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여 명 도시 인구가 자처한 불편

이안수 2025. 3. 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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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안티구아, 역사적 경관 보호하려 현대적 건축 금지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과테말라의 안티구아(La Antigua Guatemala)는 16세기 초에 스페인 식민 정부에 의해 '산티아고 데 과테말라(Santiago de Guatemala)'라는 이름으로 설립(1543년 3월 10일) 되었다.

당시 남부 멕시코와 중미 지역의 식민 총독부가 위치했던 곳으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설립 이후 수도로서 200여 년 이상 번성했던 이 도시의 수도 기능이 현재의 과테말라시티로 이전된 것은 1773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한 파괴 때문이었다.
▲ 안티구아 18세기의 색과 모습 그대로인 안티구아
ⓒ 이안수
▲ 엘 카르멘 성모 교회 지진으로 파괴된 성당은 섣부르게 복원하는 대신 고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 이안수
안티구아의 도시 운명은 지진이 좌우했다. 1717년 9월에 발생한 '산미겔 지진(산 미겔 아르칸헬축일에 발생해 이 이름으로 불림)'에서 성당과 수도원을 포함한 3천여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1751년 3월에 발생한 '산 카시미로 지진(산 카시미로축일에 발생)에 이어 1773년 7월 산타 마르타 지진(산타 마르타축일에 발생)으로 도시가 거의 파괴되고 약 500~600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이어졌다. 이 피해로 인해 수도는 이전되고 1717년 이후 50여 년간 활발했던 건축은 중단되었다.

오늘날 안티구아는 지진 후 온전히 남은 건물들은 그 모습 그대로, 완파되거나 반파된 건물은 일부 기능만 부분적으로 복원된 체 대부분은 폐허 자체로 남아있다.

이렇듯 17세기와 18세기의 건물 형태로 남은 안티구아의 시는 도시의 역사적 경관을 보호하는 것의 가치를 자각하고 1944년에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고 1969년 '안티구아 보존법(Ley Protectora de la Ciudad de La Antigua Guatemala(Decreto 60-69 del Congreso de la República))'을 제정한 후 기존 건축물에 대해서 보존과 복원만이 가능하도록 하고 도시 내에서 현대적 건축을 금지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1979년 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방문객들은 이 도시 형성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예술 및 건축 스타일이 반영된 화려함과 장식성이 두드러진 바로크 양식의 성당과 수도원, 관공서를 비롯한 주요 건축물과 주거 건물로 가득한 300여 년 전의 시간 속을 거닐 수 있게 되었다.
▲ 옛 샌프란시스코 수도원 지진으로 살아 남은 부분은 부분 복원후 기도처로 사용중이다.
ⓒ 이안수
▲ 성상 행렬 이 역사적 도시에서는 성주간이나 성모 승천 대축일과 같은 중요한 종교 행사 시기에 성상을 모시고 시내를 도는 행렬로 유명하다.
ⓒ 이안수
이 도시의 보존과 복원은 특정된 50여 개의 기념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포괄하는 역사적 단지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갈길을 비롯한 개인 주거용 건물 모두가 포함된다.

도시 내 건물의 재사용은 허용되지만 복원 및 유지 보수는 '안티구아 보존법'에 따라 설립된 '안티구아 과테말라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CNPAG : Consejo Nacional para la Protección de la Antigua Guatemala)'의 엄격한 기준에 따른 관리, 감독하에 이루어진다.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 내 표지판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73년부터 공지, 광고, 표지판 및 안내판의 배치에 대한 원칙이 적용되어 도시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시각적 오염을 배제하고 있다.

건물의 색상 규정에 따라 색의 사용에 있어서 아주 엄격한 지침이 적용된다. 모든 건축물은 흰색을 포함한 10개의 색상 차트에 제시된 색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차트는 고고학 연구를 통해 식민지 시대에 가장 흔한 색상을 밝혀내고 그 당시의 색상 유형을 바탕으로 했다.

"페이트 1파운드와 석회 1파운드, 물 1갤런, 콘크리트 1/8을 섞는다. 어두운 색상 위에 칠할 경우 먼저 석회로 프라이머를 발라 두 겹 칠한 다음 1시간 건조해야 한다"와 같이 건물 외벽에 색상을 구현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 색상 및 간판 규정 건물의 색상과 간판 등 설치물들은 안티구아 과테말라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CNPAG)의 엄격한 규정에 따라야한다.
ⓒ CNPAG
▲ 호텔의 간판 CNPAG의 규정에 따른 한 호텔의 간판과 벽의 색. 간판은 규정된 규격과 소재에 따라 만들어 벽에 부착해야하고 외벽의 색은 10개의 색상 차트에 따라야한다.
ⓒ 이안수
간판 규정도 마찬가지이다. 크기는 '세로 70cm x 가로 70cm', '세로 50cm x 가로 50cm', '세로 25cm x 가로 200cm'의 3가지 규격이 최대치로 이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재료는 나무, 금속(어두운 배경 및 무광 마감), 세라믹 타일, 단철, 청동 등이며 섞어서 사용할 경우 2가지를 넘어설 수 없다.

색상은 3가지 색 미만으로 사용해야 하며 너무 밝거나 화려해서는 안 된다. 페인트와 바니시에는 무광 마감하는 것을 권한다. 도시의 식민지 시대 유형을 벗어나는 현대적인 디자인이나 글꼴을 사용하지 못한다.

사업체를 표기하는 도형의 경우 로고 외에 다른 유형의 이미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간판은 한 사업체당 하나만 허용된다. 세우는 모든 설치물은 금지되며 반드시 벽에 부착해야 한다. 절대로 공공장소에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 도시의 사람들은 지진의 비극을 비극 상태로 머무는 대신 도시 기능이 이전된 후 더 이상의 개발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호재로 삼았다.

파괴된 유적과 집을 새롭게 신축하는 대신 81년 전에 도시 전체를 국가 기념물을 지정하고 56년 전에 강화된 '안티구아 보존법'을 만든 다음 그 법령을 시행할 '안티구아 과테말라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를 만들어 도시가 18세기 이전의 모습으로 머물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티구아는 재현된 민속마을이 아니라 300년 전 모습 그대로 박제된 도시이다.
▲ 18세기의 색과 모습 그대로인 안티구아 처음 안티구아에 도착하고 모든 창문마다 쇠 혹은 나무로 모든 창문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에 의아했다. 중미 어느 도시보다도 안전하다고 하는 이도시에 이처럼 외부 침입을 방지하기위한 철망이 필요하다면 거리에는 얼마나 범죄자가 많을까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철공소를 방문해 왜 여전히 창문보호용 철망의 주문이 들어오는 지를 물었다. 그것은 강도의 침입을 막기위한 안전기능보다 식민지 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존하기위한 건축규정의 일환이었다.
ⓒ 이안수
▲ 안티구아 18세기의 도시속에서 느린 삶을 사는 사람들. 도로는 그 시대의 포장방식인 자갈포장이다.
ⓒ 이안수
위압적이지 않는 낮은 종탑을 가진 사각형 교회, 건물 속 거대한 공공 정원, 장식용 분수가 딸린 주택들... 지진이 이 도시를 파괴할 때까지 융성했던 특징 그대로가 지금의 모습이다.

2004년 시의회에서는 안티구아를 '신비 도시(Ciudad Mística)'로 선언했다. 안티구아는 과테말라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중심지이며 사마나 산타(Semana Santa, 성주간) 행렬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과테말라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1655년에 만들어져 안치된 '라 메르세드의 나사렛 예수상(Jesús Nazareno de La Merced)'과 같은 많은 성상들, 화산으로 둘러싸인 자연경관 등은 영적,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도시 정체성의 바탕이 된다. '신비 도시' 선언은 이 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5만여 명의 사람들은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포장으로 얼마든지 쾌적해질 수 있는 도로들은 여전히 자갈밭이다. 주차빌딩을 지어 주차를 수용할 수도 있는 해결책을 두고도 신축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고수한다. 모든 도로는 일방통행이며 행사 때 차량은 도시 밖에 두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물론 자처한 불편이다.
▲ 분수대가 있는 공권 자카란다 꽃이 한창이다.
ⓒ 이안수
▲ 전통시장 안티구아에는 일주일에 3번 전통시장이 열린다.
ⓒ 강민지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는 간판이 없다. 번지 표시가 이 건물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것이자 모든 것이다. 아내는 배달을 기다리는 대신 일주일에 세 번 걸어서 전통시장에 간다. 그 걸음걸이를 통해 시계 대신 사람의 삶을 보게 된다.

우리는 5개월 동안의 이 도시 정주를 통해 편리와 효율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 시간을 벗어나 불편이 주는 감정적 이완을 경험하고 있다. 폭주 열차에서 하차한 느린 시간 속에서 자카란다가 활짝 핀 나무와 좀 더 오래 눈 맞추고 옆 사람의 좀 더 긴 얘기에 귀 기울이는 관계 속에서 목적이 아닌 과정을 사는 현존의 기쁨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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