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의 ‘진의’는 왜 자꾸만 ‘잘못’ 전달될까
사태 반복 원인으로 尹 즉흥적 태도‧레드팀 부재 제기돼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쉬운 수능'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교육 현장에 혼선이 일자 대통령실이 교육부에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비판 여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권에선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수습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무르익지 않은 대통령 발언 공개→논란 확산→수습 및 책임 전가'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국정 운영 전반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음에도 신속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점에 대해 교육부 수장으로서 죄송하다"며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입시에 대해 윤 대통령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해 저도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며 논란 진화에 주력했다. 윤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는 세간의 지적을 의식한 듯 그는 연신 자신과 교육부에게로 책임을 돌렸다.
앞서 이 부총리는 지난 15일 윤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한 후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이)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수능을 불과 150여일 앞두고 출제 방향을 가이드하는 듯한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교육계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사태가 커지자 책임의 칼날은 주저 없이 교육부로 향했다. 이튿날 교육부 대학입시 담당 국장이 전격 경질됐고, 윤 대통령은 이 부총리에게 브리핑 혼선 등을 이유로 '엄중 경고'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을 주워 담는 이번 과정을 두고 곳곳에서 '기시감이 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환되는 기억은 지난해 7월 '만5세 입학 연령' 논란이다. 당시에도 윤 대통령이 교육부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향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갑작스레 전해지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이 때도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구체적인 로드맵도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깜짝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다. 반발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공론화와 숙의 과정을 서두르라는 뜻이었다"고 수습했고, 사태는 8월 박순애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를 경질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3월 '주 69시간 근로' 논란 역시 비슷했다. 당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최대 69시간 개편안'에 대한 청년층의 반발이 거세자, 이튿날 윤 대통령은 바로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고용노동부 발표에 '유감'을 표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주 69시간제라는 극단적 프레임에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논란 정리해야 할 대통령이 논란 증폭시켜"
이 같이 반복되는 패턴의 원인으로 야권에선 윤 대통령의 '즉흥적 태도'를 꼽고 있다.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관료나 참모들의 브리핑으로 잘못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당초 윤 대통령이 충분한 논의나 조율 없이 자신의 생각을 가이드라인처럼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윤 대통령은 난방비 폭등 논란이 이어지던 지난 1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중산층의 난방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제부처와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었고, 기획재정부가 "취약계층 지원도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하면서 대통령 발언 발(發) 혼선은 정리됐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19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어떤 것에 꽂히면 곧바로 시행하도록 지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모든 사안에 있어 충분한 숙고의 과정 없이 '좋아 빠르게 가'를 시전하는데, 그렇게 해선 '좋을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한 관계자 역시 "대통령은 논란에 대해 최종적으로 중재안이나 해법을 제시해주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앞뒤 툭 잘린 발언을 던지며 대통령이 오히려 갈등과 혼선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향한 윤 대통령의 '위안스카이'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이 괜한 표현을 써 갈등 상황을 키우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혼선이 예상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자꾸만 노출되는 것과 관련해 이른바 '레드팀' 부재를 탓하는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 제동을 걸거나 '쓴소리'를 하는 참모가 없다는 고질적인 지적이다.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탓에 대통령의 발언을 다듬는 과정 없이 고스란히 전달만 해 혼선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자칫 '내부총질'로 규정되거나 경질을 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정부와 대통령실 안팎에 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윤 대통령은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으면 과감히 인사 조치를 하라고 각 부처 장관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며 "이러한 분위기에서 참모들이 가감 없이 반론을 제기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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