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요산요설(樂山樂說)] 18. 눈 쌓인 산에 첫 길을 내는 수고

최동열 2025. 3. 11. 00: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동 지역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계단 등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산길에 많은 눈이 쌓이면 어디가 길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설산에 길을 내려면, 등산로를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밤새 폭설이 덮친 산에 가장 먼저 길을 뚫는 일은 주로 그 지역 산악회원들이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후행자들을 위한 아름다운 보시행
▲ 폭설 쌓인 산에 길내기

영동 지역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3·1절 연휴부터 사나흘 간 이어진 폭설로 설악산은 물론이고 대관령을 비롯해 산간 고지에는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이 쌓인 곳도 많습니다. 덕분에 동해안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의 설경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고산준령이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눈부신 나신을 드러내는 장관을 목도하는 것은 이즈음 동해안 관광의 백미라고 할만합니다.

이렇게 심설(深雪)이 쌓인 산을 등산하다 보면 문득 의문이 듭니다. ‘폭설이 내린 산길에 맨 먼저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하는 것입니다.

계단 등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산길에 많은 눈이 쌓이면 어디가 길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나무 사이, 여기도 길인 것 같고, 저기도 길인 것 같은,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기 십상입니다. 그런 산에서 길을 잃는다면, 필연적으로 조난 사고로 이어지기에 길을 찾는 것은 산행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눈 덮인 산에 가장 먼저 길을 내는 누군가는 등산객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가 있어 후행자들이 안전하게 산행을 이어갈 수 있으니, 설산(雪山)에 길을 내는 그 누군가는 ‘산길 지킴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설산에 길을 내려면, 등산로를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밤새 폭설이 덮친 산에 가장 먼저 길을 뚫는 일은 주로 그 지역 산악회원들이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지역의 산을 찾아오는 등산객들의 안전과 길 안내를 위해 새벽잠을 설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등산 중 선두에서 눈길을 뚫고 나가는 것을 등산 용어로 ‘러셀(Russel)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눈이 쌓인 산길을 헤치고 나가는 것은 평상시 등산보다 훨씬 힘겨운 일입니다. 그래서 러셀 산행은 두세 명 적은 인원으로는 무리이고, 여러 명이 교대로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 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후일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는 시가 있습니다. 또 ‘열매를 딸 때는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거창한 비유 같지만, 설산에 가장 먼저 길을 내는 보시심의 수고 또한 공동체를 위한 미덕이라는 점에서 아름답고 고마운 일임이 틀림 없습니다.

폭설 후 설경이 눈부시니, 저 눈이 다 녹기 전에 첫 발자국을 남긴 보시심을 마음에 새기면서 산행을 한번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강릉본부장

#최동열 #요산요설 #樂山樂 #동해안 #백두대간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