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도 ‘혼밥’ 먹는 한국인들

홍정수 기자 2025. 3.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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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2025 세계 행복보고서
‘홀로 저녁’ 빈도 G20중 가장높아

한국인은 일주일에 타인과 저녁 식사를 하는 횟수가 평균 1.6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인 스스로가 전반적인 삶의 질을 평가해 매긴 ‘주관적 행복 점수’에서도 전 세계 147개국 중 58위에 그쳤다. 지난해보다 6계단 떨어진 수치다.

20일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세계행복보고서 2025’에 따르면 한국인의 2022∼2023년 이른바 ‘저녁 혼밥’ 빈도는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높았다. 보고서는 ‘식사 공유’가 소득, 취업 상태 못지않게 행복과 직결되는 요소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연령, 성별, 국가, 문화를 막론하고 다른 이와 함께 식사하는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분석했다. 잦은 ‘혼밥’은 행복감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다.

연구를 진행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알베르토 프라티 교수(경제학)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고령일수록 혼밥이 잦은 편이지만 이 추세가 머잖아 젊은 층으로도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학교와 직장 등에서 크고 긴 테이블을 놓아 여러 사람이 식탁 주위에 모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인, 주 5번 이상 ‘저녁 혼밥’… 행복지수 6계단 밀려 58위

‘함께 식사’ 점심 포함해도 주 4.3회
1인 가구 증가 속 청년 혼밥 늘어
세계적 감소세 절망사, 韓은 증가
“기부-봉사-타인 돕기 권장해야”

● 외로움 직결된 혼밥, 젊은 층서도 증가 전망


한국인의 식사 공유 횟수는 2022∼2023년 저녁 식사 기준으로 1주일 평균 1.6회였다. 조사대상 142개국 중 135위였고, G20 중에서는 일본(1.8회)과 함께 최하위권이었다. G20 중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5.0회), 호주(4.9회), 멕시코와 캐나다(4.8회), 아르헨티나(4.7회), 브라질과 이탈리아(4.6회) 등이 타인과 저녁 식사를 많이 즐기는 나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점심을 합해도 타인과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1주일에 평균 4.3회에 그쳤다. 중남미 국가들이 평균 8.8회, 북미·호주·뉴질랜드와 서유럽이 각각 8.3회인 것과 대조된다.

혼밥 빈도는 여러 국가에서 연령대가 높을수록 많았다. 특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주간 식사 공유 횟수는 30세 미만에서는 6.4회였지만 60세 이상에서는 4.6회로 뚝 떨어졌다. 다만 1인 가구 증가 추세 속에서 각국 젊은이의 혼밥도 늘고 있다. 심층 사례연구가 진행된 미국에선 2003∼2023년에 18∼24세의 혼밥이 180% 이상 늘었다.

문제는 혼밥이 인간의 외로운 감정을 고조시킨다는 점이다. 주 12회 이상 식사를 공유한다고 밝힌 사람의 18%만이 “어제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반면 1주일 내내 혼밥을 한다고 답한 그룹에서는 38%가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얀에마뉘엘 더 네버 영국 옥스퍼드대 웰빙연구센터 소장은 “사회적 고립과 정치적 양극화 시대에 사람들을 식탁에 모으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라티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학생식당에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것처럼 긴 나무 테이블을 놓는 전통이 있다”며 “구내식당 등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장소들을 이런 식으로 설계하는 것도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자원봉사 많이 할수록 ‘절망사’ 감소

자살, 약물중독,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뜻하는 ‘절망사’의 경우 2000∼2019년 조사대상국 59개국 중 43개국에선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한국에선 절망사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망사가 늘어난 16개국 중 가장 많은 증가세를 보인 나라는 10만 명당 연간 평균 1.3명이 증가한 미국이었고, 한국과 슬로바키아가 각각 2, 3위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60세 이상 남성의 자살이 늘어나 우려를 낳고 있다.

연구진은 한국과 미국을 8년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 오른 핀란드의 사례와 비교해 주목했다. 한국과 미국은 절망사 수치도 높고 증가세도 가팔랐다. 반면 핀란드는 절망사 수치 자체는 한국과 비슷했지만 10만 명당 연간 평균 약 0.9명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의 차이로 한국과 미국에서는 기부, 봉사, 낯선 사람 돕기 같은 친사회적 행동이 줄었지만, 핀란드에서는 늘었다는 것을 꼽았다. 연구 담당자인 룩셈브루크 국립통계경제연구소의 프란체스코 사라치노 연구부국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절망사는 단순히 현재 삶의 만족도보다는 미래에 대한 장기적 희망과 관련이 높다”며 “친사회적 행동은 개인이 희망을 잃는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막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친사회적 행동을 자살 고위험군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게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경쟁보다 자원봉사를 장려하고, 정부가 친사회적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는 옥스퍼드대 웰빙연구센터, 여론조사회사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협업해 매년 발간한다. 올해 세계 행복 순위는 핀란드(10점 만점에 7.736점)와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1∼4위를 차지했다. 아프가니스탄은 1.364점으로 ‘가장 불행한 국가’에 올랐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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