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아-하! 그리고 맥콜과 용필이형의 추억

임희윤 기자 2021. 10.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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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기사 <내가 사랑한 뮤직비디오>.' 얼마 전 한 패션 매거진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일단 1980년대 이전에서는 뻔한 마이클 잭슨부터 피하고 싶다.

결국 택한 것이 노르웨이 팝 밴드 아하의 'Take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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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노르웨이 팝 밴드 아하. 최대 히트곡 ‘Take On Me’와 그 뮤직비디오에 갇힌 이미지를 넘어서기 위해 40년 가까이 분투했다. 왼쪽부터 마그네 푸루홀멘(키보드), 폴 왁타(기타), 모튼 하켓(보컬).
임희윤 기자
‘11월호 기사 <내가 사랑한 뮤직비디오>.’

얼마 전 한 패션 매거진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요청 공문의 저 첫 줄부터 살짝 설렜다. 세 편의 비디오를 추천하면 된다고 했다. 1980년대 이전, 1990년대, 2000년대 이후에서 각각 한 편씩 뽑고 고른 이유를 원고로 붙이는 형식. 수많은 뮤직비디오 속 명장면이 황허가 돼 나의 전두엽에 전류로 찌릿찌릿 흘러갔다.

긴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 나갔다. 일단 1980년대 이전에서는 뻔한 마이클 잭슨부터 피하고 싶다. 결국 택한 것이 노르웨이 팝 밴드 아하의 ‘Take On Me’. 조금은 뻔하지만 ‘원 히트 원더’(한 곡만 히트시키고 잊힌)의 비장미가 좋다. 지금 봐도 너무도 ‘힙’한 저 비주얼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1. 얼마 전 아하의 다큐멘터리도 개봉했다. 제목은 ‘아-하: 테이크 온 미’. 찾아보니 개봉관이 서울, 인천, 부산에 각 한 곳씩. 한반도에 딱 세 곳뿐이다. 아하는 그런 밴드다. “아하 알아?” 물으면 “8?” 했다가 “그, 왜, 흑백 애니메이션이랑 컬러 실사랑 오가는 뮤직비디오, ‘Take On Me’ 부른 밴드!” 하면 “아-하!” 하는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밴드.

#2. 혹여 응답자의 ‘아-하! 포인트’가 “그, 왜, 맥콜 광고…”란 힌트에서 터졌다면 그는 영락없이 20세기 소년, 또는 21세기 아재이리라. 때는 1988년.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개최로 민족 자긍심이 요즘만큼이나 올라 있던 해다. 일화가 야심 차게 내놓은 맥콜이란 음료가 있었다. ‘콜라 독립 선언’으로 유명한 815콜라보다도 무려 10년이나 앞선, 음료업계의 핵실험급 사건. 서구적 ‘쿨’의 대명사 콜라, 민족적 청량감의 지존인 보리차…. 동서양의 미각 충돌을 감행한 음료는 훗날 무가당 맥콜이란 변주도 준다. ‘88키드’는 제로 같은 얄팍한 말을 쓰지 않는다. 당이 없으면 무가당이다.

#3. 혁명적 음료 맥콜은 조용필이 출연한 TV 광고로도 화제를 모았다. 펜 세밀화로 그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오가며 전개되는 영상. 조용필에게 당시 국내 역대 최다 출연료인 1억 원을 지급했다고…. 그러나 그것이 당시 국내 팝 음악 팬들 사이에 “아-하!” 하는 반응을 끌어낸 것은 명백히 아하의 ‘Take On Me’의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4.
1985년에 나온 아하의 ‘Take On Me’는 맥콜처럼 충격적이었다. 보컬 모튼 하켓의 매력적인 외모와 음색, 한번 들으면 일평생 맴도는 도입부 신시사이저 리프(riff·반복 악구)…. 노래는 빌보드 싱글차트 1위, UK 싱글차트 2위를 찍고 뮤직비디오는 1986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에서 트로피 여섯 개를 채갔다. 팝의 변방이던 노르웨이는 들끓었다. 그러나 이후 ‘N-Pop’ 같은 물결은 생겨나지 않았으니 아하는 여전히 노르웨이의 국민 영웅이다.

#5.
영화 ‘아-하…’는 노르웨이에서 노르웨이인들이 제작했다. 노르웨이어로 듣는 인터뷰들이 흥미롭다. 이야기는 아하 결성 이전인 1974년 오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언젠가는 영국 런던에 가 팝스타가 되자는 소년들의 꿈 이야기부터 풀어낸다. 솔로로 ‘Can‘t Take My Eyes Off You’까지 히트시킨 꽃미남 보컬 하켓 외에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 ‘Take On Me’ 이후 보이 밴드 이미지를 벗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을 목표로 음악 자체에 집착한 기타리스트 폴, 뛰어난 리프를 많이 만들었지만 메인 작곡가 폴의 기세에 눌려 늘 불만인 키보디스트 마그네 말이다.

#6. 멤버들의 갈등과 분투는 보자니 애잔해지지만 돌아보면 아하는 ‘Take On Me’ 한 곡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밴드다. 뮤직비디오는 MTV 시대가 만개하고 퍼스널 컴퓨터가 대중화한 당대에 의미심장했다. 만화 속 영웅과 테크놀로지를 통해 내밀히 교감하고,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같은 이들에게 쫓긴다. 나만의 방 안에서 시스템 탈주를 꿈꾸는 청년의 욕망과 꿈이 거기 있다.

#7. 영화를 보다 민망하게 눈물이 흘렀다. 멤버들의 갈등이나 흥망성쇠에 이입해서가 아니다. 영화에 삽입된 ‘Take On Me’ 뮤직비디오의 말미, 구겨진 종이 속 만화에서 현실 밖으로 빠져나오려 애쓰는 하켓의 몸부림, 그걸 지켜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주인공의 표정.

청춘은 탈주를 꿈꾼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탈주를 꿈꾼다. 나는 사람이다. 나도 탈주를 꿈꾼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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