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자연이 준 용기, 웅크렸던 소년 날게 해 준 감각들

김진형 2025. 2. 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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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만 안 갈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똥 밟아도 좋고 소똥 밟아도 좋다. 학교만 안 갈수 있다면 밥을 열흘 굶어도 좋다. 이빨 드러내고 다가오는 학교, 혀 날름대며 다가오는 학교, 으악 도망치자, 저리 가 꺼져, 이건 꿈일 거야, 어서 꿈에서 깨야 해." 2월도 벌써 끝나간다.

말 못할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천에서 양양으로 강제전학을 온 6학년 '황장호'가 환대의 자연 속에서 성장한 1년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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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 탁동철 창작동화
양양 산골 학교 배경 성장담
자연 속 어울림으로 상처 회복
믿음과 인정의 가치 녹여 내
토속적 강원 풍경·언어 감칠맛
▲ 탁동철 작가의 동화 ‘장호’에 수록된 나오미양 작가의 삽화.

“학교만 안 갈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똥 밟아도 좋고 소똥 밟아도 좋다. 학교만 안 갈수 있다면 밥을 열흘 굶어도 좋다. 이빨 드러내고 다가오는 학교, 혀 날름대며 다가오는 학교, 으악 도망치자, 저리 가 꺼져, 이건 꿈일 거야, 어서 꿈에서 깨야 해.”

2월도 벌써 끝나간다. 봄이 오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만 한다. 말 못할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새학기가 되면 힘들었던 일들은 금방 지나간다고 응원해 주고 싶은 것이 모든 어른들의 마음이다.

속초 대포초교 교사로 근무하는 탁동철 작가가 장편동화 ‘장호’를 펴냈다.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천에서 양양으로 강제전학을 온 6학년 ‘황장호’가 환대의 자연 속에서 성장한 1년간의 이야기다.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 아닌 자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세상을 돌려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작품 속 장호의 상처는 크다.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큰 상처를 겪었고 인천에서의 학교생활도 원만하지 않았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며 늘 혼났던 아이는 ‘나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는 스스로를 할퀴는 일에 익숙했다. 자신을 괴롭히고 때리는 친구와 다퉜고, 결국 여덟 살 때까지 살았던 양양의 산골 할아버지 집으로 오게 됐다.

장호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물까치의 비행과 흙바닥을 꾸물꾸물 기어가는 애벌레를 볼 줄 안다. 계절마다 다른 개구리 울음 소리도 듣는다. 그러니까 장호는 자신만의 말과 감각하는 법을 자연 속에서 찾은 아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가기 싫었던 학교. 서먹해 하던 장호는 시골 학교생활에 점차 적응해 나간다. 작품 초반부 벌칙으로 시작한 ‘구덩이 파기’ 장면이 압권이다. ‘인간 굴삭기’, ‘삽질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로 장호의 삽질은 기가 막혔다. “잘한다”고 칭찬해 주니 아무리 힘들어도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장호와 친구들이 팠던 것은 마음의 응어리였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판 구덩이, 뭐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을까. 친구들과 함께 할수록 장호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인정받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닫혔던 말문도 열린다. “세상에 나도 있다”는 생각이 드디어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해도 “우리 손주처럼 훌륭한 사람 난 못 봤다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무한 믿음 속에 아이는 더욱 건강해진다. 친구 ‘두찬’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고집하다가도 장호에게 손을 내밀고, ‘수빈’이는 장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후반부 친구들과 함께 썰매를 타고 “날자”라고 소리치는 부분은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강원도 산골의 정서와 풍경을 몰입도 있게 그려낸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끝도 없이 재생되는 작은 화면 속 시시한 숏츠에 빠져 영혼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 때, 장호의 감각을 거쳐 전해지는 양양 작은학교와 산골마을의 풍경을 상상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 탁동철 창작동화 '장호' 

지역성을 바탕으로 작가 개인의 고유성도 강하게 드러난다. 몸으로 체험한 문학적 울림이기도 하다. 호르르륵 밤늦게 울어대는 산개구리 소리도 그렇고, “핵교 앙이 보내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잖어”라며 특유의 영동사투리를 구사하는 할아버지 모습도 감칠맛 난다. 아이는 그렇게 온몸으로 생명의 힘을 느끼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창작동화지만 교사로서의 경험적 요소도 짙게 느껴진다. “자꾸만 웅크리는 아이들을 만나면 내 마음 속엔 장호가 더 크게 자라났다”는 말이 뒷받침한다. 작가는 언덕 위 운동장에서 날마다 술래잡기도 하고 시 쓰기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 안에서 ‘장호’도 함께 성장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김진형

#김진형 #감각들 #아이들 #친구들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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