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당신도 뇌에 속고 있었다 … 인간에 대한 7가지 오해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 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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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 알려준 심리실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을 보며
나도 이해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며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으셨죠?
근대 이후 많은 심리실험 했는데
연구 결과 상당수는 놀랄만했죠
기존의 통념을 다 뒤집었으니까

인간은 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보면서 혹은 나도 이해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인간은 오랜 시간 스스로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 이 같은 노력은 근대과학이 태동한 이후 수많은 심리실험으로 연결됐다. 이 실험의 결과들 중 상당수는 놀라운 것이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들을 모두 뒤집었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 인간은 정직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았다. 인간의 기억은 늘 조작됐으며 편향적이었다. 인간은 이기적이었으며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했다. 지식인들이 음모론에 혹하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같은 걸 보고도 서로 다른 증언을 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학살에 앞장서는 걸 보면서 우리는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에 빠진다. 그 머릿속을 들여다본 흥미로운 심리실험 몇 가지를 복기해보자.

1 인간은 선택장애를 가진 동물이다

요즈음 영화·드라마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엄청난 콘텐츠의 숲을 헤매다가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화면을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다양하고 풍부한 선택이 주어지면 서비스를 더 많이 즐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왜 그럴까.

쉬나 아이엔가 컬럼비아대 교수팀이 이런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시식행사장에 잼 판매대 두 개를 만들었다. 한 판매대에는 24가지의 잼을 진열했고, 다른 매대에는 6가지 종류의 잼을 진열했다. 예상했던 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종류의 잼이 전시된 매장에 발을 멈추었다. 60대40 정도의 비율이었다. 그렇다면 판매는 어땠을까? 많은 잼을 전시한 매장의 매출이 당연히 높았을까. 결과는 반대였다. 24종류의 잼을 판매한 매장에서는 발길을 멈춘 사람의 3%만이 잼을 구매한 반면, 6종류의 잼을 판매한 부스에서는 발을 멈춘 사람 중 30%가 잼을 구매했다.

인간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다.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인간은 선택장애를 일으키고, 결국 의욕이 꺾이는 것이다.

2 인간은 선입견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은 자율적인 의지와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일까. 아니다. 인간의 뇌는 더없이 나약하다. 수없이 착각에 빠지고 외부의 힘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헬멧실험이 있다. 실험대상자들에게 '이 헬멧을 쓰면 뇌기능이 활성화되어서 똑똑해진다'는 말을 하고 헬멧을 씌운 다음 숨은그림찾기를 시키면 평소보다 2배나 빨리 찾아냈다. 반대로 다른 헬멧 실험군에게 '이 헬멧을 쓰면 인지능력이 저하된다'고 한 다음 같은 작업을 하게 했을 때는 실제로 평소보다 오답률이 높이 나왔다.

3 인간에게는 권위에 복종하는 노예근성이 있다

독일 여행을 갈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깔끔하고 현명하고 친철한 사람들이 어떻게 80년 전 나치 학살에 동조하거나 방관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해답은 인간의 뇌에 있다. 사실 인간은 명령에 약한 존재다. 1961년 예일대 심리학과의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을 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학생 역할을, 한 그룹은 교사 역할을 시켰다. 두 그룹은 서로를 볼 수 있는 방에 들어갔다. 교사 역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학생이 주어진 질문에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전기충격기는 누를 때마다 15V에서 시작해 450V까지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물론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실험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배우들이었다. 이들은 전기충격이 올라갈 때마다 고통스러운 연기를 했다. 하지만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연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실험 전 연구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기스위치를 못 누르거나 한두 번 눌렀더라도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실험 주최자가 계속하라고 하자 다수의 사람들은 전기스위치를 계속 눌렀다.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지도 않은 실험 주최 측의 명령마저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세계는 깜짝 놀랐다. 물론 명령을 다 실행하지 않은 30% 정도의 피실험자가 있었다. 그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4 인간의 기억은 놀라울 정도로 부정확하다

인간의 기억은 정확할까?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기억은 정확하다고 믿고 산다. 기자는 친구와 함께 스위스 여행을 갔던 추억을 이야기하다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내 기억에 스위스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하지만 동행했던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우리가 여행했던 지역과 날짜 등을 가지고 알아본 결과 내 기억이 틀렸음이 판명됐다. 나는 20여 년 동안 틀린 기억으로 살았던 것이다. 인간의 기억 오류는 사실 다반사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박사의 연구가 있다. 로프터스 박사는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흥미로운 추억 몇 가지를 말하게 했다. 그 말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적을 때 로프터스 박사는 쇼핑몰에 불이 났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그러고는 메모장을 나눠주고 읽게 한 다음 다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실험자의 상당수가 쇼핑몰 화제를 자신의 추억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25% 정도의 응답자는 "그때 가족들을 다시 못 보는 줄 알았어요"라며 상세한 묘사까지 덧붙였다. 이런 실험도 흥미롭다. 거리에서 얼굴에 복면을 쓴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보여준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남자의 얼굴에 수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남자의 얼굴에 수염이 있었다고 답했다. 질문 하나에 복면이 수염으로 바뀌는 것이 우리의 기억장치다.

5 인간은 스스로 방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인간은 과연 의로움을 추구하는가? 인간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남을 구하는 존재일까? 이런 실험이 있었다.

1964년 봄 미국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한 여인이 칼에 찔려 살해됐다. 남자는 38명의 주민들이 사건현장을 내려다보는 앞에서 세 번이나 다시 돌아와 여자를 칼로 찔렀다. 비명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건에 충격을 받은 존 달리 교수팀은 심리실험을 실시한다.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각기 목소리만 들리는 공간에서 서로 방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이들은 실험의 목적을 몰랐다. 대화 도중 한 학생이 다급한 신음소리를 내며 간질발작을 일으켰다. 72명의 실험자 중 단 31%만이 뛰어나와 도움을 요청했다.

실험 결과를 분석한 연구팀은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약해지는 '방관자 효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6 인간의 사랑은 촉각과 시간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깊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뀐 상황을 10년이 지난 후에 알았을 때 아이를 다시 바꾸는 부모는 거의 없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애착이 어떤 기제를 통해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더 나아가 사랑의 본질에 관한 추론이기도 하다. 상징적인 애착실험이 있다.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에게서 떼어놓는다. 그런 다음 가짜 어미 원숭이 모형 두 개를 우리 안에 넣어준다. 하나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었지만 젖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는 차가운 철사로 만들어졌고 우유가 나오는 장치가 있다. 아기 원숭이는 어느 어미를 선택할까? 아기 원숭이는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어미에게 가고 대부분의 시간은 천으로 된 어미에게 붙어 있었다. 애정 형성에 촉각과 스킨십이 중요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중에 실제 어미가 와도 아기 원숭이는 천으로 만든 어미를 떠나지 않았다. 천 어미와 보낸 시간이 사랑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천으로 만든 어미를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아기 원숭이의 집착은 더 강해졌다. 사랑은 촉각, 스킨십, 관계 형성 기간, 함께 놀아주기 등을 통해 견고해지는 것이다.

7 인간은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때 성공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뚜렷한 목표를 주장하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나왔다. 예일대 연구팀이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 1만명을 10여 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가 있다. 연구팀은 사관생도들의 육군사관학교 지원 동기를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월이 지나 어떤 삶을 사는지를 조사했다. 대답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됐다. 한 그룹은 '그냥 군대가 좋아서'라는 식으로 내부동기를 말한 사람이었고, 다른 한 그룹은 '국가를 위해'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등 외부동기를 말한 사람이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내부동기가 강한 사람들이 외부동기를 말한 사람보다 장기 복무를 하고 장교가 될 확률이 2배나 됐던 것이다. 연구팀은 목표와 동기가 많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어떤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자기를 정당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큰소리치는 사람을 믿지 말 일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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