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정치와 예의

김상수 2025. 5. 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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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여러 조간신문에 등장한 외신 사진 한 컷이 눈길을 끌었다.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가 제6차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 나라의 수도 티라나를 방문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무릎을 꿇고 맞이하는 장면이다. 라마 총리는 농구선수 출신으로 2m가 넘는 장신이고 여성인 멜로니 총리는 157. 5cm의 단신이다. 몸을 굽혀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배려를 한 것이다.

멜로니 총리는 웃으면서 만류했고 서로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라마 총리는 “자신은 이번 회의 참석자 중 가장 키가 크지만 사실은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를 이끌고 있다”라며 한 번 더 저음(低音)을 구사했다. 이런 그의 환대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해 유럽공동체가 직면한 무거운 주제를 다뤄야하는 정상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것 같다.

국제질서가 물론 이런 장면만으로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중에 있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불러들여 휴전을 일방적으로 종용하며 거칠게 몰아붙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고 그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는 것이 낯설지 않고, 험한 말과 거친 행동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이 바닥의 상용수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금도(襟度)가 있다고 한다. 남을 포용할 만한 너그러운 마음과 생각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최소한의 예의, 도리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에는 본래 야수적 본성이 있는데 이런 소프트파워가 파국을 막는 완충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덕목으로 겸양과 여유, 유머와 위트를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춘추’에서는 정치와 예(禮)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는 정치에서 뜨거운 것을 잡은 손을 찬물에 담그는 것과 같다. 찬물에 담가서 뜨거운 기운을 없앤다면 걱정이 없을 것이다. ” 6·3 대선이 막판에 이르면서 후보자 토론 배틀이 열기를 더해간다. 누가 득점을 올리는지 못지않게 누가 금도를 지키는지도 눈여겨 봐야한다.

김상수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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