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일회용 인생을 통해 유쾌함을 선물받자
[권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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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 책겉그림 |
ⓒ 복복서가 |
인생은 분명 일회용이에요. 다만 그런 인생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죠. 누군가는 거창한 성공이나 영웅담을 쫓아 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주어진 일상에서 작은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며 살고요. 한 번뿐인 인생을 자기 선택권 속에서 성실하게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깊은 위로와 유쾌함까지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춤을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에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61쪽)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아버지와 겪은 에피소드를 다룬 '기대와 실망의 왈츠' 속에 나온 이야기죠.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하루 천 번씩 '우물 정(井)자'를 쓰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겠죠. 누구보다도 자기 아들이 글씨를 잘 썼으면 하는 기대감 때문에요. 실은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지식 관계도 그렇고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 스텝으로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 물론 상대방을 향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그만큼 크기 마련이죠.
열네 편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에는 진솔한 그의 가족사는 물론이고 그가 겪은 인생의 순간들을 아우르는 깊은 생각이 담겨 있어요. 그렇다고 '작가'나 '교수'나 '방송인'의 직함을 갖고 던지는 회고담 같은 건 아니에요. 쉬운 위로나 뻔한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자신의 솔직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독자들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거예요. 책 제목도 '인생 사용법'으로 지으려다가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으로 바꾼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요.
이 책을 보니 김영하는 뭐든 시작하면 10년 이상은 한 것 같아요. 소설 비슷한 것을 쓴 것도 중학교 2학년부터였으니 40년 됐고. 여행도 30년은 했고. 25살에 시작한 운전도 30년이 됐고. 마당에 식물을 가꾼 지도 9년이 넘었고. 요리한 지는 17년, 요가 수련은 20년이 됐고요.
누가 봐도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인생 아닌가요? 그러니 인생이 일회용이라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의미 있게 해석하며 사는 게 좋겠죠. 다만 그의 말처럼 누군가의 기대감으로 살기보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면 더욱 좋겠고요. 인생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여행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이니까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있지 않고 살아났다는 증언이에요. 우리말 '살아나다'는 헬라어 '에게이로(έγείρω)'는 '일어나다(arise)'는 뜻이에요. 2천 년 전 '부활'을 칭하는 헬라어 '아나스타시스(άνάστασις)'란 단어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단어는 부활이 없다고 할 때나 신화로 여길 때만 사용했죠. 사도들이 '일어나다'란 단어를 쓴 건 시체 가운데 있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한 거에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때부터 일회용 인생이라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조차 영생이라는 유쾌함을 선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김영하가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책이나 방송에서 한 말들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어요. 인생의 특별함은 평범함 속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도 자신의 일상 속에서 뭔가를 10년 넘게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그게 이야기가 되고 글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있는 거고요. 요즘처럼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요? 이 책에 담긴 그의 일회용 인생을 통해 잔잔한 위로와 유쾌함을 선물 받으면 좋겠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runch.co.kr/@littlechrist12/3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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