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는 한국” 카자흐스탄서 호국영웅 정신을 잇다

정민엽 2025. 5.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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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907년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민긍호 등 원주 진위대 장병 의병 활약
일제 의병 탄압 지속 조국 떠나 해외로
1937년 연해주 거주 고려인 강제이주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 후손 등 단체 설립
민긍호 고손자 아내 부대표 김 타티아나씨
“조상이 써 내려간 자랑스러운 역사 전파”
계봉우 열사 후손 셰릭바예바 엘레나씨
“역사 기억하는 일, 평화 만드는 발판”

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14.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의병 후손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정미의병 당시 한 의병장이 영국 종군기자 맥켄지에게 남긴 말로 유명하다.

1907년 8월 1일. 일본이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했다. 이에 반발한 서울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이 자결하자 대한제국군은 의병이 돼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강원도는 의병 항쟁의 모체가 된 곳이다. 일제가 군대를 해산한 다음날인 1907년 8월 2일 민긍호(閔肯鎬)를 비롯한 원주 진위대 장병들은 무기고를 점령, 의병 부대를 구성해 항쟁을 일으켰다.

의병의 활약이 이어지자 일제는 이들에 대한 탄압 수위를 높였다. 일본군은 의병의 활동 지역을 모두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벌였다. 결국 의병들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 등 해외로 근거지를 옮겼다. 강원도민일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떠나 의병의 후손들을 만났다.

▲ 정미의병 당시 영국 종군기자 맥켄지가 양평군 인근에서 촬영한 의병 모습

■독립군의 모체가 된 강원도 의병, 그 중심에 선 민긍호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원주 진위대 소속 군인들은 민긍호, 김덕제 의병장을 필두로 의병 항쟁을 일으켰다. 이들은 강원도를 비롯해 경북, 충북, 경기 지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며 투쟁을 벌였다.

민긍호, 박준성, 손재규 등 원주진위대 해산 군인이었던 이들은 각자 의병진을 편성해 일본군을 격파했다. 강원 지역의 의병들은 산악지형을 활용해 기습전과 이동전투를 펴며 일본군을 무찔렀다. 특히 타 지역에 비해 전문적으로 총기를 다루는 산포수가 많아 탁월한 전투능력을 갖춘 의병이 많았다. 강원도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자리 잡은 민긍호 의병부대는 강원·충청·경상 지역을 누비며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

그러나 1908년 2월 일본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의병 20여 명이 사살되고, 민긍호 의병장은 사로잡혀 강림으로 호송됐다. 그날 밤 부하 60여 명이 민 의병장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일제에 사살됐다.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강원도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간 의병들은 국내에 숨어 지내다가 3.1운동을 주도하거나, 만주나 러시아 연해주로 근거지를 옮겨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민 의병장 사망 이후 후손들도 일제의 압박을 피해 결국 정든 내 나라를 떠나야 했다. 이때만 해도 평생을 해외에서 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 민긍호 의병장 국가보훈부 제공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고려인(高麗人)은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 국가 연합의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12만여명의 고려인이 거주 중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 거주했던 것은 아니다.

고려인은 당초 연해주에 정착했다. 1800년대 후반부터 흉년과 대기근 등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이 있었으나,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모국을 떠나는 조선인은 점점 늘어났다. 이에 1906년 3만4000여명이던 고려인은 1931년 들어 19만9500여 명에 달하게 됐다.

하지만 이들은 1937년 8월 강제이주를 당했다. 4개월에 걸쳐 진행된 강제이주를 계기로 이들은 모국을 떠나 먼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구소련 당국은 고려인들이 서로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전통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행위를 금지했으나 이들은 한 번도 뿌리를 잊은 적이 없었다. 조국에서 90여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고려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 지난 2월 원주 봉산동 민긍호 의병장 묘역에서 진행된 민긍호 의병장 순국 117주기 추모제. 본사DB

■Doknip-Patriot

카자흐스탄 알마티 현지에서 ‘Doknip-Patriot’와 만났다. 젊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주도해 설립된 이 단체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하나로 모으고, 조상들이 써 내려간 역사를 이후의 세대에게도 전하고자 지난 2022년 설립됐다.

현재 카자흐스탄 외에도 미국,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지내고 있는 7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설립 이래 15회 이상의 행사를 개최했다. 유튜브·인스타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단체의 활동을 알리고 있다.

더욱이 ‘Doknip-Patriot’는 강원도와도 인연이 깊다. 이 단체의 부대표인 김 타티아나씨는 민긍호 의병장의 고손자이자 직계장손인 민 콘스탄틴(민대기)씨의 아내이기도 하다. 지난 3월에는 ‘광복 80주년 민긍호의병대장 기념사업회 발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민 콘스탄틴씨와 함께 원주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 지난 3월 원주 동부복합체육센터에서 열린 민긍호 의병대장 기념사업회 발대식에 참석한 민 콘스탄틴(민대기)씨. 그는 민긍호 의병장의 직계 후손이다. 정민엽

그가 단체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다. 김 타티아나씨는 “평소에도 남편이 자녀에게 할아버지(민긍호 의병장)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면서 “우리에게 할아버님의 존재는 너무나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민긍호 의병장의 고손녀이자 민 콘스탄틴씨의 여동생인 민 안나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우리 가문의 영웅인 민긍호 의병장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들려줬다”면서 “후손으로서 깊은 자부심과 존경심을 느낀다. 그분의 정신을 이어받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아직 원주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언젠가 원주에 가 민긍호 의병장의 묘소를 방문하기를 희망했다.

▲ 계봉우(1880~ 1959) 열사 독립기념관 제공

■잊지 말아야 할 이름, 계봉우

‘Doknip-Patriot’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계봉우 열사의 후손인 셰릭바예바 엘레나씨도 함께했다.

계봉우(桂奉瑀)열사는 민족운동을 전개한 학자로, 한국의 역사와 한글에 관한 연구와 교재 집필을 통한 국학연구에 크게 기여한 독립운동가다.

함경남도 영흥군 출신인 그는 국내외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망명한 뒤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활약했다.

1920년대 들어 러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그는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연해주에서 한인 사회의 사회주의적 건설 과정에 주력했다. 그는 한인 사회에서 지내며 이주 한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고려어 교과서를 편찬·간행하는 등 교육에 열을 올렸다.

▲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활동 중인 ‘Doknip-Patriot’. 사진 왼쪽부터 계봉우 열사의 증손녀인 셰릭바예바 엘레나씨, 채성룡(채 그레고리) 열사의 고손녀인 김 안나씨, 정민엽 강원도민일보 기자, 민긍호 의병장의 고손녀인 민 안나씨, 김 타티아나 Doknip-Patriot 부대표

특히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후에는 ‘조선말의 되어진 법(1941)’, ‘조선문법(1947~1948)’, ‘조선문학사 1~ 2(1950)’ 등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는 자서전인 ‘꿈속의 꿈(1940~1944)’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근에는 광복회에서 엘레나 씨의 이모를 계봉우의 공식 후손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증손녀인 엘레나씨는 지난 2019년 계봉우 열사의 유해를 한국으로 반환하는 행사에도 직접 참여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분이 나의 조상이라는 것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내 삶에 있어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면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내 뿌리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엘레나씨는 한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이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데 대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도 깊이 느낀다”면서 “독도 문제는 단순한 정치적 쟁점이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과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정민엽·최현정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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