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반달섬은 어쩌다 7000호 ‘생숙’의 무덤이 되었나
2020~2021년 부동산 호황기
규제 없고 마진 높은 ‘비아파트’
개발업체 대거 공급 뛰어들어
생활형 숙박시설 ‘주거 불가’에
고금리 겹치며 시장 급냉각
지자체, 수요 2~3배 인허가 예사
“지역 호재 노려 알면서도 묵인”
실거주용 수분양자 “파산 처지”
지방·중앙정부 정책 공조로
공급 조절 모니터링 체계 갖춰야
“미국 라스베이거스 아시죠? 거기처럼 한 번 들어가면 3박4일은 거뜬히 놀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이 엄청나게 크게 들어올 거예요. 여기는 국제테마파크가 들어올 자리고, 이 앞에는 유람선이 다니는 마리나 선착장인데….”
분양 대행사 직원은 초대형 지도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지난 14일 기자가 방문한 경기 안산시 반달섬에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힐스테이트라군인테라스 2차’ 모델하우스. 직원은 ‘복합레저 관광도시’로 거듭날 반달섬의 찬란한 미래를 수차례 강조했다. 그가 가리킨 조감도에는 국제테마파크, 유람선이 오가는 수변공원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모델하우스에서 불과 몇 발자국만 걸어나와도, 직원의 말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힐스테이트라군인테라스 2차 공사 현장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입주 예정일은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주변 반경 500m 남짓까지 흙바람이 날리는 공터였고, 좀 지나 등장하는 상가도 대부분 공실이었다. 오가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임대문의’ 현수막이 나부끼는 텅 빈 상가 건물 주변에는 안전모를 쓴 건설 노동자만이 눈에 띄었다.
빈 섬에는 한때 ‘아파트 대체 상품’으로 인기를 모았다가 지금은 미분양 애물단지가 된 생숙과 오피스텔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만이 즐비했다. 반달섬에 이미 준공됐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생숙을 합치면 총 7033호실(9개)에 달한다.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제주도 그랜드하얏트호텔(1600호실)의 4배가 넘는 숙박시설이 제대로 된 관광시설 하나 없는 반달섬 안에 집중 공급된 것이다. 미국발 고금리에 정부의 생숙 규제까지 겹친 지금, 생숙은 사람이 살지도 못하고 팔기도 어려운 ‘유령 건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그 배경에는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조차 ‘수요 없는 공급’을 막을 수 없다는 제도적 허점이 존재한다.
■ 시작은 창대, 끝은 미약했던 개발
반달섬의 비극은 시화 멀티테크노밸리(MTV) 사업이 시작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업은 시화호 일대의 땅 301만평(995만㎡)을 ‘21세기형 첨단 복합산업단지’로 조성하는 국책사업으로, 한국수자원공사(수공)가 주도했다. 수공과 안산시는 MTV 사업지 내 유일한 상업지역이었던 반달섬을 지역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섬 쪽에는 호텔과 마리나 항만을 짓고, 육지 쪽에는 호텔과 컨벤션 마리나 리조트를 짓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엔 수공·안산시의 장밋빛 구상에 호응하는 기업이 없었다. 한 일본계 회사와 안산시의 투자협약이 좌초된 후, 반달섬은 2017년까지 장기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후 수공은 2019년 반달섬 부지 전체를 ‘블록딜’ 형식으로 한 패션 업체에 팔았다. 이 업체는 이후 돈방석에 앉았다. 2019년부터 1%대 밑으로 기준금리가 수직하강하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넘쳤고 그 돈은 부동산에 쏠렸다. 업체는 4년에 걸쳐 반달섬 부지를 완판했다.
반달섬을 분양받은 개발업자들은 잘 팔리는 물건에 집착했다. 아파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생숙과 오피스텔 공급이 결정된 배경이다. 상업지역인 반달섬의 최대 용적률은 800%에 달한다. 여기에 주차장 기준 등 건설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운 생숙과 오피스텔을 지어 아파트처럼 분양한다면, 개발업자로선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마진이 남는다.
반달섬에 있는 생숙 9곳 모두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2021년에 인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1가구 2주택 규제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오션뷰와 조식 서비스, 수영장을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 아파트’를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별다른 광고 없이도 ‘완판’에 성공하는 단지들이 속속 등장했다. 2544가구 대단지인 ‘힐스테이트라군인테라스 1차’도 그중 하나다.
인근 공인중개사 A씨도 “1차의 경우 한때 모든 평형에 1억원 넘게 프리미엄이 붙었을 정도로 투자 수요가 빠르게 몰렸다”고 했다. 수분양자 중에는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보다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해당 단지 수분양자 B씨는 “단지 내에 유명 국제학교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 아파트 대신 이곳을 분양받았다”고 말했다.
■ “지어진 건물, 미리 막을 순 없었을까”
빠르게 타오른 수요는 식을 때도 빠르게 식었다. 기점은 2021년 11월, 생숙을 주거용으로 쓸 수 없다는 정부 규제가 나오면서다. 정부는 주거용으로 용도변경을 하면 전입신고와 거주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착공에 들어간 생숙들이 용도변경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구당 주차 대수나 학교, 기반시설 기준이 애초부터 부족하게 설계된 탓이다.
여기에 지난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까지 올리면서, 주택시장 개발붐이 막을 내렸다. 반달섬에 떠돌았던 개발 기대감도 사라졌다. 돈줄이 막힌 시행사가 투자를 꺼리면서, 2000억원의 민간 자본을 유치해 마리나 항만을 조성하겠다는 안산시 계획은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반달섬 일대에선 분양가보다 6000만~7000만원 낮은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거용으로 분양·광고된 건물을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당초 목적대로 숙박시설로 쓰자니 관광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상황. 정부와 지자체는 애초에 생숙이 주택이 아니었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수분양자들은 정부와 지자체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막연한 개발계획에 기대 인허가를 남발하면서 지금의 반달섬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안산시는 상업지역에 생숙이나 오피스텔이 들어오는 것 자체엔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과잉공급을 이유로 인허가를 거부하기는 사실상 힘들었다는 취지다.
안산시 관계자는 “건축법의 취지는 인허가를 최대한 폭넓게 인정해주되, 안 되는 것은 법으로 명확히 제한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착공 전이라면 정부·지자체가 어떤 토지용도가 합리적인지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건물이 이미 지어졌다는 것”이라며 “현행법상 용도변경도 쉽지 않은 지금 상황에선 건물을 부수는 수밖엔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반면 지자체가 ‘생숙 붐’을 묵인하면서 인허가를 남발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일단 생숙이 지어지면 사람이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개발 사업이 일어나 지역이 팽창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인허가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 적정 수요 예측은 신의 영역?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수요를 예측해 인허가 심사에 반영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부동산 시장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면 규제를 아무리 해도 수요가 몰리지만, 시장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면 규제를 아무리 풀어도 급격하게 위축돼버리는 수요의 탄력성 때문이다.
하지만 ‘적정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각 지자체는 주거기본법에 따라 10년마다 주거용 건물의 수요 대비 공급 규모를 예측하는 주거종합계획을 발표하도록 돼 있다. 인구 증감, 입주·멸실 요인을 반영한 적정 수요를 계산하고 인허가를 조절하자는 취지다.
그럼에도 적정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이 이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국 미분양의 15%(올 3월 기준)를 차지하는 대구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구시가 2018년 발표한 ‘2027년 주거종합계획’에 따르면 인구 감소와 멸실 요인 등을 고려한 적정 수요는 2022년 1만925가구, 2023년 1만463가구, 2024년 9889가구로 꾸준히 감소했다.
반면 대구시가 실제로 인허가를 내준 물량은 2020년 2만8063가구, 2021년 2만4678가구, 2022년 2만8135가구로 꾸준히 늘었다. 인허가 이후 입주까지 약 2년의 시차가 있음을 고려하면, 자신들이 파악한 적정 수요의 2~3배를 상회하는 물량에 인허가를 내준 것이다. 이는 과잉공급으로 인한 지금의 미분양 사태를 예견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나마 주거용 건물은 수급 불균형의 실태라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낫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심사 강화, 미분양 관리지역 지정이라는 일종의 규제 장치도 제한적으로나마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 장치가 전무한 물류센터나 생숙,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다. 시장 상황에 따른 과열과 냉각이 비아파트에서 유독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 전방위적인 ‘과잉공급’ 후유증
정밀한 수요 예측 없이 과잉공급된 건물은 기업과 가계,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깊은 상흔을 남긴다. 우선 시행사와 건설사는 미분양으로 공사 대금을 제대로 회수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역시 인허가 조절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주택에서 주로 발생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나이스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중에서 수도권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5.3%에 불과했다. 반면 생숙·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 등 비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53.0%에 달했다. 주택시장이 회복세로 돌아간다 해도 투자용 부동산에 대한 수요 회복까지 이어지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과잉공급의 후유증은 기업보다 개인이 더 크게 겪는다. 반달섬 생숙 수분양자들이 대표적 예다. 이들은 시행사의 과장광고와 주택시장 침체, 이어진 정부 규제로 인해 잔금을 마련할 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개인 파산까지 고려해야 할 처지가 됐다. 수분양자 B씨는 “친척들에게도 분양을 권해 피해가 더 큰 상황”이라고 했다. 지어진 건물이 장기 공실로 남으면 지역이 ‘슬럼화’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의 수요·공급 조절을 시장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고 말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하물며 학교를 하나 지을 때도 주변 개발계획과 출생률 등을 고려하기 마련”이라며 “주택은 과잉공급 시 미분양, 과소공급 시 가격급등이라는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주택시장이야말로 대표적인 공공개입이 필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심윤지·윤지원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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