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피자의 王, 한국에서 나왔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3. 7.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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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월드 피자 챔피언십’ 우승
일산 ‘포폴로피자’ 유준환
유준환 '포폴로피자' 대표가 장작 화덕에서 갓 구운 마르게리타 피자를 꺼냈다. 그는 "맛있으면서 소화 잘 되는 건강한 피자가 좋은 피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피자가 탄생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매년 열리는 ‘트로페오 카푸토(Trofeo Caputo·영어명 Caputo Trophy)’는 세계 최고 피자 장인(匠人)을 가리는 대회다. ‘월드 피자 챔피언십’이라고도 불리는 이 대회에서 올해 이변이 일어났다. 대를 이어 피자를 구워온 나폴리 토박이들을 포함해 세계 22국 피자 고수 500여 명을 제치고 한국인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김치 경연대회’에서 외국인이 쟁쟁한 한국인 고수들을 제치고 대통령상을 수상한 셈이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 ‘라 레푸블리카’ 등 이탈리아 유력 매체들이 ‘피자의 왕, 한국에서 오다’라며 대서특필한 이변의 주인공은 경기도 일산 ‘포폴로피자’ 유준환(40) 대표다. 체육대학 경호학과 출신으로 스물일곱 살에야 외식업계에 입문해 유튜브와 책으로 나폴리식 피자를 독학했다는 그는 “우승하리라곤 상상도 못해 대회가 끝나기 전에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며 “인천공항 활주로에서 대회 관계자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는 나폴리피자장인협회(APN) 한국지부 이영우 협회장이 유 대표의 사진을 들고 올라가 대리 수상했다.

21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진행된 '트로페오 카푸토' 시상식. 나폴리피자장인협회(APN) 한국지부 이영우 협회장이 유준환 대표 사진을 들고 시상대에 올라가 대리 수상했다./쉐프스푸드

-우승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

“살짝 눈물이 났다. 혼자 피자를 배우고 만들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고 힘들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밀려왔다.”

-대회 관계자가 ‘유 대표가 화덕에서 피자를 꺼낼 때 심사위원들이 박수를 쳤다’던데.

“심사위원들이 ‘도우(dough·반죽) 다루는 기술, 토핑을 얹고 피자를 만드는 방식, 굽는 온도, 구워 나온 피자의 형태 등 모든 단계가 완벽하다’고 말해줬다. 피자를 만들기 전 청소부터 했는데, 그때부터 심사위원들이 ‘잘한다’고 하더라.”

-피자 굽기 전 청소라니?

“조리대와 화덕 주변이 지저분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그냥 피자를 만들더라. 음식은 위생과 청결이 우선이다. ‘늘 하던 대로 하자’는 생각에 청소부터 했다. 몸에 밴 것 같다. 이런 태도랄까 마음가짐을 심사위원들이 긍정적으로 본 듯하다.”

-피자를 완성해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하기까지 주어지는 시간이 고작 7분이던데.

“피자 한 판 구워 나오는 데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시간이 모자랄까 불안하지는 않았다.”

-나폴리 축구팀의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 주역 김민재 선수 덕을 본 것은 아닌가.

“조금은 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폴리에 가보니 확실히 한국인에게 호감이 있더라(웃음).”

-서둘러 귀국한 이유가 있나.

“대회가 지난 19~21일 열렸다. ‘STG(Specialita Traditionale Garantita) 피자’는 20일 열렸다. 결과가 당일 발표될 줄 알았는데, 다음 날인 21일 모든 분야가 끝나고 한꺼번에 발표됐다. 3개월 전 비행기표를 끊을 땐 그런 줄 몰랐다. 현장에 있던 한국 쉐프스푸드 관계자가 ‘분위기가 좋으니 하루만 더 있으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당연히 이탈리아 사람이 받을 줄 알았다.”

트로페오 카푸토에서는 도우에 토핑을 얹고 반으로 접어 튀긴 ‘프리토’, 길이 1m가량으로 길쭉하게 굽는 ‘메트로·팔라’,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작한 ‘컨템포러리’, 도우를 공중에 던지는 등 퍼포먼스 위주의 ‘아크로바틱’ 등 11개 분야에서 최고를 뽑는다. 이 중에서 핵심은 STG 피자다. STG 분야 우승자가 대회 전체 1등인 ‘월드 챔피언’으로 인정받는다.

트로페오 카푸토는 APN이 개최하며, 피자용 밀가루로 유명한 나폴리 제분업체 카푸토가 협찬한다. 쉐프스푸드는 카푸토 밀가루 등 유럽 식자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국내 수입사다.

-STG 피자가 정확히 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로 재료와 조리 방식을 엄격하게 고수해 만든 정통 나폴리식 피자를 말한다. 피자 테두리는 1~2㎝, 전체 지름은 35㎝를 넘어선 안 된다. 토핑이 올라간 가운데 부분은 두께가 0.4㎝ 이하라야 한다. 올리브오일은 5g, 토마토소스는 70~90g, 치즈는 80~100g을 사용해야 한다. 치즈는 물소 젖인 천연 모차렐라, 젓소 젖으로 만든 ‘피오르 디 라테’만 인정된다. 토마토 소스는 산마르자노 품종 토마토가 원료라야 한다. 장작 화덕에서 섭씨 430~480도로 60~90초 구워야 한다.”

유준환 대표가 구운 마르게리타 피자./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유 대표는 요리하는 사람으로서는 늦은 나이인 스물일곱 살에 외식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의 한 호텔 인사과에서 근무하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일식집에서 일하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괜찮은 직장을 그만두고 요리로 전업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음식 하는 걸 좋아했다. 대학 때 자취를 했는데, 항상 닭볶음탕·찌개 같은 음식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같이 먹었다. 하지만 전공이 아니다 보니 ‘요리를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꽤 하다가 스물일곱 살 되던 해 호텔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호주에 갔다. 2년 뒤 돌아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외식업체에 입사했다. 이 업체에서 운영하는 피자집 2곳에서 4년 일하다 2016년 ‘포폴로피자’를 차렸다.”

-왜 하필 피자였나.

“스물네 살 때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하다가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었다. 인생 첫 나폴리식 피자였다. 길에서 파는 값싼 피자였지만, 단순한 토핑과 최소한의 조리만으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폴리 피자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나폴리식 피자는 어디서 배웠나.

“일했던 피자집은 완벽하게 나폴리식은 아니었다. 퇴사 1년 전부터 관련 서적과 유튜브로 나폴리식 피자를 공부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피자 만드는 동작을 그대로 하고 싶어서 특정 동영상은 1000번 가까이 봤다.”

-동작까지 똑같이 따라 할 필요가 있나.

“흉내 낸다기보다 ‘왜 그런 동작으로 만들까’, 나폴리 피자 장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동작마다 이유가 있던가.

“나폴리에서는 피자 도우를 손으로 살짝 들어올려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편다. 미국처럼 바닥에 놓고 밀대로 밀지 않는다. 나폴리식 피자 도우는 수분 함량이 높다. 바닥에 놓고 밀면 나중에 뗄 수가 없다. 또 미국에서는 도우를 펼 때 바닥에 들러붙지 말라고 덧가루를 많이 쓰지만, 나폴리에서는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나폴리에서 사용하는 장작 화덕은 가스 오븐보다 훨씬 뜨겁기 때문에 덧가루가 묻으면 쉽게 타서 쓴맛이 난다. 이렇게 모든 과정의 이유를 고민하면서 나폴리 피자를 공부했다.”

-그 공부가 대회에서도 도움이 됐나.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덧가루를 거의 쓰지 않고 피자를 폈는데, 심사위원들이 그걸 보고는 굉장히 좋아했다. 도우도 과거 레시피대로 밀가루와 소금 양을 늘렸다. 심사위원들이 맛보고 좋아했다. 옛날에 먹던 피자 맛에서 향수를 느낀 듯하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운데)와 '라 레푸블리카'(왼쪽), '일 마티노' 등 이탈리아 주요 매체들은 유준환 대표의 '트로페오 카푸토' 우승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나폴리 피자의 왕, 한국에서 오다'라는 제목을 달았다./쉐프스푸드

-정통 나폴리식 피자는 엄격한 규정을 정해놨는데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가.

“규정 안에서 미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번이 일곱 번째 나폴리 방문이고 갈 때마다 하루 3끼 피자를 각기 다른 가게에서 먹어본다. 확실히 요즘은 빵이 과거보다 맛있다. 옛날에는 나폴리식 피자를 가운데만 먹고 테두리는 남기는 이들이 많았다. 빵이 쫄깃하지 않고 식으면 금세 딱딱해졌다. 요즘은 수분 함량을 높이고 반죽을 잘해서 빵이 굉장히 맛있다.”

-나폴리식 피자는 토핑보다 빵이 핵심인 것처럼 들린다.

“빵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는 치즈, 토마토소스도 빵이 맛 없으면 소용없다.”

-피자도 계절을 타나.

“나폴리식 피자는 적어도 우리 매장의 경우 초겨울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도우 발효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날씨다.”

-피자로 일가를 이룬 셈인데, 다른 음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지는 않나.

“피자만 하고 싶다. 올해 여섯 살인 아들이 대를 이어서 해도 좋겠다. 이탈리아에서 3대, 4대째 하는 피자집을 보면 정말 멋있다. 하지만 너무 힘든 일이라 아들이 싫다면 시킬 생각은 없다.”

'트로페오 카푸토'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세계 피자 챔피언 트로피./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피자이우올로(pizzaiuolo·피자 장인)의 삶은 뭐가 힘든가.

“여름에도 겨울에도 500도 가까이 되는 화덕 앞에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제일 힘들다. 특히 겨울은 화덕 앞에 있다가 추운 바깥에 나가면 온도 차이가 커서 심장에 무리가 온다. 도우를 살아 있는 효모로 발효시키기 때문에 어떻게 변할지 몰라 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가게를 비울 수가 없다.”

-분점이나 프랜차이즈는 고려하지 않나.

“나폴리식 피자로는 힘들다. 가게마다 기술자가 필요하다. 기술자 하나 키우려면 4~5년 걸리는데, 버티는 직원이 드물다.”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K피자’로 세계 진출할 생각은 없나.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나폴리식 피자를 제대로 구현하기도 버겁다. 일단은 누가 먹어도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 피자를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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