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반지하 vs 물려받은 강남 아파트..신혼집 '격차' 더 벌어져

신희은 기자 2016. 10.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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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서울에서 집구하기-(下)]강남3구서 아파트 증여 급증 "더 오르기 전에 물려주자"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신혼부부 서울에서 집구하기-(下)]강남3구서 아파트 증여 급증 "더 오르기 전에 물려주자"]

#지난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민구(가명·31)씨는 지금 만나는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내후년쯤 결혼할 생각이다. 아직은 부모님댁에서 생활하면서 버는 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지금이 좋다.

결혼에 대한 걱정도 크지 않다. 김씨는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으로부터 성인이 되자마자 강북의 작은 상가를 한 칸 물려받았다. 매달 꼬박꼬박 월세도 나와 과외나 아르바이트 한 번 없이 대학을 마쳤다.

30대에 접어들어선 부모님의 권유로 청약을 넣어 최근 김씨 명의로 7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한 채 분양받았다. 계약금은 대부분 부모님이 내주셨다. 중도금 대출을 받고 입주 후 원리금을 상환할 때도 부모님이 도움을 주시기로 했다.

부모가 보유 중인 아파트 중 하나를 결혼할 때 바로 증여받으면 세금을 낼 목돈이 있어야 하고 자금출처도 규명해야 하지만 분양권은 그런 부담을 덜 수 있다. 처음 분양받을 때보다 웃돈도 이미 1억원 넘게 붙었다.

가을 결혼 시즌 전세난에 집을 구하기 위한 예비 신혼부부들의 고충이 큰 가운데 아파트값 상승 열기로 자녀에 일찌감치 집을 증여하는 자산가도 크게 늘고 있다.

한 편에선 대출 없이 스스로 모은 돈으로는 서울에서 제대로 된 신혼집조차 구하기 어려운 반면, 고가의 아파트가 증여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어 20~30대 젊은층의 자산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의 아파트 누적 증여 건수는 5만217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7080가구)보다 10.8%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서울은 8884가구로 전년 동기 6790가구에 비해 30.8%나 급증했다.

올 8월 한 달 간 자치구별 증여 현황을 들여다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의 증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송파구는 489가구를 증여해 전체 서울 증여분 1488가구의 3분의 1에 육박했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각각 129건, 109건을 기록했고 양천구(82가구), 동대문구(57가구), 강서구(52가구)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추세는 올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최근 증여가 가파르게 증가한 자치구들은 모두 재건축·재개발 추진이 활기를 띄면서 아파트값이 치솟은 지역들이다. 이 지역에서 새로 분양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계약한 20~30대도 적잖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 증여는 지표보다 훨씬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재건축·재개발이 답보 상태일 때는 가격변동이 크지 않아 증여에 적극적으로 나설 동기가 없었지만 최근 사업 추진이 활기를 띄고 덩달아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더 오르기 전에 사전 증여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초구의 한 분양대행 관계자는 "특히나 분양 아파트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 2~3년의 시간을 두고 나눠서 증여할 수 있어 부담도 적고 자녀가 일부 대출을 갚을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시간도 벌어주는 효과가 있어 인기"라고 귀띔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분양권은 등기 되지 않은 권리 상태이기 때문에 20~30대 초반이 당첨돼 계약금을 내더라도 당장 자금출처를 조사할 방법이 없다"며 "결혼할 때를 대비해 미리 대출을 갚고 세금내는 걸 도와주려고 증여에 적극적인 자산가들이 많아진 추세"라고 전했다.

분양권 취득 외에도 기존 아파트를 시세보다 싼 값에 자녀에 매도하거나 아예 매도해 주기적으로 분산해 물려주는 형태도 빈번하다.

이에 따라 비싼 전셋값에 서울 변두리로 밀려나는 신혼부부와 고가 아파트를 증여받는 이들 간 자산격차는 보다 확대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효과를 낳으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올 12월 결혼할 자녀를 둔 60대 김철수(가명)씨는 "우리 때는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집을 불려가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대출 이자 갚느라 돈도 못 모을 것 같더라"며 "출발선이 다르면 제 힘으론 격차를 줄일 수 없을 것 같아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숨 쉬었다.

신희은 기자 gorg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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