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정치적 판단 꿈꾸나? 탄핵 기각 되면 펼쳐질 지옥도 [이게 이슈]

손우정 2025. 3. 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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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슈] 극우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은 '정치적 의도'라는 것

[손우정 기자]

 1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 탄핵 심판에 직접 출석해 변론에 나선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극우 시위가 열리고 있다.
ⓒ 김성욱
서울 변두리의 한 동네. 길을 가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불쑥 어떤 젊은 청년이 옆에 서더니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른다. "부정선거는 중국이 한 것", "대통령을 잡아넣고····"라고 외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소리를 지르다 욕설 같은 것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신고할 거예요"라고 대꾸하자, "일인 시위는 신고해도 소용없어"라는 말로 더 크게 받아친다. 그리곤 신호가 바뀌자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진다. 잠시 뒤, 그 청년이 다시 나타나 한바탕 또 소리를 지르고 신호가 바뀌자 다시 떠난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홀로 외치는 욕설에 가까운 말들은 제대로 전달되지도, 논리가 있는 주장도 아니었다. 다만 그 태도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자신감'이었다. 거리의 고요를 깨더라도, 행인에게 욕설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자신감, 누구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어리어 있었다.

태극기와 응원봉이 충돌하는 도심에서는 간혹 마주하는 광경이지만, 변두리 동네에서는 꽤 낯선 풍경이다. 이것이 한갓 에피소드였을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그 청년이 더 강한 자신감과 확신으로, 더 과격한 행동으로 다시 나타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는 정국에 과민해진 탓일까?

한덕수의 복귀, '의도'의 해석

지난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 심판은 기각 5명, 각하 2명, 인용 1명의 결과로 종결됐다. 문제는 심판의 결과라기보다 결과에 대한 해석이다. 언론에서는 이것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 시그널이라거나 대통령 파면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등의 엇갈린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처음으로 전원일치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결과에 대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전원일치는 물 건너갔다는 해석도 나온다. 심지어 극우 유튜브에서는 소수의견으로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이 '좌익 세력의 지령'을 받았다거나,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기각 의견이 자신들의 집 앞 시위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탄핵 청구는 정당했고, 헌법과 법률도 위반한 것이 맞으나, 그 '위반의 정도'를 '상당한 기간'이 아니라서 '단정'할 수 없다는 아리송하고 모호한 논리 사이에 들어 있는 임의성의 폭은,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입장에 따라 '정치적 의도'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넓혀 놓았다.

상반되는 여러 해석, 논리와 기대가 뒤엉켜 있는 각종 추측의 공통점은, 사법적 판결이 정치적 의도와 행동에 영향 받고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다. 전원일치 판결이 무너진 한덕수 총리 탄핵 심판의 영향은 이제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헌재가 어떻게 결론짓건, 그것이 엄정한 헌법해석의 결과이든 정치적 판단이든, 그 결과를 '모두'가 수용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자신감을 가진 극우가 만든 역사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1월 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 연합뉴스
12.3 계엄에 대한 사법적 심판과 엄중한 처벌이 지연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헌정질서의 경계를 넘어선 극단적 행위가 점점 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자신감과 확신이 어떤 일들로 이어지는 지는 우리 역사에서 부지기수로 보여준다. 친일 청산의 결정적 기회를 박탈한 1949년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습격 사건 역시 통제되지 않은 극우적 난동이 가져올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알다시피 반민특위에 반발한 친일 경찰은 테러리스트를 사주해 반민특위 위원 암살을 시도하거나, 극우 세력을 사주해 반공대회를 열고 반민특위를 압박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자, 그들은 80여 명의 경찰을 앞세워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조사관들을 폭행했음은 물론, 친일파 조사 서류를 모두 탈취했다.

윤석열의 까마득한 검찰 선배인 1대 검찰총장 권승렬은 사무실을 습격한 친일 경찰에게 권총까지 빼앗기며 갖은 수모를 당했다. 결국 반민특위는 사실상 와해해 기능을 상실했고, 총 682건의 친일파를 조사해 559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들이 대낮에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검찰총장을 협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대통령이 있고, 자신은 절대 처벌받지 않으며,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강한 확신과 자신감 때문이었다. 대통령 이승만은 그 사실을 감추지도 않았다. 외신 기자와의 회견에서, 그는 자신이 습격 사건을 지시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습격 사건의 주범을 처벌하긴커녕 반민특위 무력화에 나섰다.

일제 강점기 헌병 보조원으로 일하며 네 명의 독립운동가를 고문해 죽인 한 청년도, 무력화된 반민특위 덕분에 무죄를 판결받고 마산경찰서 경비 주임이 되어 경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바로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대에 최루탄을 무차별하게 발사해 김주열을 살해하고 바다에 유기해 4·19혁명의 도화선을 당긴 박종표다.

이런 일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됐다. 2003년, 연이은 대선 패배가 시민사회를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이 나라의 극우는 '잔인하다'는 표현으로는 다 담지 못할 반인륜적 악행을 저지른 서북청년단을 부활시키고, 성조기와 이스라엘기, 태극기를 섬기는 기묘한 행적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사이버 여론전과 청년 극우의 조직화에도 나섰다.

온라인 속에 갇혀 있던 청년 극우는 세월호 유족의 단식 농성장에서 이른바 '폭식 투쟁'을 펼치며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종교단체, 극우 유튜브를 매개로 연결된 극우 네트워크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지만, 최소한 계엄 이전까지는 시민권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극우 유튜브를 애청하는 것을 넘어 맹신하고, 구속을 전후해서는 자신의 구출을 호소했을 때, 이들의 목소리는 '주류' 보수의 입장으로 울려 퍼졌다.

법원을 깨부수고, 전국을 휘젓고,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과격한 언사를 쏟아내는 '행동하는' 극우의 모습은, 자신들이 이 나라 보수를 대표한다는 강한 확신과 정당성, 그리고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헌재 판결의 '정치적 의도'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극우의 목소리에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만일 탄핵이 기각된다면
 국회 탄핵소추단 의원(박범계, 이춘석, 최기상, 김기표, 박균택, 박선원, 박은정, 이성윤, 이용우, 천하람) 주최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한 경호원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 방탄가방을 든 채 경계를 서고 있다.
ⓒ 이정민
어느 때보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12.3 계엄 이후의 혼란을 빠르게 종식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정의'가 시급했다. 그 역할은 헌법재판소가 맡았다. 그러나 역대 최장기 평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세에 몰린 보수세력은 극우를 앞세워 공세로 전환하면서 '국민적' 정의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리 헌법과 법률이 그렇게 해석이 어려운 것인 줄은 모르겠지만, 판관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한 헌법이라면, 그토록 오랜 기간 우리가 부여잡고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법의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고 있다면, 선출되지도 않은 엘리트 법관들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은 또 누구인가?

만일 어정쩡한 정치적 판단으로 12.3 계엄의 주범을 파면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면, 단순히 윤석열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사회의 경계와 외부에 머물렀던 목소리를 중심부로 성큼 진입시키는 것이며, 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극단적 행태도 저항권으로 정당화시켜 버리는 결과다.

극단의 목소리가 확신과 정당성,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변두리 동네 신호등 앞에서 홀로 소리를 지르던 그 청년은 계속 소리만 지르고 있을까? 반민특위 습격 사건의 재현이 떠오르는 것은 단지 과민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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