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제 수장들의 부동산 말잔치에 가려진 속내
유일호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8·25 가계부채 대책 효과를 살펴본 뒤 문제가 있다면 총부채상환비율(DTI) 하향 조정 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8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DTI 강화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답변해 유 부총리를 머쓱하게 했다. 경제부처 간 조율되지 않은 부동산 대책이 튀어 나왔다 주무부처가 이를 부인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면서 되레 시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전문가들과 ‘부동산 대책의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경제부처 수장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아 속뜻을 자꾸 해석하고 유추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당초 서울 강남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는데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투기과열지구는 집값 상승률이 높고 청약자들이 몰리는 지역이 대상이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에서는 청약 자격이 강화되고 전매제한 기간이 입주 시점까지 늘어난다. 재건축 조합원의 자격을 팔 수도 없다. 여러가지 규제가 한꺼번에 적용되기 때문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유 부총리는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나 “강남권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포함한 다각적인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입장이 180도 바뀐 이유에 대해 유 부총리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경제부처 수장 가운데 임 위원장은 “집단대출 DTI 적용은 없다”며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집단대출은 DTI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차주의 소득과 상관 없이 대출이 집행된다.
문제는 은행들이 DTI 규제에 준하는 강화된 집단대출 심사를 시작했고, 이를 “당국의 우회적 압박 때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니 시장에선 경제부처 수장들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서 잘못된 메시지를 던졌을 때의 여파를 우린 이미 두 달 전에 겪었다. 애초에 이번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추긴 것도 정부 정책 탓이다. 정부는 ‘8·25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내놓으면서 “주택 공급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은 이를 “주택공급이 축소되니 지금이 집을 구입할 시점”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 과열 양상은 이런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두 달 동안 일부 지역의 부동산이 과열로 치닫는데 정부는 수수방관했다. 8·25 가계부채 대책이 작동하기만을 정부는 기다린 것이다.
부동산 대책 외에도 한국 경제에 산적한 현안들이 많다. 경제부처 수장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아닌, 명확한 철학을 갖고 현안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경제부처 수장들의 속뜻만 파악하기엔 시장도 기업도 국민도 이젠 너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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