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가 불상,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아우라
이 글은 지난 2020년 1월 5일~10일(5박 6일) 중국 쓰촨 여행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기자말>
[김대오 기자]
▲ 도로를 건너는 말떼 차가 다니는 큰 도로를 중국어로 ‘마로(馬路)’라고 하는데, 정말 도로에 차와 말이 함께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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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족(羌族)자치구 민속촌 근처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서둘러 다시 러산으로 향한다. 강족은 원래 칭하이(靑海)성에 거주하는데 현재 쓰촨 북부에 2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강족이 지은 집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아 최근 강족의 노하우를 활용한 건축 인테리어가 매우 유행한다고 한다. 남도 민요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를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의미로도 풀이하는데, 강족은 매우 강한 오랑캐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모양이다. 강족 민속촌의 아침이 버스 창 너머로 스친다.
▲ 원촨대지진의 흔적 원촨(文?)에 들어섰는지 끊어진 도로, 기울어진 건물들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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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당시의 기막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지진이 점심시간에 일어났는데 중학교의 한 교사가 점심을 먹고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종을 치지 않아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10년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버스는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256년에 만들어진 고대 수리 관개 건축물 두장옌(都江堰) 곁을 지난다. 이빙(李冰)과 이랑(李郞) 부자는 화약도 없던 시절에 물길을 가르고 제방을 쌓아 자주 범람하던 민강(岷江)의 홍수를 효과적으로 막는, 고대의 놀라운 치수 능력을 선보였다.
▲ 러산 시내의 모습 울창하게 우거진 아열대 나무들과 도로변의 꽃들이 오랜 시간 남하했음을 일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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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 대불이 조성된 산을 멀리서 보면 와불의 형상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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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묘와 대불사 벼랑을 파고 조성된 무덤인 애묘(崖墓)와 그 위로 해통(海通)스님의 석존이 모셔진 대불사(大佛寺)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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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암으로 뒤덮인 암석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관광객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갈매기가 길을 안내하듯 유람선을 호위한다. 붉은 바위에 작은 구멍들이 보이는데 바로 애묘(崖墓), 벼랑을 파고 조성된 무덤들이다. 그 위로 사찰 건물이 보이는데 러산대불 조성을 시작한 해통(海通)스님의 석존이 모셔진 대불사(大佛寺)다. 해통은 자신이 만들 대불을 산정에서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 대불을 수호하는 금강역사 대불을 수호하는 옆의 금강역사의 크기도 상당하지만, 워낙 큰 대불 앞이라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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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큰 불상을 서역에서 중국 본토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 놓은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불법(佛法)을 선양하고, 그 앞 거센 물줄기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해상사고를 불법으로 막겠다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만 같다.
최초 창건자 해통은 현장법사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바미안 석불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713년 그보다 20m가 더 큰 거대 석불 공사를 시작해 10년 동안 대불의 머리와 가슴 부분을 완성한다. 이후 이곳 관리였던 장구겸경(章仇兼琼)이 소금세를 건설 자금으로 유용해도 좋다는 당 현종의 비준을 받아 7년간 가슴과 무릎을 완성한다.
이후 안사의 난 등으로 지지부진하던 대불 공사는 위고(韋皐)라는 열정적인 불교신도 관리에 의해 완공된다. 위고는 15년 동안 대불의 연화좌, 무릎 부분을 완성하고, 단청, 도금 작업에 이어 13층에 이르는 대상각(大像閣)까지 건설했다고 한다.
▲ 러산대불 수천 년의 풍화와 침식을 견디고 선 대불은 위풍당당하고 그 앞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아우라를 지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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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하나의 불상이고, 불상이 하나의 산 산이 하나의 불상이고, 불상이 하나의 산(山是一尊佛, 佛是一座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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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은 715년 미륵사상을 금지하는 율령을 반포하지만, 러산대불에 대해서만큼은 정부의 세수를 지원하며 조성을 도왔다. 그 진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고인돌의 기능이 장례 자체보다 집단의 결속을 다지고, 그 세력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세력이 함부로 자신들을 넘보지 못하게 한 것처럼 거대한 러산대불은 토번, 티베트 등의 이민족과 한족 농경문화의 경계에 서서 거대한 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민족들의 동진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싸워야할 상대가 저렇게 거대한 불상을 조성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면 누구도 쉽게 이곳을 넘진 못했을 것이다.
유람선이 멀어지자 대불도 조금씩 작아진다. 피안의 언덕에 우뚝 선 대불은 그렇게 멀리서 달려온 관광객들을 차안의 현실로 돌려보낸다.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는 과연 저 러산대불의 형상을 하고 있을까? 산이 하나의 불상이고, 불상이 하나의 산(山是一尊佛, 佛是一座山)인 이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가 고단한 차안을 견딜 작은 힘이 되길 기원할 즈음 유람선은 선착장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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