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대형 로펌 출신인데 월급 100만원만 받는 '이상한' 변호사
[박정우 기자]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개인적으로도 꽤 재미있게 보았는데, 최근 출간한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을 읽고 어쩌면 진짜 이상한 변호사는 우영우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윤지영이 아닌가 싶었다. 윤지영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올라탔다고 해도 무방했다.
변호사 윤지영은 3년 만에 스스로 로펌을 나왔다. 그리고 기꺼이 돈 안 되고 고된, 노동인권 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윤지영은 스스로를 '노동 사건만 하는 변호사다. 그것도 노동자 편에서만 일을 한다'고 말한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은 변호사 윤지영이 부당하고 억울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 함께 울고 웃으며 싸워왔던 기록들이다. 11편의 에피소드는 한 편 한 편이 마치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재미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관련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고, 이 모든 사건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아프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적게 받고, 너무 많이 죽거나 다친다. 노동의 가치는 갈수록 퇴색되는데, 노동자의 처우는 갈수록 나빠진다. '법이 과연 무슨 소용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윤지영 변호사 같은 이들이 있다. 윤지영은 여전히 사회가 배제하고, 정치가 외면하고, 법이 보호해 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싸운다.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오늘도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15일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의 저자 윤지영 변호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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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영 변호사 |
ⓒ 윤지영 |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었다. 그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사회복지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처럼 가난한 집에서 몸뚱이 하나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게 변호사라고 하셨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법대를 진학했고,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됐다.
사실 변호사 생활을 대형 로펌에서 시작했던 건 사법연수원 시절에 진 1억 원에 달하는 빚 때문이었다. 생계를 꾸릴 사람도 나뿐이었고, 돈 나갈 일도 많았다. 결국 3년 일하고 빚을 갚고 나와버렸다."
- 굳이 로펌을 그만둔 이유는 뭐였나?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대형 로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버는 데는 그만큼의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거기서는 내가 공부한 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무기로 사용해야 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했고, 가지지 못한 사람을 핍박해야 했다.
돈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그만한 이유는 다 있는 거고,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 됐나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지향이 다르다. 그러니 이건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였을 텐데, 그중에서도 왜 하필 '노동'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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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조합원 상경투쟁교육 |
ⓒ 윤지영 |
"솔직히 불만족스럽다.(웃음) 물론 일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긴 하지만 암울한 현실을 계속해서 목도해야 한다. 문제가 잘 풀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잘 안 풀리는 경우도 많다. 노동 사건이라는 게 대부분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일이다. 소송을 가더라도 이기기 어려운 구조인 경우도 많다.
정말 이 일을 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품은 품대로 들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일도 아니다. 지금 내가 대표로 있는 '직장갑질119'에서 받는 월급이 100만 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의 생활로 들어오면 사실 고달프다. 그럼에도 '다른 걸 할 거냐?'라고 물어보면 못 하겠다. 마치 숙명 같다. 노동 사건을 접할 때 본능적인 끌림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친다. 그게 결국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그간 변호사님께서 대리했던 노동자들의 법정 투쟁을 모은 책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을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신다면?
"지난 15년 동안 노동 사건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종의 법정 투쟁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어떻게 싸웠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열한 분의 노동자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부모, 형제, 동료들이거나 혹은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
사실 노동이라는 게 우리의 일상이지만 동시에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기도 하다. 현실이 너무 암울해서 보고 싶어 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에 관해서 공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노동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좀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구성했다. 독자들이 공감하길 바랐고 동시에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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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표지 이미지 |
ⓒ 출판사클 |
"국정원의 구조를 보면 여성이 주로 일하는 직군과 주로 남성이 주로 일하는 직군이 나뉘어 있는데,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군의 정년은 43세고 남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군은 정년이 57세로 정년 차등이 있었다. 이 여성 직원들이 차별에 맞서 싸워 이긴 사건이다. 이 사건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정리하면 쉬운데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요즘엔 노골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하는 방식이 아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직군을 나누고, 직군 간의 차등을 둔다. 명백하지만 교묘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일을 분리하고 그 일 자체를 차별하면 눈에 보이는 성차별이 아니기 때문에 입증이 까다롭다. 이 사건 같은 경우도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엔 간접차별도 성차별이라는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승소한 덕분에 국정원 내 직군 정년 차별이 없어지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도 뿌듯한 마음이 있다."
- 말씀하신 사례가 일종의 젠더 갑질에 속하는 영역인 것 같다. 직장갑질119에서 했던 '젠더 갑질'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1위로 나오기도 했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직장갑질119에도 정말 많은 문의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것도 노골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주는 방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승진을 안 시킨다거나, 성과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임금 차이를 두는 경우가 많다. 보다 근본적으로 차별하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채용을 할 때 남성만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식이다. 실제 대전 MBC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는 일은 차이가 없는데 여성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뽑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남녀 임금 차별이 단순한 임금을 떠나 고용 그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 같은 업무를 하는데 여성보다 승진도 빠르고, 임금도 더 많이 받는다면 굳이 이 문제에 함께 싸우고, 연대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선 자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웃음) 젠더차별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그 자체의 문제다. 처음 기간제가 생기고 여기에 많은 사람이 침묵한 덕분에 기간제는 파견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야말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프리랜서가 넘쳐난다. 이를테면 지금 배달노동도 플랫폼화 되지 않았나. 이로 인해 여성 다음으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이들이 청소년이었다. 결국 안 좋은 일자리들은 약한 사람'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약한 사람'부터' 공격한다. 이후 공격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영역은 점점 확대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제가 남녀의 대립구조로 가는 걸 경계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 좋은 일자리가 80개였다면 남성이 50개, 여성이 30개를 가져가고,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이 20명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남성이 좋은 일자리 60, 70개를 가져가는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다.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남성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씀드린 대전MBC가 그렇다. 처음엔 여성 아나운서만 프리랜서로 뽑았지만 어느 순간 남성 아나운서도 프리랜서로 뽑게 되었다. 나쁜 일자리가 여성에게 돌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이 폐해는 돌고 돌아 우리 모두를 공격하게 된다."
- 말씀을 들어보니 갑갑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여성에 관한 구조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차별이 남성에게는 이익이라거나,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가정 내에서의 성평등도 중요하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몫이다. 여성의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가 되는 중요한 원인도 출산 문제다. 정부에서 저출생 얘기하면서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여성들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 젠더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나쁜 일자리들을 줄여나가야 한다. 노동의 사각지대를 줄여나가는 방식, 노동권이 존중 받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승윤 교수께서 '액화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은 노동이 녹아내린다는 의미다.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사이로 마치 액체처럼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에서도 다뤘지만 통신 판매업자, 보험 영업 노동자, 택배 노동자들 등등 이런 직군이 너무나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고, 문제가 생겨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제도, 법이 필요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현재 직장갑질119의 대표인데, 노동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떤 곳인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달라.
"직장갑질119는 박근혜가 탄핵되던 해인 2017년에 만들어졌다. 그때 수많은 이들이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는데 그들이 정작 본인 일터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갑질119는 '광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왜 일터에서는 이뤄지지 않는가?', '자기 일터로 돌아가면 왜 작아지는가?'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다. 이참에 일터 민주주의를 살리고 직장 갑질을 없앨 수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소방수 역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많은 활동가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한 덕분에 무사히 문을 열 수 있었다. 사실 갑질은 괴롭힘보다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부당한 대우부터 차별, 임금 미지급, 착취 기타 등등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모든 현실에 대해 상담하고 이를 토대로 제도 개선, 법률 개선까지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질 때 우리 단체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노조 밖에 있는 노동자,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분들이 기댈 곳이 별로 없다. 이분들을 상담하면서 기댈 곳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에 '직장갑질119'를 검색하면 누구나 익명으로 질문하고 상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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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국회토론회 |
ⓒ 윤지영 |
"거듭 말씀드리지만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에 실린 이야기는 내 문제일 수 있고, 내 친구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 내 형제자매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럴 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누구였냐? 하고 물어보면 뭐가 됐든 변호사는 아니었다. 물론 나도 열심히 했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 위로해 주는 사람,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당사자들이 싸우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암울한 노동 현실을 그렸지만 분명 이기는 사람들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시라고, 연대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노동은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같이 힘을 모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 중에 하나의 싸움은 다 같이 해결하는 거라는 내용이 있다.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곁에 사람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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