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미러 하나 주웠을 뿐인데... 인생이 바뀌었다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5년에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공익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조명하는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기록하는 공모 프로젝트입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말>
[한량(오민진)]
|
|
| ▲ 2024년 4.16연대 활동 : 전국시민행진 |
| ⓒ 류현아 제공 |
영화 미술감독이었다는 현아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또 무엇이 그를 활동가의 길로 이끌었을까?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때마침 '만 3년 근속'으로 안식월을 보내고 있던 현아가 귀한 시간을 내주었다.
세월호 추모에서 시작된 활동가의 길
- 소중한 안식월에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떤 계기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처음 기억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로 거슬러 올라가요. 친구가 광화문 추모 행사에 간다고 해서 그냥 따라갔는데, 그날 현장은 정말 격렬했어요. 경찰과 충돌도 있었고, 경찰버스로 차벽이 세워져 분향소에는 도무지 접근할 수 없었어요. 경찰과 대치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차벽에 국화를 붙이기도 했고요.
저도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다 돌아왔는데, 제 손에 경찰버스 사이드미러가 들려 있는 거예요. 너무 웃기잖아요. 그날 현장 소회와 함께 사이드미러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아래 알바노조) 활동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앞으로 집회 같이 다니자고요. (웃음)
그때 저는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마침 알바노조에 인천지부가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와 함께 인천지부를 꾸리게 됐고, 그렇게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알바노조 활동하던 친구들 대부분이 여성이라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에는 불꽃페미액션 활동으로도 이어지게 되었어요."
- 활동가로서의 시작이 공교롭게도 세월호라니, 이것은 운명이었다? (웃음)
"그렇죠. 부모님께서 민주화운동을 하셨던 분들이라, 광장에 나가라고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저에겐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어요. 정의감이 엄청 높아서 학창시절에는 소위 '나쁜 친구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사회 운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거든요. 대학에서 공간 연출을 전공하며 무대 미술, 조명 미술, 영화 미술을 배웠어요. 그러다 페미니즘 영화 이론에 빠지게 됐어요.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이었는데,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여성의 몸이나 여성의 비체화 같은 표현이 크게 와 닿았어요.
나를 혐오스러워하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길 바라는 제 마음이 그 책과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학문적으로 페미니즘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평등이나 차별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어요. (웃음)
같은 시기에 영화를 정말 많이 만들었고, 처음으로 장편 독립영화 미술감독을 맡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휴학하기도 했죠. (웃음) 그 후에는 알바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답니다."
|
|
| ▲ 2019년 영화 촬영 현장 |
| ⓒ 류현아 제공 |
"맞아요. 진짜 딱 쉬면서 그런 계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래도 알바노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때 제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편의점, PC방, 카페, 뷔페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고, 카메라를 다룰 줄 알아서 결혼식 촬영 같은 아르바이트도 해봤어요.
당시 최저시급이 5천 원대였는데, 알바노조에서 '최저시급 1만 원' 운동을 벌였어요. 지금은 여러 이유로 1만 원이 되었는데, 그걸 이루는 데 딱 10년이 걸렸습니다. (웃음)
대학 졸업 후에는 영화 일을 본업으로 하면서 알바노조와 불꽃페미액션 활동을 병행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한 장면을 위해 준비하는 소품이 정말 많고, 세트도 콘셉트에 맞춰 짓기 때문에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너무 많았어요.
게다가 영화판 유리천장은 너무 심했고, 임금 격차도 컸어요. 여성 비중이 높은 미술팀과 소품팀은 남성이 대다수인 촬영팀, 조명팀보다 훨씬 오래 일하는데도 임금은 절반 수준이었어요. 남자들은 임금이 적다고 버티지 못하고 나가지만, 여자들은 견디더라고요. 그런 현실이 정말 화가 났어요. 영화판 조직문화도 좋지 않아 결국 도망쳤어요.
그래도 불꽃페미액션 활동을 계속해온 덕분인지 활동가라는 직업이 멀지 않게 느껴졌어요. 자본주의와 가장 멀리 있고, 쓰레기가 적으며, 건강한 조직문화 속에서 일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4.16연대와 인연이 닿았어요. 단체 웹페이지 디자인을 해주다가 활동가 모집 소식을 듣고 바로 입사했어요. 그때는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내가 안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 우여곡절을 겪고 들어간 4.16연대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저는 4.16연대 사업팀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을 맡고 있어요. 토론회 진행, 포럼 운영, 자료 수집, 재판 방청, 아카이빙, 기록 작업 등의 활동을 해요. 단체 전체가 참여하는 기억·추모 사업에서는 시민대회 개최, 추모 주간 선포, 온라인 추모 기획, 크라우드펀딩 등도 해요. 제가 다룰 줄 아는 디자인과 영상 작업도 맡고 있어요.
청년 TF팀에도 속해 있는데, 이태원 참사 추모 활동과 연대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우리는 세월호 세대이자 이태원 세대로 연결되잖아요. 그리고 청년 책모임도 운영하고,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를 주제로 아카데미도 준비하고 있어요."
- 지금 들려주신 활동이 너무 많은데 다 할 수 있나요?
"그럼요. 다 합니다. 이것이 활동가의 삶이니까요. 다 할 수 있어요.(웃음)"
- 사실 활동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궁금했는데 쉽게 물어보기 어려워서 <활동가들>이란 책을 읽었어요. 읽기 전에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멘터리스트나 연극인도 활동가일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활동가들이 오히려 예술가 같더라고요. 끊임없이 기획하고 창작하며 사람을 모아 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최적화된 인물이 현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실 다른 분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활동가가 됐을 수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달라요. 태어날 때부터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을까요?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살다 보니 너무 화가 나서 활동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활동가가 되고 나서야 멋진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멋진 활동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내가 안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
|
| ▲ 2024년 불꽃페미액션 활동 :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8주기 추모행동 |
| ⓒ 류현아 제공 |
"힘든 건 4.16연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활동하면서 만나는 관계나 사회 문제에서 사람들이 종종 이분법적으로 편을 가르거나 쉽게 답을 내리려는 태도 때문이에요. 저는 어떻게 해야 제3의 지대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내 편 아니면 네 편' 이렇게 사고하는 건 너무 쉽잖아요. 제3의 지대가 모든 화해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복잡한 걸 복잡하게 말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복잡하게 말하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져서 '나는 네 편이어야 해? 말아야 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라는 질문을 다시 떠안게 되더라고요. 결론은 여전히 우리는 쉬운 길을 좋아해요. (웃음)
이 고민이 깊어진 건 지금 제가 불꽃페미액션 대표를 맡고 있어서예요. 대표로서 대변할 일이 많은데,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며 맥락을 다 설명할 수가 없더라고요. 명확한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부담도 되고, 화가 나기도 해요.
결국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불안감에서 온 게 아닐까 해요. 현대 사회에서는 매 순간 모든 걸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은 선명하게 A 아니면 B라는 이분법에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홍세화 선생님 강연에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보면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결국 내가 행복하려면 타인의 불행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모든 사람이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취미로도 좋고, 본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라도요. 시민단체 활동가가 아니어도, 한량처럼 발만 담그거나 프로그램에 잠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잖아요. 정말 좋지 않나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시민단체 하나쯤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애초에 제가 활동가라는 직업을 선망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만 할 수 있는 활동을 조금씩 해나간다면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모두가 '활동가의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지 않을까 해요."
|
|
| ▲ 인터뷰 현장에서 류현아 활동가 |
| ⓒ 한량 (오민진) |
"이렇게 안식월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감사예요. 어떻게 계속 힘을 낼 수 있는지 쉬면서 생각해보니까, 저는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왜 이럴까, 왜 그럴까, 왜 저럴까' 하는 질문들을 한아름 품고 살고 있어요. 휴대폰 메모장에도 그런 질문들을 엄청나게 적어놓고요. 그걸 보며 혼자 자문자답할 때도 있고, 챗GPT와 대화하기도 해요.
특히 친구들을 만날 때는 요즘 관심 있는 주제나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준비해가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어떤 걸 하면 세상이 나아질까' 하는 마음으로 생각들을 구체화하고 실현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일 할 때 기획서 쓰는 걸 무척 좋아해요. 세상에 낸 아이디어를 구조화시키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시작한 일을 끝내는 방법은 결국 '책임감'이지 않을까 해요. 활동해나가는 매 순간 재미를 맛보고, 사람들과 함께할 때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 이렇게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다니. 알바노조를 비롯해 여러 활동을 부지런히 해왔는데 꿈꾸던 걸 이뤄냈나요? 아니면 오랫동안 활동해왔지만 여전히 변화가 더딘 부분이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에도 정말 많은 걸 바꿔냈어요. '국민의 안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대선 공약으로 '생명과 안전이 우선시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사회 대개혁 과제도 도출해냈잖아요. 이 과정만 봐도 저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이에 반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생전 듣지 않아도 될 혐오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페미니즘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당신들 밥그릇 뺏는 게 아니야, 우리의 권리가 이만큼 침해되고 있고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을 뿐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건데, 여전히 소통은 막혀 있고 혐오는 엄청나게 커졌다고 느껴요.
페미위키에서 낸 통계를 보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2025년 4월 4일 파면까지 123일 동안 60명의 여성이 죽었다고 해요. 이틀에 한 번꼴로 여성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죽음에 무감각한 사회인 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사회 안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체감하는 문화도 생겼잖아요. 낙태죄 폐지도 끌어냈고요."
|
|
| ▲ 인터뷰 현장에서 류현아 활동가 |
| ⓒ 한량 (오민진) |
"개인적으로 달라진 건 좋은 친구들이 정말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활동하기 전에는 제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래서 '나는 이상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나만의 길을 가는 건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는 존경의 마음이 들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현명한 눈빛들을 마주했고, 이 눈빛을 따라가면 답이 있을 것 같고, 내 삶도 이렇게 바뀔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어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예전에는 '내가 비건이 될 수 있을까, 지역으로 가서 살 수 있을까, 자본주의와 멀어져도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전혀 못 했어요. 그런데 활동가의 삶에서는 그런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페미니즘이나 사회 운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20대 때는 우울감이 심했어요. 저는 30대가 되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40대, 50대, 60대가 안 그려지는 거예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성공한 여성 롤모델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가난할 수는 있어도 좋은 친구들과 오순도순 마을을 꾸리면서, 다리 저는 할머니를 꿈꿀 수 있게 됐어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면서 개그도 치고, 기계도 잘 다루는 그런 할머니요. (웃음) 다리를 저는 건 지금도 실제로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활동가는 배고플 때가 많긴 하지만 완전히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이 귀해서 그런지 비교적 많이 봐주는 편이에요. 많이 혼내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기회를 주거든요. 저는 지금도 성장할 기회를 더 달라고 떼쓰고 있습니다. (웃음)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어요. 조금 슬픈 이야기인데, 능력주의는 활동판 안에서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능력주의는 활동가들한테도 내재화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한테는 최대한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단점을 훨씬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왜 이렇게 말을 못 하지? 왜 아직도 기술이 부족하지? 나는 사람이 되고 있나' 같은 질문을 많이 해요. 여전히 나 자신을 바꾸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웃음)"
정말 많은 활동을 해나가면서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현아를 보며 처음 마주했던 활동가의 무게를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품고, 더 안전한 사회로의 변화를 이끄는 현아가 불안한 세상 속에서 흔들릴 때마다 평안을 잘 찾을 수 있기를,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할머니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좋아하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건 더 많은 일상수집가이자 부지런히 세상을 누비는 한량. 덕분에 일상이 자주 반짝였으며, 이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내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도 수집하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
|
| ▲ '2025 공익활동가 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렸다. |
|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의 마지막 발악, 우리가 쫄 이유 없다"... 장하준의 조언
- 물러난 특검, 당사로 집결한 국민의힘 "이재명 셀프대관식 불참"
- 권성동이 쏘아올린 '윤석열 당선무효'
- 한남동 대사관 옥상에 '붕붕'...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 "주말 집회 윤석열·김건희 비판, 전직 교사 백금렬에 무죄를"
- "김건희는 우리의 리스크가 아니라 축복" 다시 보는 충북지사의 말말말
- [단독] 윤석열 안보실, HID 있던 대북정보팀에 무인기 대원도 배치했다
- [오마이포토2025] 카메라 켜고 당사 도착한 전한길
- [오마이포토2025] 이재명 대통령 국민임명식장 앞 지나는 김건희 호송차
- 정청래의 새로운 실험,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