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격론? 평행선?’…헌재에 무슨 일이
내란죄 철회 등 쟁점 대립 속 8:0에서 5:3까지 각종 ‘설’ 난무하며 혼란
“국가 명운 달린 역사적 결정 앞에 주저” “국민 납득위해 노력 다했는지 의문”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대한민국도, 헌법재판소도 미증유(未曾有)의 3월에 갇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기일이 3월21일 현재까지도 확정되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에 드리운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한층 짙어졌다. 헌재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재판관 8인의 결정만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과 사회·경제적 혼란의 소용돌이는 더 커져 간다. 난기류를 만난 헌재의 결단이 3월을 지나 급기야 4월로 넘어간다면 헌재를 향한 거센 책임론과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8인 평의'엔 접근 제한…기록도 없고 도·감청 불가능
윤 대통령 탄핵 선고 기일의 분수령으로 꼽히던 3월19~20일, 헌법재판소 안팎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론은 숨죽인 채 헌재를 주시했지만, 3월 셋째 주 선고는 끝내 불발됐다. 헌재는 공지를 통해 "금주 내로 윤 대통령 선고 기일 통지는 없다"고 못 박았다. 3월21일까지 기일 통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말 이틀을 감안할 때 3월 마지막 주 초까지는 선고가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광장에서는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성토가 쏟아졌지만, 헌재 재판관들의 선택은 '평의 대장정'이었다. 2월말에서 시작해 3월초에서 중순으로, 다시 '3월말·4월초'로 헌재의 시간표가 옮겨가면서 윤 대통령 운명의 날은 오리무중이다. 역대 대통령 탄핵 사건 가운데 최장기를 기록했고, 3월말로 늦춰질 경우 심리 기간은 100일을 넘기게 된다. 헌재가 국민과의 약속이었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최우선, 신속 심리'를 연일 파기하며 신뢰도 하락을 자초한 셈이다.
전례 없는 평의 릴레이가 이어지면서 헌재 내부에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법조계에서는 '재판관 간 의견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재판관 8인이 모여 평의를 진행하는 공간은 헌재 직원들조차 출입 및 접근이 통제되고, 내부에서 논의된 내용을 별도로 기록하는 절차도 없다. 도·감청도 불가능해 외부에서 평의 상황을 평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망'과 '예측'이다. 여러 갈래로 흩어지던 이 전망은 평의가 장기화하면서 사실관계 정리부터 증거능력 인정, 법리 해석·적용까지 순탄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공통된 견해로 모아지는 양상이다. 3월21일 기준 변론 종결일(2월25일)로부터 24일이 되도록 기일조차 지정하지 못하는 것은 사안의 중대성과 전례, 평의 절차를 감안할 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가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면서 불을 지핀 소추 동일성 원칙 위배 논란부터 국회 무력화, 정치인·법조인 등 체포 지시에 대한 증거·진술 신빙성,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검찰 조서의 증거 채택 등 다양한 쟁점 사안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탄핵심판 초기 '8대0'이라는 압도적 인용 전망이 우세했던 것에서 '6대2' '5대3'까지 인용과 기각에 대한 '재판관 표심'을 예측하는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여당 내에서는 내란죄 철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며 '각하'를 자신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각하는 형식적 흠결로 소송 요건조차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 없이 재판을 종결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및 연구부장을 지낸 이명웅 변호사는 최근 이번 탄핵 관련 분석을 담은 단행본을 통해 "국회가 내란죄 위반을 소추사유에 넣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는데 이후에 이를 철회했다면 헌재는 심판청구를 각하하고 국회에 재소추 의결을 받아오라고 하는 것이 맞다"며 첫 단계부터 절차 위반이 인정되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 대다수가 내란 우두머리의 죄를 저질러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청구인 측이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할 때 사실관계를 그대로 두고 법리를 달리 적용하겠다는 헌재의 취지를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연 '헌재가 이와 관련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했는가'라는 의문이 있다"며 평의 과정에서 내란죄 철회부터 절차상 흠결로 지적돼온 사항을 재검토·논의하며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반대로 헌재가 극심한 혼란과 갈등이 표출되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건인 점을 고려해 결정문 문구와 단어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란 해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심판의 편향성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던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일치된 평결을 끌어내 '불복' 빌미를 없애고, 절차적 논란을 하나하나 해설하며 결정문 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헌법재판연구원장 출신인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재판관들이 여러 쟁점 중 논란이 되는 사안을 전부 하나하나 다시 따져보고, 조사하고 또 그 부분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해 평의에 반영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더 이상의 선고 지연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국가 명운이 걸린 역사적 결정 앞에 헌재가 주저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냈다.
좌고우면 헌재, 커지는 문형배 책임론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팽배하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심판 선고 시점을 놓고 재판관 간 격론이 벌어졌다는 전언도 나온다. 김형두 재판관이 주심인 한 총리 탄핵심판 변론은 2월19일 단 1회를 끝으로 종결됐다. 2월25일 끝난 윤 대통령 사건보다 6일 앞선다.
헌재는 한 총리 사건 역시 별도 기일을 지정하지 않다가 3월20일 오후 "3월24일 오전 10시에 선고한다"고 공지했다. 윤 대통령보다 한 총리 사건을 먼저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구도에서는 한 총리 사건을 어느 시점에, 어떤 결정을 내더라도 '딜레마'에 봉착한다. 한 총리에 대한 주요 탄핵 사유에는 '내란 행위 공모·묵인·방조'가 포함돼 있다. 윤 대통령과도 연결된 부분이다. 한 총리 선고가 먼저 나오면 결정문을 통해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둘러싼 예단과 추측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으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한 총리 사건이 기각·각하될 경우 먼저 선고를 받은 뒤 직무에 복귀한 상태에서 대통령 파면 여부를 기다릴 수 있어 국정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헌재가 이 부분까지 고려해 선고 일정을 잡았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판사 출신 한 법조인은 "한 총리 사건을 각하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과 한 총리 건은 결정문에 동일한 맥락의 내용이 담겨야 하는데 이를 동시에 작성하거나 검토하면서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며 "국정 안정 측면에서 한 총리 건을 먼저 선고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윤 대통령 건이 계속 뒤로 밀린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한 총리 측은 국회가 탄핵안 의결 시 정족수를 '재적의원 3분의 2'가 아닌 과반수를 적용했다며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각하'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였던 만큼 국무위원이 아닌 대통령과 동일 기준을 적용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만일 헌재가 한 총리의 주장을 인정해 사건을 각하하면 정계선·조한창 재판관 임명이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된다.
이들 재판관은 한 총리의 직무정지로 권한대행을 넘겨받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했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제외한 '2인 임명'으로 헌재는 가까스로 8인 체제를 갖췄고,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헌재법 23조1항도 충족해 심리 및 선고를 해왔다. 그런데 한 총리 사건이 절차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돼 권한대행으로 복귀하면 재판관 임명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을 하면서 내란죄 수사권 논란을 언급한 점도 숙의 장기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구속취소 결정 자체가 헌재의 판단을 뒤흔들 순 없지만, 평의에서 절차적 논란이 계속 불거지는 점에 대해서는 '돌다리를 두드리고 갈 것'이란 해석이다.
"재판부는 역사의 법정에 선 당사자…혼란 종식돼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한다.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 오늘의 선고로 국론 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2017년 3월10일, 심리 91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헌재 소장대행의 '22분짜리 대국민 보고'는 헌정사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던 한국 사회의 회복 탄력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8년 후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 정국이 재현됐지만, 이번에도 빠른 속도로 분열과 갈등이 봉합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선고가 지연되면서 문형배 소장대행을 향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헌재 안팎에서는 27년간의 법관 재임 기간 동안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재직한 '지역 법관(향판)' 출신인 문 소장대행이 중차대한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을 매끄럽게 끌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공직선거법 항소심 선고가 3월26일 나오는데, 제1야당 대표와 현직 대통령의 운명이 연쇄적으로 결정될 경우 이로 인한 파장과 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4월18일 문 소장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직전에 결과가 나오거나,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최악의 경우엔 그 이후로 밀릴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헌재연구관 출신의 법조인은 "문 소장대행이 전원일치로 끌고 가겠다는 목표 때문에 기일 지정을 못 하는 것이라면 의지가 아닌 독선"이라며 "헌재의 좌고우면이 계속되면 그 권위와 신뢰 추락이 불가피하고, 선고 결과에 대한 불복 움직임도 더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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