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나가라" 외치는 팬들, 이승엽-이숭용만 문제였을까
[이준목 기자]
▲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 kt wiz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한 두산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24.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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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감독 모두 kt가 달성한 이변의 제물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숭용 감독이 이끄는 SSG는 올시즌 kt와 프로야구 사상 첫 5위 결정전에서 중반까지 리드를 잡았다가 3-4로 막판 대역전패를 당했다. 특히 불과 사흘 전 선발로 등판하여 무려 97구를 던진 에이스 김광현을 무리하게 구원투수로 투입했다가 멜 로하스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내준 장면, 부상으로 정상적인 스윙을 어려운 최고참 추신수를 9회초 대타로 내보냈다가 무기력한 삼진으로 물러난 장면은 이숭용 감독의 가장 치명적인 패착으로 꼽혔다.
이승엽 감독의 두산은 kt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에 2연패하며 사상 최초로 4위팀이 업셋을 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2경기에서 18이닝 동안 단 1점도 뽑아내지 못한 것도 와일드카드 시리즈 사상 두산이 최초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해는 5위로 와일드카드 시리즈 첫 경기만에 NC에 패해 탈락한 데 이어 2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쓴 맛을 봤다.
성난 SSG와 두산 팬들은 경기가 끝난후, 무기력한 패배에 책임을 물어 각각 "이숭용 나가", "이승엽 나가" 구호를 외치며 감독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일부 SSG 팬들은 이숭용 감독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거는가 하면, 경기 패배 후에는 구단 버스를 둘러싸고 감독 퇴진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또한 두산 팬들은 이승엽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응원가를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도 두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는 누리꾼들의 험악한 비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숭용과 이승엽, 두 감독은 모두 한국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레전드 출신이다. 이숭용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 왕조의 주역이자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불리우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이승엽 감독은 삼성의 간판 스타이자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호령한 대선수였다.
다만 지도자로서는 이숭용 감독이 올해 첫 데뷔한 초보감독, 이승엽 감독이 2년 차에 불과하다. 두 감독 모두 사령탑을 맡은 뒤에는 선수 시절의 명성에 비하면 아직까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팀 성적과 엇갈리는 리더십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실 두 감독을 향한 여론이 이 정도로 나빠진 것은 이번 가을야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숭용 감독의 전임자인 김원형 감독은 2022년 SSG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고 지난해도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도 경질됐다. 이승엽 감독의 전임자인 김태형 감독(현 롯데)은 마지막 해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재계약이 불발됐지만, 두산에서 사상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의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검증된 전임자들에 비하여 이숭용 감독과 이승엽 감독은 선수 시절 명성은 높았지만 지도자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초보 감독이었다. 특히 이승엽 감독은 두산 사령탑을 맡기 전까지 아예 지도자 경력 자체가 전무했다. 이는 부임 당시부터 감독 선임의 당위성과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두 감독이 여론을 반전시킬만한 확실한 성과나 색깔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리빌딩이 아닌 '리모델링'를 표방했던 SSG는 이숭용 감독 체제에서 최정-김광현 등을 보유하고도 6위에 그치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작년까지 3년 연속 팀홈런 1위를 기록했던 홈런군단의 장점이 퇴색하고 어설픈 스몰야구와 세대교체 실패로 고유의 색채를 잃은 팀이 되었다는 것도, 이숭용 감독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 이유다.
이승엽 감독은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하며 표면적인 성과는 이숭용 감독보다 나았지만, 과도한 유망주와 불펜 혹사, 총력전에 대한 집착 등으로 이미 지난 시즌부터 두산 팬들로부터 계속해서 비판을 받아왔다.
프로의 세계에서 감독이 성적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령탑에게만 과도한 비난의 초점이 맞춰지는 현상과, 일부 극성 팬들의 행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감독은 팀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다. 올시즌 SSG와 두산이 어려움을 겪은 데는 감독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SSG는 전임 감독과 단장의 석연치않은 교체 논란과 비선실세 의혹 등으로 팀의 방향성을 스스로 흔들어놓은 구단의 패착이 컸다.
두산은 외국인 선수들의 줄부상과 선발진 붕괴로 정규시즌 내내 어려움을 겪어야했고, 포스트시즌에는 간판스타인 포수 양의지마저 부상으로 정상가동하지 못한 게 치명타였다. 오히려 이승엽 감독은 포스트시즌만 놓고 보면 팀 패배에 결정적으로 책임을 져야할만한 운영상의 실책은 없었다. 1차전에서 에이스 곽빈의 조기강판과 시리즈 내내 무득점에 그친 타선의 심각한 동반부진은, 감독이 대처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변수였다.
한편으로 최근 팬들이 감독을 비판하는 방식이, 갈수록 도를 넘은 '조롱'에 가깝게 변질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정당한 비판은 물론 팬들의 권리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인격적인 모멸감이나 수치를 주는 것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아예 감독에 대한 존칭도 생략하고 반말로 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경기와 상관도 없는 감독의 선수 시절 응원가까지 들먹이며 비꼬는 것은, 그저 감정적인 화풀이에 불과하다.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팀의 모든 문제와 불만을 막무가내로 감독에게만 전가하려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모든 팬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명장은 이 세상에 없다. 현재 가을야구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팀들의 감독도 올시즌 내내 각양각색의 이유로 수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1위팀 감독조차 조금만 부진할때는 '최악의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게 일상이다.
가을야구 결과에 따라 다음엔 또 어떤 감독이 팬들에게 '나가'라는 원성을 듣게될지 이제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프로야구 감독들에게는 유난히 춥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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