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돈 있으면 집 사지 왜 전세를 구하나요?"

2013. 8. 2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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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동환 기자]

29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주공 6단지 아파트 내 상가.

ⓒ 김동환

[기사 보강 : 29일 오후 8시 21분]

"내가 보기에는 책상에 앉아서 급조된 전형적인 정책이에요. 이게 무슨 전월세 대책이에요. 20~30대 젊은 사람들한테 억지로 빚 내서 집 사라고 떠미는 거지."

노원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형식(가명)씨는 지난 28일 공개된 정부의 전·월세 대책을 '책상논리'로 간단하게 요약했다. 29일 서울 각지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 네 명도 김씨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정부 정책이 전세난을 해결할 수도 없을 뿐더러 거래활성화 측면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책 당사자인 세입자들은 진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크지 않은 월세 생활자들보다는 당장 다가오는 가을에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신혼 부부들이 더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집 살 형편 되는데 전세 구하는 사람, 거의 없어"

지난 28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전·월세 대책 골자는 주택 매매 활성화다. 집 살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전세 시장에 끼어드는 바람에 수요가 많아 전세난이 일었으니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집을 사게끔 정책적으로 유도하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일선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비판했다.

은평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진희(가명)씨는 "실제 거래를 하러 오는 손님들을 보면 집을 살 형편이 되는데 전세를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대부분 돈 없고 각종 대출 끼고서 겨우 전세 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은평구에서 마포구로 이어지는 6호선 라인은 대중교통으로 도심 접근이 빠른 편인 데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다세대 주택들이 많아 주거지를 구하는 젊은 층의 발길이 꾸준한 편. 그러나 이들 중에서 대출 없이 전세를 구하거나 주택을 매매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그는 "정부가 예로 든 경우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이유로 주택매매 활성화를 전세대책 골자로 꼽는 것은 비약 중에 비약"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세입자에게 혜택을 주거나 집주인들이 전세를 유지할 생각이 들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개사 김형식씨도 같은 이유로 "이번 대책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책 내용을 보면 신혼부부 등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젊은 층이 주택매매를 해야 하는데 실제 거래되는 유형을 보면 거래 활성화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 발표 이후로 지금 관련 문의 전화가 한 건도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집을 구하는 일반인에게도 거의 설득력이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김씨의 영업 구역인 노원구는 서울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낮은 편이라 집을 찾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김씨는 "노원구에서 실면적 39.6㎡~59.4㎡짜리 전세를 구하려면 최저 1억1000만 원은 줘야 하는데 손님들 보면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몇천만 원씩은 전세대출을 받고 한다"면서 "이 사람들이 매매를 하려면 거의 2억 원 가까이를 대출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 시내 소형아파트가 가진 특성도 거론했다. 신혼부부들은 예산상 소형아파트 전세를 선호하는데 현재 서울 시내에 20년 넘지않은 소형아파트가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정부에서 말하는 낮춰진 이율을 적용해도 월 이자만 60만 원 이상 물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돈주고 20년 넘은 아파트 살 생각이 들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김씨는 일부 경제지들이 비중있게 보도한 '1%대 손익공유형·수익공유형 모기지 상품'에 대해서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우선 사업 규모가 3000세대에 불과한데다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수익공유형의 경우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손익공유형은 집값의 40% 정도밖에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대책 요점을 잘못 잡았다"고 주장했다. 전세 대책의 핵심은 실질적으로 계약 가능한 물량을 확보해주는 것인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원역 인근의 주공 6단지가 2600세대인데 지금 나와있는 전세가 전혀 없다"면서 "사실상 젊은 사람들은 집에 돈 없으면 서울에서 살아가기 막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전세 대책 내놓으려면 반전세나 월세 부담 보조했어야"

28일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의 한 상가.

ⓒ 김동환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번 대책에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남구 개포동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유승진(가명)씨는 이번 정책의 핵심이 부동산 가격 인상에 있다고 지적했다. 말은 전세대책이지만 사실 속내는 부동산 부양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정부가 뭘 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뒀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사실 지금 전세 대란이니 이런 게 나오는 이유는 정부가 떨어져야 하는 집값을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렇게 정부에서 개입하면 거래활성화가 더 안 돼요. 집값이 비싼데 누가 집을 삽니까? 취득세 내려줘봐야 겨우 몇백만 원 정도인데요."

주택 구입자가 매수를 결심하기 위해서는 주택이 미래에 가치가 오른다는 판단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부양책이 이런 소비자들의 접근을 위축시킨다는 분석이다. 유씨는 "안정적으로 거품을 꺼트리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마포구 중개업자 박홍석(가명)씨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박씨는 "굳이 부동산 업계에 몸담는 사람 아니더라도 논리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 있지 않느냐"면서 "특히 집 사러 돌아다녀 본 사람이라면 이번 대책이 얼마나 허무한 내용인지 느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는 "집 주인이 월세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전세의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나면서 전세가 반전세나 월세로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는 추세"라면서 "정부가 진짜 대책을 내놓고 싶었다면 반전세나 월세 부담을 보조해주는 쪽으로 고민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안 그래도 전셋집 스트레스... 정부대책 보고 짜증이 두 배"

신혼 부부 등 대책 당사자들은 8·28 대책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 정책이 실질적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사정에 놓여있기 때문.

올해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허진영(가명)씨는 "결혼을 하려면 살 집이 있어야 하는데 구할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매매도 알아는 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집 때문에 스트레스가 엄청난데 정부가 집 사라는 대책 내놓는 걸 보고 짜증이 두 배가 됐다"고 말했다.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누가 집을 사요. 우리는 예산이 적어서 대출받아서 집을 사도 강북쪽에 사야 하는데 추후 시세 차익이 있을 지역도 아니니 더 답답합니다."

예비 신부인 김미현(가명)씨는 아직 집안 상견례도 하지 않았지만 주말마다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김씨는 "가을에 전세 대란 올 거라고 해서 일찌감치 알아본다고 다니고 있는데 전세는 정말 구하기 힘들다"며 "정부는 집을 사라고 하는데 집을 살 수 있으면 내가 집을 사지 왜 이러고 다니겠느냐,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월세 생활자들은 월세액의 소득공제율과 한도를 늘려주는 월세 대책에 대해 실효성을

문제삼았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 주인도 '갑'이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지원책이 집주인의 탈세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었다. 마포구 노고산동에 거주하는 월세 세입자 홍진희(가명)씨는 "월세 세입자 중에서는 집주인에게 소득공제용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시세보다 몇만 원 낮은 가격에 월세 계약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소득공제율을 높여주고 한도를 늘려줘봐야 실제 세입자가 이득을 보기는 어려운 게 시장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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