종= 1441년(세종 23년) 태어나면서 바로 원손에 봉해졌다. 1450년 문종 즉위에 따라 세자에 책봉됐고,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올라 조선왕조사상 가장 정통성 있는 군주였으나 1455년 15세에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했다. 1457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고, 17세 되던 해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했다. 승하 241년이 지난 숙종 24년에 단종으로 복위됐다.
■ 주민 주도 ‘왕과의 소통’
재경영월군민회는 22일 서울 창덕궁에서 ‘단종유배길’ 걷기행사를 주관한다. 청계천 영도교를 거쳐 숭인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영월군민과 재경군민회, 지역사회단체장, 문화예술인 등 1000여명은 단종유배길을 따라 걸으면서 어린 왕이 감내했던 아픔을 상기한다. 단종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지역 콘텐츠로 만들어 후세에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영월만의 문화제를 세계적 문화관광축제로 키워 지역발전으로 잇고자 하는 군민의 염원도 담는다.
24~25일에는 영월군기업경영인협회 주관으로 영월구간을 걷는다. 단종이 영월에 들어온 이후의 행적을 따라간다. 전체 43㎞ 거리로 통곡의 길(솔치고개~주천 10.5㎞)과 충절의 길(주천~배일치 마을 17㎞), 인륜의 길(배일치 마을~청령포 15.5㎞)등 3개 코스다.
영월산업진흥원은 25일 더블리스 워케이션호텔에서 지역산업 활성화 기회창출 포럼도 갖는다. 행사 의미를 정리하면서 지역 경제와의 연계 방안을 찾는 행사다. 앞서 지난 20일 재원영월군민회 주관으로 원주 신림구간에서도 걷기행사가 열렸다.
■ 왕의 길과 영월의 미래 잇다
영월군민들은 정식제례와 민속신앙 등을 막론하고 어린 왕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위무해 왔다. 이러한 마음은 60주년을 향해가는 단종문화제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단종문화제는 문화축제의 개념이 약했던 1967년 영월군민들에 의해 탄생된 국내 대표 문화관광축제다. 먼저 단종제례는 2011년 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516년의 치제 기록으로 보아 500여년간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1698년 단종복위 후 327년 동안 왕실 제향이 이어졌다. 함께 지내는 충신제향까지 모두 교육·예술적 가치가 높고 영월의 정체성을 품은 중요 문화유산이다.
안타깝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단종을 위해 주민들이 마련한 ‘단종국장’도 주요 행사다. 승하 550주년이었던 2007년 단종국장은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 백성이 왕을 보내는 마음으로 단종이 사약을 받은 관풍헌에서 그가 묻힌 장릉까지 펼친다.
왕과 주민을 잇는 또 다른 행사는 영월칡줄다리기다. 단종이 복위된 숙종 때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단종문화제에서 본격 재현, 지역 단합을 이뤄내는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잡았고, 2023년 강원도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영월의 칡줄에는 용의 상징과 살을 제거하는 ‘살줄’의 의미가 있어 주민들이 단종의 고통을 일부나마 체험하고, 지역의 안녕을 비는 매개체다.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도 기리고 있다. 비운의 왕비는 세조의 곡물을 거부했고, 서울 비탈진 마을에 숨죽여 여든 두해를 살았다. 주민들은 두 사람이 저승에서라도 해후하기를 염원해 왔다. 청령포 인근에 이를 염원하는 동상 ‘천상재회’도 건립돼 찾는 이들을 맞고 있다. 올해 25회를 맞는 정순왕후 선발대회는 야외무대에서 더욱 진한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 단종문화제 60주년 글로벌화 순항
이처럼 왕·왕비와 소통하면서 단종문화제를 글로벌 축제로 키우는 것이 ‘단종유배길 걷기행사’를 포함한 주민 주도 행사의 비전이다. 문화제의 기반이 되는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성, 차별화된 콘텐츠를 짜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단종국장과 올해 처음 선보이는 단종 실경뮤지컬, 2026년 60주년 예비행사에 맞춰 준비하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가례 등 왕실문화 구현 등이 대표 콘텐츠다.
실무 준비도 탄탄하다. 2019~2023년 토론회(2회)·심포지엄(4회)를 통해 전문가 의견을 모았고, 지난 해 ‘영월과 지역, 역사와 미래를 잇는 세계인의 축제, 단종의 이야기를 걷다’라는 주제 아래 단종문화제 60주년 글로벌화 기본계획도 완성했다. 영월군은 이를 바탕으로 기존 대표 프로그램을 고도화, 9월까지 실행계획을 짠다.
최명서 영월군수는 “군민 주관으로 이뤄지는 단종유배길 재현이 지역 자긍심을 높이고 단합을 도모할 것”이라며 “군민 손에서 탄생한 단종문화제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60주년을 향해 순항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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