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 흥행에도 "어렵다"... 해외영화 수입사의 고민
'극장의 위기', '투자배급의 위기'라는 말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영화산업을 지탱하고 함께 일궈 온 영화인들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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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대표. |
ⓒ 이선필 |
그중 2012년 설립된 그린나래미디어는 유독 프랑스·유럽 지역과 인연이 깊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추락의 해부> 등을 국내에 소개하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최근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에밀리아 페레즈>를 개봉시켰다.
수입사들 이익 단체인 한국 수입배급사협회 3기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유현택 대표는 올해 1월 프랑스 영화 및 TV 진흥 기구인 유니프랑스가 주최한 '유니프랑스 배급상'(<프렌치 수프>)을 수상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을 제치고 한국 수입사가, 그것도 올해 신설된 상의 첫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서울 서초구에 그린나래미디어 사무실에서 유현택 대표를 만나 그 얘기부터 나눴다.
예술영화 약진 시대? 더욱 어려워진 현실
"갑작스레 연락받아 상을 받았는데 유니프랑스에서 지원한 300여 편을 배급한 여러 나라 중 우리가 수입한 <프렌치 수프>의 배급 퍼포먼스가 인정받은 것이다. 그간 영화 수입일을 하며 관객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개봉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늘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 큰 힘이 됐다. 각 나라 시장 상황에서 어떤 마케팅을 펼쳤는지 등도 본 것 같은데 <프렌치 수프>는 공복 챌린지라든가 그런 시도를 했다. 약 5만 명의 관객이 들었는데 제 기준에선 아쉽지만, 한국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나름 좋은 성적이라 생각한 것 같다."
수백억 원을 투자한 한국 대형 영화들이 참패하는 가운데 이런 예술영화들은 각자 범위 안에서 나름 흥행한 사례가 이어졌다. 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는 55만 관객이 들며 해당 영화를 수입한 곳의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지난해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한 <추락의 해부>도 10만 명 이상을 기록했고, 다른 수입사들이 들여온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20만 명, <더 폴: 디렉터스 컷>은 18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런 흐름에 숨통이 트인 것 같다는 기자 질문에 유현택 대표는 "전체 시장 자체가 회복세가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표현"이라며 답을 이었다.
"예술영화, 다양성영화 시장이 좋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늘 어려웠고 이후엔 시장 자체가 대폭 축소되며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서브스턴스>, <퍼펙트데이즈> 같은 영화를 관객분들이 꾸준히 찾아주긴 했는데 그렇다고 다양성영화가 중흥기를 맞이한다고 전망하기엔 섣부르다는 생각이다.
다만, 극장 티켓값이 세 번이나 올랐고 OTT 플랫폼의 다양화로 관객분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좀 달라진 건 보인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절대 관객이 2019년 이후 60% 줄었다고 하잖나. 다시는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거라는 상황이라 수입사 또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관객 수뿐만 아니라 부가판권 시장(IPTV, OTT 등에서 방영시 받는 비용)에서 수입사가 가져가는 매출도 현저하게 줄었다. 그만큼 극장 매출 의존도가 커지게 됐기에 극장 매출 구조를 주시하고 있다."
유현택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욱 어려운 상황임을 짚었다. 흥행하는 예술·다양성영화는 일부이고 1만 명도 안되는 작품이 다수라는 현실을 들었다. 팬데믹 시기엔 한국 대중영화들 대부분이 개봉을 미루고 제작을 멈춘 상황에서 오히려 다양성영화들에 상영관이 많이 몰리기도 했다면, 엔데믹 이후 영화산업전체의 위축으로 후폭풍을 맞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구조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홀드백(극장 개봉 후 타 플랫폼 공개까지의 유예 기간)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극장 매출이 무너지다 보니 너도나도 혹은 어쩔 수 없이 홀드백을 안 지키거나 대폭 줄이면서 OTT로 직행하니까. 누굴 탓할 순 없고, 소비자 소비 습관이 변한 것이기도 하니까. 이걸 재건하자는 의견이 영화 단체에서 나오는데 사실 회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관객 계발에 힘을 써야 하지 않나 싶다. 특히 팬데믹 때 10대를 보낸 이들이 이제 막 소비생활을 시작하는 20대가 됐다. 극장 경험이 그만큼 부족할 것인데 예술영화 경험을 강화하며 이들을 공략하는 게 하나의 전략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영화광이었던 씨네필은 늘 소수였다. 작품에 따라 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되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 작품이 2023년 2월 개봉해 약 7만 관객을 모은 <애프터썬>이라는 작품이었다. 대부분의 수입사들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 같은 큰 영화제의 공식 부문에 초청된 작품과의 거래에 힘을 쏟기 마련이다. 그린나래미디어 또한 그래왔으나, <애프터썬>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은 비평가 주간 부문 초청작이었다. 감독이나 배우들도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우연히 마켓에서 영화를 본 이후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을 결정한 경우였다.
"한국시장에서 '이런 건 안 돼', '이런 건 통해' 등 수입사마다 각자 기준으로 큐레이션을 한다. 제 생각엔 팬데믹을 지나며 집에서 OTT로 다양한 작품을 접한 분들이 많아지면서 취향도 눈높이도 다양해진 것 같더라. 이게 대중영화인지 다양성영화인지 구분도 모호해진 것 같다. 끌리면 일단 가서 본다는 시장 정도는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또한 수입배급사로서 기준이 명확했는데, 이젠 선입견을 버리고 보다 자유롭게 구매하자는 생각이다. 티켓파워가 있는 감독·배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애프터썬>이 우리 눈을 넓히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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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수입한 영화들. |
ⓒ 그린나래미디어 |
"이를 테면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과 함께 영화를 택해도 좋겠나는 생각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가버나움>은 기대 보다 훨씬 큰 수익이 있었지만, 그런 사례는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고. 우리 색깔을 유지하며 대중을 아우르는 영화를 소개하자는 생각이 있다. <원더>가 그런 경우였고, 지난해 <롱레그스>라는 영화도 그렇다. 우리가 수입한 첫 장르 영화 수입이었거든.
관객수만 보면 아쉽긴 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마켓(EFM)에서 구매 <투게더>라는 작품이 있다. <서브스턴스> 흥행으로 바디 호러물인 이 영화도 수입사들 경쟁이 치열했는데 우리가 가져오게 됐다. 네온이라는 미국 배급사와 거래했는데 8월에 이 장르물을 개봉시킬 예정이다."
영화제 이야길 안 할 수 없었다. 최대 영화 마켓 중 하나인 AFM(American Film Martket) 같은 행사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수입사들은 전 세계 영화제를 돌며 그들이 발굴한 영화들을 직접 보고 수입을 결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영화제인 칸영화제를 비롯해 베를린, 베니스 등도 점차 예술영화보단 대중영화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영화산업 침체로 영화제들도 흥행을 위해 나름 몸부림 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영화제의 고유 역할인 창작자 발굴 영역이 축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제 역할은 변함없이 배급사가 각국에 그 영화들을 관객과 이어주기 전에 창작자와 작품을 소개하는 축제인데 여러 이유로 영화제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 같다. 예산이 축소되는 경우도 있는데 정부에 따라 영화제 색깔이 바뀌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들 지향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독립성은 지켜야 한다. 물론 변화에 대한 노력은 해야 한다. 베를린도, 칸도 변하고 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
결국 산업과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전 세계적으로 요즘 영화제가 침체기인 건 맞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소위 넷플릭스 같은 몇몇 플레이어들에 의해 작품이 선정되는 흐름도 보인다. 베를린영화제도 이번에 위원장부터 프로그램팀이 다 바뀌었다. 경쟁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들을 가져오는 것 같더라. 스타를 데려와야 흥행하니까. 자연스럽게 영화제 색깔이나 개성에 대한 문제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린나래미디어 또한 예년보다 수입 및 배급하는 작품 수가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유현택 대표가 꾸준히 가져왔던 믿음이 꺾인 것은 아닐 것이다. 간간이 해왔던 한국 독립예술영화 배급 사업도 놓지 않고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년 전 <너와 나>를 배급한 이후 한국영화를 못했는데 계속 검토 중인 작품들이 있다. OTT 플랫폼과의 협업도 고려 안 한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극장에서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OTT와는 상호보완적으로 역할을 논의하고 협업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고민해보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와 같은 수입사들이 전 세계 다양성 영화를 가져오는 건 결국 한국영화산업에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부터 반복한 얘기인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생각들이 그 영화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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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대표. |
ⓒ 이선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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