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 “관세 협상 골든타임은 ‘30일’”
“美 제조업 부활에 ‘한국이 최적 파트너’…확실히 인식시켜야”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추가관세 부과를 90일 동안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3개월'이란 시간을 벌었지만 협상의 앞날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며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총괄했던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4월1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30일이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간 첫 통화를 하며 형성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다.
박 원장은 "실무적으로는 미국 측과 어느 정도 교감 분위기를 형성한 것으로 안다"며 "정상 간 대화 물꼬를 텄으니 이제 협상에 속도를 낼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에게 수치로 따지고 들어선 안 된다"는 협상 원칙도 제시했다. 그는 "내줄 건 내주되 트럼프 관세 정책의 핵심 목표인 제조업 부활에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파트너가 한국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美 소비자·생산자 모두 피해 볼 것"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월4~6일 북미-유럽-아시아의 정치·외교·경제 전문가 모임인 세계3지역회의(The Trilateral Commission) 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다. 관세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워싱턴에 모인 사람들의 우려가 상당했다. 특히 유럽 측 인사들은 상당히 화나(Upset) 있는 상태다. 대다수 전문가는 보복관세로 인해 무역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경제 전체가 피해를 보게 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전략 또한 차질을 빚을 것이다. 미국 기업이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부품 등을 수입하더라도 관세가 높아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느낀 미국 분위기는 어떠했나.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인사를 만나본 결과 상당한 우려와 불안감을 내비쳤다. 워싱턴의 대다수 싱크탱크 전문가도 관세 정책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 박사 역시 트럼프 관세 정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최악의 경제정책이며 인플레이션과 고실업을 발생시켜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갈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관세 정책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비판과 주식시장의 부정적 반응을 감안해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한 것으로 보인다."
일방통행식 트럼프 관세 정책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
"1930년 대공황 당시 미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대폭 올리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한 바 있다. 이에 프랑스·영국·캐나다 등은 보복관세로 맞섰다. 이로 인해 대공황이 심화되고 미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역사적 경험뿐 아니라 세계무역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상황에서 자국 제조업 보호를 내세워 관세 정책을 쓴다는 것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피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원래 목표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 보호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에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장기간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호관세 부과 90일 유예도 당장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제 관세 정책을 전환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국 경제와 기업에 큰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철강·알루미늄·자동차·자동차 부품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25% 관세가 부과돼 어려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보편관세(10%) 부과만으로도 주요 대미 수출품목인 컴퓨터 관련 품목, 기계·변압기·석유화학 제품 등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중국·베트남 등 해외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도 피해가 예상된다. 이들 기업은 글로벌 생산기지 전략 재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미국의 관세 정책이 장기간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본다면 단기와 중장기로 나눈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이 기회에 핵심 원자재·부품·소재 등의 중국 의존도를 확실히 낮춰가는 방안을 강구해 실행해야 할 것이다."
"패키지 제안 통해 타결 끌어내야"
앞으로 우리는 어떤 협상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보는가.
"트럼프 관세 정책의 핵심 목표인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특정 제조분야 부활에 한국이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파트너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선박, 소형모듈원전(SMR),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 구축 등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이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의 협력을 제안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관세 장벽' 압박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리 정부도 비관세 장벽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알고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비관세 장벽을 몇 가지로 나눠서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월령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나 쌀 수입 문제의 경우에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이 이 부분을 지적하면 국내 여론 등을 감안해 미국이 추가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무역수지는 거시경제 활동의 결과라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미국이 소비를 많이 해서 무역적자를 본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트럼프 대통령에겐 작동하지 않는다. 이에 우리나라는 향후 2~3년간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나가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다만 대미 수출을 줄이겠다기보다는 에너지 수입 확대 등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리더십 부재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이미 다른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4월8일에야 한미 정상 간 통화가 이뤄졌지만 협상은 이제 시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안덕근, 정인교 등 우리 측 인사들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방미 당시 우리 측에선 미국이 성급하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당히 정중하게 대했다고 한다.
앞으로 협상에 임하게 되면 중국, EU 등이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지를 보면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상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인 상황에서 앞으로 30일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덕수 대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기에 러트닉 장관 등도 한국과의 협상에 집중할 것이다. 좋은 분위기가 형성된 상황에서 협상을 오래 끌 필요가 없다. 다만 포괄적인 패키지를 제안하면서 내줄 건 내주는 등 일괄 타결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EU, 일본, 중국 등에서도 인정하는 통상 전문가인 한 대행을 중심으로 정부가 잘 대응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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