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지으며 보고 또 본 ‘백제의 미소’, 다시 일본으로…
금동관음보살입상 79년 만에 고국 돌아와 9만명 관람
솥에 담아 파묻은 백제인 마음 헤아리며 환수 협상 기대
불상 앞에서 관객들은 행복한 ‘따라쟁이’가 됐다. 한결같이 말 없는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미소년 같은 눈앞 불상의 표정을 따라 하면서 관람했다. 입을 살포시 다물고 떼면서 불상의 전후좌우 면을 두루 살피고 사진을 찍었다.
‘백제의 미소’란 별명이 붙은 가장 아름다운 백제불상이다. 1907년 백제 고도 부여에서 발견됐으나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종적이 묘연했던 비운의 불상이다. 2018년 극적으로 소재가 확인됐고, 79년 만인 올해 고국에 돌아와 선보인 7세기 금동관음보살입상의 공덕이 한국인들 마음을 울렸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지난 3월2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불교미술과 여성의 주제로 열었던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그 무대였다. 개막 직전 출품작 대열에 합류한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은 석달간 9만여명에 달한 관객들에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인 소장가가 막판 협의에서 선뜻 승낙해 빌려온 불상의 인기는 뜨거웠다. 1층의 1부 2섹션 들머리 불상 전시장은 특별전 내내 몰려든 학계 전문가들과 남녀노소 일반 관객들로 차고 넘쳤다. 불꽃 보관을 쓴 호리호리한 미소년 얼굴상부터 화려하면서도 야무지게 갈무리된 상반신의 천의 옷자락과 영락(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회오리 무늬가 새김된 속옷의 띠와 하반신 옷자락 장식을 거쳐 오른 다리를 살짝 내디디고 왼발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세번 몸체가 굽이치는 뒤태까지 젊은 남성과 여성의 자태가 서로 스며든 풍모는 볼수록 놀랍고 아련하다.
머리와 어깻죽지에 세월의 흔적인 푸른 녹이 슬었고 군데군데 홈 파인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관객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불상의 미소를 따라 지으며 2~3차례 관람하는게 관행이 됐다. 전시 종료 서너주 전부터는 평일에도 진열장을 관객들이 몇겹으로 에워싸고 불상 각 면을 한참 살펴보고 찍고 다시 보는 광경이 되풀이됐다. 이광배 호암미술관 연구원은 “불상을 실견한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은 아름다운 걸작 불상 앞에서도 일반 관객처럼 흥분하지 않고 표정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데, 이번 백제 불상 전시는 전문가와 관객이 같이 찬탄하고 미소를 따라 지으며 관람하는 초유의 현상이 이어졌다”고 했다.
애초 출품작으로 검토했던 유물은 아니었다. 불상 환수 협상이 매입가격 이견으로 벽에 부딪혀 논의 자체가 가라앉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불상은 1907년 충청도 부여군 규암면 벌판 땅속에서 솥단지 속에 다른 관음보살입상(국보·국립부여박물관 소장)과 함께 담긴 채로 발견된 뒤 일제 헌병대에서 수거해 관리하다가 대구에서 의원을 운영한 일본인 의사 이치다 지로가 1922년 샀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대 세키노 타다시 등 일본 학자들로부터 백제 불상의 최고 걸작이며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서도 손꼽는 수작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1929년 대구에서 열린 신라예술품전람회 말고는 공개된 적이 없었고 해방 뒤 이치다와 함께 일본에 건너간 뒤에는 전문가들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일본에서 소장자가 바뀐 채 불상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고 소장자가 한국에 매도를 원한다는 사실이 2018년 최응천 당시 동국대교수(현 국가유산청장)와 정은우 동아대 교수의 현지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과 국립중앙박물관 쪽은 불상을 진품으로 감정한 뒤 2018년 9월 박물관 학예직 간부와 미술사학자 등 전문가 5명에게 논의를 맡겨 매입 상한가격을 42억원으로 확정했는데, 소장자는 3배 이상인 150억원을 요구해왔다. 액수 차가 너무 커 협상은 진척될 수 없었고 한달도 안돼 소장자가 협의를 거부하면서 결렬된다.
이후 소장자와 사실상 협의가 단절됐던 상태에서 호암미술관 쪽은 전시 출품작 가운데 불상 등의 입체 조각물 비중이 너무 적다는 자문학자들의 지적을 받고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출품작으로 점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신반의한 가운데 소장자 쪽과 전시 준비 막판에 접촉이 시작됐고 전시 한달 전 극적으로 작품을 들여오는데 성공했다. 조각 부분에서 명품들을 다수 대여하지 못한 ‘구멍’을 이 불상이 막아주면서 대중의 눈길을 끌어모은 것이 전시 성공의 큰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재계의 관심사는 전시를 계기로 환수 협상이 재개될 수 있느냐로 모인다. 세계적인 불교명품들이 나온 고품격 전시에 백제 불상이 출품되면서 6년 전 협상 결렬로 냉각됐던 분위기가 풀린 건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재 당국과의 협상은 확정된 액수와 차이가 너무 커 재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시를 주최한 삼성문화재단 같은 민간 기구나 기업 차원에서 매입가 범위를 유연하게 조정하며 교섭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본에서 불상이 재확인된 뒤 ‘백제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유전, 그리고 그 성격’이란 논문(‘미술사와 시각문화’ 2020년 26호)을 처음 쓴 임영애 동국대 교수는 6세기 말 중국 수나라 보살상 양식에 몸의 육감과 굴곡 표현을 중시하기 시작한 당나라 초기 양식이 겹쳐진 7세기 중엽 백제 미술 절정기의 마지막 명작이라고 썼다. 1400년 전 부여 규암면 벌판(아마 절터였을 터다)에서 이 불상을 솥에 담아 파묻었던 이는 백제 멸망을 앞두고 절박한 마음으로 훗날을 기약한 왕족 혹은 승려가 아니었을까.
1400년 전 이름 모를 백제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다시금 환수 협상이 진척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불상이 출토된지 1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방치된 부여 규암면 외리 유적 일대를 제대로 발굴해 재개발 파도에서 지켜내고 불상을 묻을 당시 정황과 주변 유적들의 내력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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