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라는 배 3등칸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절망

2025. 4.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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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8월의 열대야에 러닝셔츠만 입은 아저씨가 내뱉는 욕지거리를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면의 구조를 감추는 꼴이 된다.

아쉽게도 건조한 지식은 우리를 쉽게 질리게 할뿐더러 기후변화가 일상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알려주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한 번의 재난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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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독서법]
김기창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학술지 '란셋 플래닛터리 헬스'에는 날씨가 더우면 사회관계망서비스의 혐오 발언이 늘어난다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미국 773개 도시에서 올린 약 40억 건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기온이 42도 이상일 때 인종 차별, 여성 및 동성애 혐오 발언이 최대 22% 늘어난 반면, 쾌적한 온도(12~21도)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읽으며, 그 논문이 생각났다. 책에는 짜증과 분노, 복수 그리고 자기파괴에 이르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 10편이 실려 있었다. 나는 '기후변화와 혐오 발언의 빈도' 같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생물학적인 현상을, 기후위기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우리를 그러한 지옥도로 밀어 넣는 무한 경쟁과 불평등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돔시티 3부작'은 현재의 기후모델도 가정하지 않는 평균기온 54도, 체감온도 73도의 최악의 미래가 배경이다. 투명한 태양광 패널로 지붕을 얹고 에어컨과 공기정화기로 높고 단단한 벽을 세운 '돔시티'가 기후 안전도시로 설계됐지만, 모두가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종, 민족, 재산 등 다양한 조건이 결격 사유가 돼 많은 사람들이 추방당하고, 추방자들은 땅굴을 파서 다시 돔시티로 들어가려 한다. 추방자를 잡으려는 민병대와 돈을 받고 밀입국시키는 브로커가 등장하며, 돔시티는 기후위기의 사회적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김기창 지음·민음사 발행·332쪽·1만4,000원

'굴과 탑'은 해수면 상승의 시대, 산동네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는 부자들은 높은 산동네를 재개발하려고 하고, 가난한 남자와 여자는 저항하며 반지하에서 땅을 파고 옥탑방에서 탑을 쌓는다. 그들은 말한다. "우린 저지대에서 제일 먼저 고지대로 쫓겨났어요. 돈이 없어서요. 그런데 이제 저지대로 가라는 건가요?"

굴을 파고 탑을 쌓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효용성이 없다. 그들이 내린 답이다. "저는 문제가 되기로 했어요. 구제 불능이 되는 게 우리 목표예요." 둘은 서로 키스하고 흙에 묻혀 죽는다. 돔시티의 추방자들도 풍선을 날려 태양광 패널을 파괴한다. 과녁을 찾지 못하고 떨어지는 자기파괴적인 저항이다.

시인 김수영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했다. 8월의 열대야에 러닝셔츠만 입은 아저씨가 내뱉는 욕지거리를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면의 구조를 감추는 꼴이 된다. 차라리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무엇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무엇이 우리의 분노를 증폭하는가?

북극곰과 꺾은선 그래프를 앞세운 암울한 전망이 일기예보처럼 쏟아진다. 아쉽게도 건조한 지식은 우리를 쉽게 질리게 할뿐더러 기후변화가 일상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알려주지 않는다. 인류세에는 '인식하는 앎'과 '감각하는 앎'이 모두 필요하다. 일상을 빼고 기후변화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해법을 허용할 수 있다. 꺾은선 그래프를 낮추라! 모두 다 봉사하라!

기후변화는 한 번의 재난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삶을 느리게 투과하며 고통을 배가하고 절망을 일상화한다. 우리 대부분은 '기후변화'라는 배의 3등실에 탑승 중이다. 그러하기에 책이 당긴 방아쇠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무덥고 습한 3등실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절망, 자포자기의 감각에 관해, 쾌적한 1등실에 흐르는 우아한 음악에 관해 그리고 왜 우리가 이 배에 타게 됐는지에 관해서도.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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