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전 현장 분석] 이건 탐색전도 뭣도 아니다, 시동 거는데 30분 걸리는 '경운기 축구' 빨리 털어내야 한다
[풋볼리스트=오만] 김정용 기자= 홍명보 감독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시절 시작된 축구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20일 오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7차전을 치른 대한민국이 오만과 1-1 무승부에 그쳤다.
한국은 4승 3무로 조 선두는 지켰지만 본선 진출 조기 확정은 물 건너갔다. 6라운드 당시 4위였던 오만은 배수의 진을 치고 임한 경기에서 승점 1점을 따내며 4위 수성 가능성을 높였다.
오만전은 전체적으로 답답한 경기였지만 특히 심각했던 건 초반 30분이었다. 두 팀 모두 슛이 나오지 않았다. 오만의 5-4-1 대형을 한국이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한국은 'U자 빌드업'으로 느리게 좌우 전환을 반복했다. 빠른 좌우전환을 위해 롱 패스를 시도할 때도 있었지만 이때도 오만이 파이브백인 만큼 공을 받는 한국 선수에게 빠르게 접근해 견제할 수 있었다. 롱 패스가 부정확해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만의 플레이가 탄탄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만은 초반 움직임이 둔했고, 특히 빌드업 실수가 많았다. 이재성 등 한국 선수들이 상대 실수에서 공을 가로챈 뒤 속공으로 전환해 손쉽게 득점할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다. 하지만 한국 공격진은 상대 수비가 떠먹여주는 공격조차 슛으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관중들은 오랜만에 보는 A매치에 환호할 준비를 잔뜩 하고 경기장에 왔지만 공격다운 공격이 없다보니 소리지를 시점을 잡지 못했다. 경기력뿐 아니라 관중석 분위기까지 함께 가라앉았다. 전반전에 본격적인 환호가 시작된 건 백승호의 부상으로 이강인이 교체 투입되는 장면이었다.
이날 부상으로 결장한 황인범, 교체투입됐다가 부상을 입은 이강인 등 주요 선수가 없어서 경기력이 나빴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한국은 경기 초반에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답답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최근 부쩍 늘어났다.
이 현상은 홍 감독 부임 전 시작돼 이제 1년이 넘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한국에 남겨놓고 간 나쁜 패턴이다. 한국 선수들은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의 분명한 경기 모델과 이를 위한 세부적인 훈련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은 세부사항을 선수들에게 떠넘겼고, 선수들은 급격한 기조 변화에 혼란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임한 아시안컵은 초반 시원한 골로 승리한 경기조차 긴 탐색전이라는 부작용이 생겼다.
당시에 한국의 발동이 늦게 걸렸던 주요 요인은 이강인이었다. 이강인에게 거의 전권을 주는 경기운영이었는데, 이강인이 경기 초반 분위기와 상대 흐름을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경기에 녹아드는데 20분에서 30분 정도가 걸렸다. 거의 매번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 이 발동 시점이 점점 늦어지더니 대회 막판에는 경기력 자체가 저조해졌다.
홍 감독의 팀도 같은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 3차 예선 7경기 중 한국이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몰아친 적은 거의 없었다. 무승부에 그친 3경기는 물론이었다. 이긴 경기에서도 지난해 9월 오만 원정에서 이른 선제골을 넣고도 오만의 거센 저항에 시달리다 전반 막판 동점골을 내줬던 것, 이라크와 가진 홈 경기에서 전반전 막판 선제골을 넣었다가 후반전 초반 동점골을 내줬던 것 등 쉽게 풀어간 경기가 없었다. 일찌감치 승기를 잡고 편안하게 운영한 경기는 11월 쿠웨이트 원정 단 한 번이라고 봐도 된다.
이는 한국보다 더 어려운 조에 편성된 C조 일본이 6승 1무를 거두면서 전반전에 두 골 차 이상 벌려둔 경기가 3회, 전반전을 한 골 차로 벌린 경기가 2회로 초반부터 강했던 것과 큰 차이다.
이렇게 발동에 오래 걸리는 팀들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전술 부족이다. 홍 감독은 게임 모델에 맞춰 팀을 운영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경기운영의 전략이나 공격루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특히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여러 번 공통적으로 나오는 발언이 "스윙"인데, 상대가 밀집수비를 할 경우 더 빨리 좌우전환을 해서 흔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윙은 일반적인 해법이긴 하지만 단순히 '빨리 좌우로 전환해'라고 주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날 상대 오만처럼 파이브 백으로 나오면 수비진의 좌우 폭이 넓기 때문에 전환에 한계가 있다. 상대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도록 한쪽 측면으로 충분히 유인한 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제 3의 인물이 반대쪽 측면으로 침투하면서 빈틈을 노려야 한다. 상대 수비의 한쪽 측면에 과부하를 건 뒤 전환해 일대일 상황을 만드는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은 요즘 흔히 쓰이는 용어로 정착됐지만 최근 대표팀은 '오버로드' 단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홍 감독이 그동안 감독으로써 구사해 온 전술적 카드 중 시동이 오래 걸리는 '경운기 축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쓸 수 있는 건 '몸으로 부수기'가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이를 맡을 수 있는 오세훈을 전방에 두고 초반부터 적극적인 몸싸움과 압박을 주문하면, 쉽게 경기 템포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3차 예선 중 오세훈이 선발 출장했던 쿠웨이트 원정에서도, 오만전 오세훈을 교체투입한 직후에도 통했던 솔루션이다. 하지만 이 해법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민규가 오만전에서 예상과 달리 무기력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프로 무대의 주민규는 활동량을 크게 늘리면서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볼 키핑을 하다가 문전침투해 적은 기회에도 골을 넣는 등 매우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은 주민규가 내려와 받아도 동료들과 연계 플레이가 아예 안 되는 수준이었고, 애초에 내려온 주민규에게 공이 투입되지도 않았다. 이는 최근 한국 대표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이재성 역시 공을 아예 받지 못해 무기력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한국의 공이 측면에서 윙어와 풀백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하다가 백패스 후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U자 빌드업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황인범이 선발로 돌아오면 백승호나 이강인이 하지 못한 적절한 전진 플레이를 통해 주민규, 이재성 등과 가까운 곳에서 숏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대표팀 공격이 잘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플레이다. 황인범의 대체자를 찾는 게 매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인범이 있을 때도 초반 30여 분의 탐색전 양상은 똑같았다. 이 문제는 특정 선수의 복귀가 아니라 팀의 계획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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