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질 듯한 포 소리…연평도 주민들 “이러다 일 날까 두려워”
“징그럽다” 극도의 긴장감에 대피소로
“익숙해진 것 같으면서도 포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덜컹해. 다시 6·25 전쟁이 터질 것만 같잖아.”
26일 오후 2시5분께부터 인천 옹진군 연평도 전역에 찢어질 듯한 포 소리가 이어지자 실향민 출신인 최도화(87)씨가 이렇게 말했다. 최씨와 함께 연평리 마을 정자를 지키던 주민들도 포 소리가 터질 때마다 “아이고 어떡하나”를 연발했다. 이들은 “연평 사람들이 이러고 산다”며 “섬을 지키는 것은 군인들이 아닌 우리들 아니겠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해병대가 ‘정례 K9 해상사격훈련’을 6년10개월 만에 연평도·백령도에서 재개한 이날, 연평도는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K9 자주포 등을 동원한 서북도서의 해상사격훈련은 ‘9·19 남북군사합의’(2018년 9월)로 중단됐다가, 최근 북한의 오물 풍선 다량 살포 등에 대응해 지난 4일 정부가 이 합의의 효력을 전부 정지하면서 이날 재개됐다. 앞서 지난 1월 연평도·백령도에서 한차례 해상사격훈련이 있었지만, 이는 당시 북한의 완충구역 내 해상 사격에 대응한 일회성이었다.
포 사격 훈련에 대비해 오전부터 연평면사무소에서 연신 대피 권고 방송을 하자, 주민들은 “오늘이 훈련이냐”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냐”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정오께 헬리콥터가 줄지어 훈련장 인근으로 날아가자 주민들은 굳은 표정으로 이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면사무소 직원들과 해병대 대원들은 훈련을 30분 앞둔 오후 1시30분께부터 대피소 인근에서 주민들을 안내했다. 남편과 함께 대피소를 찾은 박명선(78)씨는 “불안한 마음이 커서 대피소를 찾았다. 여기는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대피소 안에선 포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같은 시각, 연평도를 포함해 다른 서해 5도(연평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우도) 주민들도 대피소 이동 등을 안내받았다.
대피소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남아 있던 마을에는 ‘꽝!’ ‘꽝꽝!’ 포 소리가 날 때마다 건물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전해졌다.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있던 주인은 포성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정말 징그럽기 짝이 없는 소리”라며 가게 문을 쾅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으로 인해 이날 점심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음식점도 눈에 띄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포 사격 훈련에 따른 고통스러운 소음보다, 이에 대응해 북한이 무력시위 등 도발을 할까 봐 더 두렵다고 호소했다. “(예전엔 포 사격 훈련 소리에) 심장약을 먹은 사람도 있다. 대피소에 가 있으면 그나마 안심이 되니 대피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전해준 방아무개(65)씨는 “그래도 전 정부 때는 안정감이 있었는데, 이번 정부는 북한과 대립하니까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주민들이 겁에 질려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박은경(20)씨는 “오랜만에 다시 연평도로 돌아왔는데,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훈련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닌데, 훈련으로 인해 북한이 무슨 짓을 할까 봐 그게 무섭다”고 했다. 김순복(77)씨도 “북한이 보복할까 봐 무섭다. 북한이 언제 갑자기 도발할지 누가 알겠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훈련으로 연평도의 주업인 꽃게 어업에 차질을 빚을까 노심초사하는 주민도 있었다. 게다가 6월 말은 봄 꽃게철 막바지다. 김아무개(55)씨는 “꽃게철이라 바쁜데 꽃게 조업에 방해가 될까 걱정된다”며 “다들 오전 조업은 나갔는데, 오후 조업은 취소하고 돌아온다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포 사격 훈련으로 인해 백령도는 조업이 금지됐고 연평도는 자체적으로 출항을 자제했다.
이날 1시간가량 이어진 포 사격 훈련은 오후 3시3분께 종료됐다. 포성으로 멍멍해진 귀는 훈련이 끝나도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주민들의 얼굴에 흐르던 불안도 그대로였다. 고착에 가까워지는 한반도의 긴장이 연평도에 새겨지고 있었다.
연평도/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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