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임대사업자 세금 더 걷고..법인세는 맨 마지막
◆ 레이더P / 정치리더에게 듣는다 ◆
■ 野 유력 대선주자 문재인 직격인터뷰
― 지금 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한국 경제의 수출, 내수 모두 어렵다. 제2 외환위기 걱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제2의 외환위기 차원이 아니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장기복합불황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한다. 더 심각한 건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일본은 그런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기초체력이라도 튼튼했는데 우리는 그런 체력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일본형 불황(거품 붕괴로 인한 불황)보다 더한, 남미형 불황(방만 재정·부정부패로 인한 불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 국민성장을 얘기하는데 경제민주화, 공정성장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
▶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위기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나는 저성장 위기이고, 또 하나는 지나친 경제력 집중, 양극화다. 국민성장론에 대해 양쪽에서 상반된 비판을 제기한다. 한쪽은 '분배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고, 다른 쪽은 '경제민주화를 배제하는 성장론'이라고 비판한다. 두 가지 다 모순되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의 비판은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분배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포용적 성장은 박근혜 대통령도 국제대회 기조발제로 여러 번 주장한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표방한 포용적 성장, 소득 주도 성장이 실체가 없던 게 문제다. 유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경제 분야로는 가장 개혁적이라고 높이 평가하는데 성장과 분배 이분법에 서서 얘기하는 게 안타깝다. 국민성장은 경제민주화와 모순된 것도 아니다. 포괄하는 개념이다. 경제성장 혜택이 기업, 특히 대기업 쪽으로만 편중되지 않고 가계소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거다.
― 최근 종료되긴 했지만 현대자동차 파업에 대해 귀족 노조, 노조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 노사 갈등,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있나.
▶ 국민성장을 위해서도 비정규직 문제, 노동시간 단축 해결 등에 대해 노사정 대타협은 꼭 필요하다. 정부와 사측, 노동계가 서로 함께 양보하면서 고통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노동 쪽으로 보면 임금 수준 격차가 지나치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쪽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고통 분담도 필요하다.
― 노사 문제로 한국 대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 이명박·박근혜정부 들어서 노동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노동계를 설득해 함께 가려는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 지난번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이 어렵게 포함돼 노사정 합의를 이뤄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 무시해버렸다. 노동계 쪽 신뢰 회복이 노사정 합의의 시작이다.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유턴하는 부분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미국이 유턴 기업을 통해 2020년까지 3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해 자국 경제를 살리고 있다. 우리도 외국에 나간 기업이 돌아올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노사정 합의의 좋은 모델이 광주형 일자리다. 광주, 기아자동차, 기아차 노조, 부품 사업자들과 광주시민단체가 노·사·민·정 합의를 이뤘다. 기존 자동차 업체의 평균 임금이 8000만원 선이라면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서는 4000만~5000만원 선으로 낮췄다. 자동차 100만대 생산 도시라는 걸 통해서 광주 경제를 살릴 수 있고, 광주 지역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인식하에 만들어낸 윈윈 구조다.
― 해외 생산기지 이전 사례로 삼성전자의 베트남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유턴기업에 혜택을 줄 수 있는가?
▶ 네! 나는 규제가 아닌 재벌 개혁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지원 행위는 다 할 수 있다.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안 되면 재벌 스스로의 혁신, 경쟁력도 갉아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재벌 대기업들에 있어 1세대의 창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은 다들 얘기하지 않는가. 왜 창업가 정신이 사라졌는가. 사내 일감 몰아주기 이런 걸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필요한 투자는 하지 않고 손쉬운 것만 하려고 한다. 재벌 자신의 경쟁력, 혁신을 위해서도 재벌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 기업 경쟁력 문제와 관련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준조세, 시원하게 완전히 없애겠다고 공약할 수 없나?
▶ 아예 없앨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런 것이 발붙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 지난날을 되돌아봐도 참여정부 시절 준조세는 없었다. 과거 선거 때마다 대기업 오너들이 정치자금 부담 때문에 몇 달씩 해외에 나가 있었던 것도 없어지지 않았나. 대기업 관계자들이 정말 기업하기 좋은 정부라고 평가했다. 이는 내가 직접 대기업 오너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평가다. 준조세는 정말로 반기업적 행태고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 우리 경제를 살리자고 기업 경쟁력을 위해 법인세도 경감했고, 그 고통을 국민이 껴안은 거 아닌가. 그런데 등 뒤로는 재벌 팔목을 비틀어서 수천억 원씩 걷어 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차제에 전경련도 해체해야 한다.
― 법인세는 내리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야권은 올리자고 하고 있다. 꼭 올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
▶ 어려운 질문이다. 세원 확대는 필요하다. 절실하다. 우리 경제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재정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에 필요한 재원도 늘어나게 돼 있다. 이런 재원을 담당하려면 조세수입을 늘리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생각하는 순서는 이렇다. 먼저 고소득자, 고액 상속, 부동산 임대소득이 대한 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 보증금 소득은 나중에 돌려줘야 하는 소득이라 과세가 어렵지만, 특히 월세소득 같은 경우엔 과세가 강화돼야 한다. 그 후엔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올리는 데 주력하겠다. 일단 대기업에 돌아가는 특혜적 감면을 대폭 줄이겠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 가는 R&D 투자세액공제 같은 것이다. 삼성전자쯤 되면 스스로 자기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 R&D에 투자할 능력이 있다. 중소기업도 개인사업인데 형식만 법인인 경우가 많다. 법인에 대한 혜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도 확실하게 정리해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고 나서도 추가적 세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맨 마지막에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도 검토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이들에 대해 세금을 우선 걷고 서민에 대한 세 부담은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게 원칙이다.
― 역대 정권마다 규제 완화를 외쳤는데 아직도 기업과 국민 모두 규제 때문에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규제 완화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있는가?
▶ 규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규제가 정부 자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 변화가 너무 빨라서 기존 법제 속에 없는 수많은 사업과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관료사회는 규정에 없는 영업활동은 못 하게 한다. 규정상 금지돼 있는 거 외에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규정에 없으면 못 하게 한다. 규제의 가장 큰 덩어리가 정부 자신에 있는 셈이다.
■ "사상 최고 청년실업 국가 비상사태"
공공 일자리 창출 필요…50대 실업 해결책은 파트타임 정규직 확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히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국가 비상 사태'라고 지칭할 정도로 강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작은 정부 지향에서 벗어나 공공 부문이 일자리 창출의 주체가 돼야 하며 중장년층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유연한 근로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노동개혁과도 맞닿는 문제의식이다.
― 청년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폭동이 일어날까 우려될 정도다.
▶ 일을 못하니 결혼도 못하고 애도 안 낳는다. 그래서 엄청난 저출산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당장 내년에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인구절벽이 닥칠 것이다. 소비할 사람이 없어지고 세금 낼 사람도 줄어든다. 성장할 힘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지금 사상 최고의 청년실업은 사실상 국가 재난 사태다. 비상사태를 해결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맨날 기업에 일자리를 만들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기업이 뚝딱뚝딱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느냐. 물론 기업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늘리게 하는 건 필요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공공 부문이 스스로 고용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정부라는 맹목적 편견에 사로잡혀 공공 부문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2000년대 이후 늘어난 일자리의 90%가 공공 부문에서 비롯됐다는 통계가 있다. 정보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민간 기업이 성장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줄어들게 돼 있어 정부가 일자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몇 년 지나면 청년인구가 빠르게 줄어든다. 어려운 몇 년만 잘 버텨내면 해결할 수 있다.
― 중장년층 이상에서는 생계형 자영업자가 가계부채 등으로 한국 경제의 큰 부담이 되고 있다.
▶ 10명 중 8명이 창업 5년을 버티지 못했다. 특히 음식업은 1년 만에 60%가량이 문을 닫고 있다. 조기 퇴직과 청년실업으로 인해 자영업 창업이 늘어난 데다 극심한 내수 부진이 겹쳤기 때문이다. 평생 직장에서 퇴직한 50대가 퇴직금을 모두 까먹고 취약계층으로 떨어지면 그만큼 복지 부담이 증가된다.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끌어다 쓰면서 가계부채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선 자영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창업자들에게 충분한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자영업 산업정책'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래야 과다 진입을 막을 수 있고 시장성이 있는 분야로의 창업을 유도할 수 있다. 또 무리한 창업에 뛰어들지 않도록 50대 일자리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일본처럼 파트타임 정규직 시스템을 통해 중고령자가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참고할 만하다.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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