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여기 친구 엄마들 많아" 아들 말에 깜짝 놀란 내향인 엄마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호 기자]
주말 산책을 즐겨하는 우리 가족, 산책 중 동네 사람을 만나면 밝게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아들은 한 번이라도 뵌 적이 있으면 길 건너편 친구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알아보고 크게 인사하는 동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지내는 골목대장이다. 한번은 퇴근길에, 놀이터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갔다. 신나게 놀고 있던 아들이 나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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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몇 번 마주친 엄마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엉거주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anniespratt on Unsplash |
"우리 엄마예요!" 아들은 친구 엄마들에게 나를 소개하더니 모여 있던 엄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민망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를 하고 집에 가자고 보채는 나를 보고 아들이 한 말은...
"엄마, 엄마도 여기 앉아서 친구 엄마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친해지세요. 저는 조금만 더 놀다 올게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신난 아들과 달리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급한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엄마는 왜 맨날 혼자 가냐'며 '왜 자기 친구 엄마들이랑 친해지지 않냐'고 따지듯 물었다. 엄마끼리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엄마는 맨날 바쁘다고 놀이터에 나오지도 않고, 친한 엄마가 없어 속상하다고 한참 동안 서운한 마음을 내비쳤다.
"엄마 왜 그렇게 소극적이야? 아빠는 안 그러는데?"
순간 당황했지만,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빠는 성격이 유쾌한 사람이라 아들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 지지만 엄마는 시간이 좀 필요해. 그 대신 한번 친해지면 엄청나게 친해지는데, 기다려 줄 수 있지?"
"엄마는 따뜻하니까, 엄마가 먼저 전화하면 다 좋아할 거예요."
당차고 활발한 아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처럼 함께 있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 미안한 마음에 일찍 끝나는 날은 퇴근길에 놀이터로 향했다.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몇 번 마주친 엄마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엉거주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들 덕분에 작은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교성이 뛰어난 아들은 엄마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항상 먼저 다가왔던 아이들
매번 먼저 걸려 온 전화, 가끔은 받지 못한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을 때도 있다. 생각나면 바로바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아이들과 달리 몇 번 더 생각하고 결정하다 보니 아이들의 재촉에 답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외향적이며 급한 아이들 성격을 제대로 맞춰주지 못해 아이들이 답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그래서 아이들보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번은 아이들 등굣길에 "사랑해"라는 말을 먼저 했더니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엄마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네."
그랬다. 아이들이 항상 먼저 사랑한다고 말했고 표현했다. 워낙 감정에 솔직한 아이들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랑한다는 말도 포옹도 전화도 매번 아이들이 먼저였다. 먼저 들려준 사랑한다는 말에 놀라는 아이들, 어쩌면 엄마 표현을 기다리다 지쳐 먼저 표현하고 먼저 다가와서 안겼나 보다.
매번 한발 늦은 엄마라서 때론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엄마로 보일 수 있지만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먼저 전화하고 먼저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게 먼저 움직여 볼 참이다.
결국 대장은 엄마야!
나처럼 내향적인 성향을 지닌 시아버님과 대화가 잘 통한다. 아버님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세 가족들이 이야기 주도권을 가져가서 우리 목소리는 수면 밑으로 사라지고 만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으면 남편이 눈을 찡긋하며 경청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그러다 가족들을 향해 소리친다.
"엄마 지호가 할 말 있데요." 가족들 관심이 나에게 쏠리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왁자지껄 서로의 이야기꽃을 이어간다. 좀처럼 결정되지 않은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길어지면 다시 한번 남편이 큰 소리로 말한다.
"당신 생각은 어때?"
"내 생각은 이게 좋겠어."
"그러면 그렇게 하자!"
"뭐야, 아빠는 큰소리만 치고 엄마한테 꼼짝도 못 해."
누가 봐도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 만나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고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살고 있다. 때론 답답하고 한심스럽고, 납득 안 되는 상황이 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음을 알기에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감정에 솔직하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당당하게 말하고 뜻을 관철한다. 때로는 대견스럽고 가끔은 넘치는 에너지에 폭삭 늙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 같은 내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기다려 주고 공감해 주는 마음 따뜻한 어른이 되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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