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영 칼럼] SW 의무교육, 우려와 기대
올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모가 됐다. 그동안 큰 말썽없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는데 서서히 말을 잘 듣지 않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학기 시작 후에 방과후학교 과목을 선택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아이에게 무슨 과목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컴퓨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활동 시간에 컴퓨터를 만져보고 친구들이 인터넷과 게임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나 보다.
사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없고 저와 집사람이 사용하는 개인 노트북만 있다. 더구나 아이에게는 절대로 노트북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가능하면 학습을 제외한 인터넷 접속은 제한하고 있다. 아이가 더 어릴 때 애니메이션 채널에 푹 빠져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쳐다보는 바람에 말문이 트이지 않아 언어치료 직전까지 간 적이 있어 미디어와의 접촉은 최대한 삼가고 있다. 이런 안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식당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보채는 어린 아이를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만 보면 아이 성장이 더딜 수 있다며 절대로 보여주지 말라고 오지랖을 떨고 있을 정도다.
간신히 아이를 잘 구슬려 바이올린을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그래도 가끔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하는지 여전히 호기심은 많은 것 같다. 어느 날 아이가 컴퓨터실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길래 컴퓨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이는 컴퓨터를 통해 만나는 신기한 세상과 게임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교실에는 컴퓨터가 많지 않아 한 번 사용하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드디어 빈 자리가 생겨 앉으면 고장 난 것이 많고 잘 되지 않는다며 짜증과 깊은 한숨을 내 쉰다. 20세기 컴퓨터실에서 겪은 것을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도 똑같이 경험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정부는 소프트웨어(SW)가 혁신과 성장, 가치창출의 중심이 되고 개인·기업·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사회를 조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논리적 사고력·창의적 사고력·문제분석 능력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선진국처럼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SW교육을 하겠다고 했다. 먼저 내년부터 중학교, 후년 초등학교에서 SW 의무교육을 시작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김경진 의원에 따르면 학교에 컴퓨터, 스마트패드 등 교육정보환경 구축을 위해 교육부가 요청한 2000억원의 예산이 내년 정부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내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용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라는 항목으로 각 시·도 교육청에서 편성해야 하는데 예산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당 컴퓨터 수는 부족하고 5년 이상 노후화된 컴퓨터가 35%에 달하는 등 제대로 된 SW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울러 SW교육을 해야 할 교사의 준비도 부족하다. 중학교 정보컴퓨터 교원은 학교당 0.7명에 불과하고, 16만 초등교원 중 SW교육 경험 이수자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교육과정, 교과서 개발, 교사전문연수 등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지만, 이러다간 창의적인 SW교육은 커녕 단순 키보드 익히기나 게임을 즐기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서 끝나는 것은 아닐까란 걱정도 든다.
얼마 전부터 SW중심사회, 코딩, 스타트업 등 평소 잘 쓰지 않던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마치 SW가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뒤집을 것 같은 집단 최면에 빠져있는 것 같은데 정작 아이들이 SW교육을 받아야 할 학교는 우리 현실을 여과없이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미래사회를 책임질 우리 아이들이 SW 의무교육을 통해 짜증과 깊은 한숨을 느끼지 않고, 창의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투자, 지혜를 모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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