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종점으로 내몰린 사람들 ‘타자의 벽’ 앞에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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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든 자산이든 '상승'하는 날은 드문 반면, 잔인한 추락은 흔히 접하는 세상이다.
행복을 그리던 꿈도 일순간에 강탈당하기 쉽다.
작가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기인한 차별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현실을 서늘하고도 담담하게 묘사한다.
타자를 포용하기 보다는 배척하는 제로섬의 잔혹동화에 가까운 묘사를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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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만화방’등 단편 8편 수록
동화적 상상력 속 디스토피아
사회구조적 차별 담담히 묘사
기분이든 자산이든 ‘상승’하는 날은 드문 반면, 잔인한 추락은 흔히 접하는 세상이다. 행복을 그리던 꿈도 일순간에 강탈당하기 쉽다. 자신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면 이미 위험한 함정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춘천 출신 김담이 작가의 첫 소설집 ‘경수주의보’가 나왔다. 현실과 디스토피아를 넘나드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당신들을 위한 낯선 천국’,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세요’, ‘낭만적 진실’, ‘유령들’, ‘툭’ 등 8편의 작품을 실었다.
작가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기인한 차별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현실을 서늘하고도 담담하게 묘사한다. 타자를 포용하기 보다는 배척하는 제로섬의 잔혹동화에 가까운 묘사를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 찾는다.
“사장은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문학이여! 영원하라’라고 외치며 잔을 높이 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연거푸 소주 석 잔을 들이켜더니 문학의 암담한 미래를 한탄했다. 나는 당장 카드 대금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보테가 베네타 클리어런스 숄더백을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작품 ‘종점만화방’ 중)
그의 소설에서는 유난히 출판사가 자꾸만 망한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가장 마지막에 실린 ‘종점 만화방’은 사회적 벽에 갇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종점’에 이르는 모습을 통해 계급 간의 분리와 인간 존엄성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작품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세요’에서도 그림책을 계약한 출판사가 도산한다.
‘낭만적 진실’에 등장하는 가난한 희곡 작가는 생활고로 구걸까지 고민한다. 그토록 원하던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작가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여름을 맞는다.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세요’에서 역시 서점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의 서점 주인은 다음 주인이 올 때까지 서점을 떠날 수 없다.
표제작 ‘경수주의보’는 자본의 억압 아래 있는 작가를 빌려 ‘작가다움’과 작금의 시대에 ‘작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추적한다. 작가의 모든 이야기는 삶과 죽음, 불평등과 경계, 생존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결국 넘어야 하는 것은 계급의 벽이 아니라 타자의 벽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유성이 떨어진 마을, SF의 세계관이 녹아든 작품 ‘태양속으로 한 발짝’은 더 절망적이다. 태양이 저물지 않고 세상을 불사르는 재난이 마을을 덮친다. 폭염이 계속되자 물은 말라버리고 전염병이 죽음을 몰고 온다. 마을 사람들은 떠나가고 남은 것은 괴물과 사냥꾼과 돌연변이다. 끝없는 투쟁상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김담이 작가는 “소설을 쓰는 내내 힘들었다. 실제로 몸이 아팠다. 그래도 마음을 다해 썼다”며 “소설을 완결 짓고야 아프던 몸은 나았다. 그제야 봄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김진형
#김진형 #사람들 #경수주의보 #낭만적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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