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투신'의 우승을 폄하하지 말라!
[포모스=김경현 기자]박성준, 다음 조지명식 때 가장 강력한 테란 선수를 뽑겠다
'투신' 박성준(STX)이 왼손으로 스타리그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고, 오른손에는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주어진 골든마우스를 품었다. 1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투신은 두 손에 스타리그 우승 트로피와 골든마우스를 동시에 들고 '살아있는 역사'로 새롭게 탄생했다.저그 최초의 스타리그 3회 우승이었다. 투신이라는 두 글자 자체가 프로토스의 재앙이었다. 압도적인 심리전과 피지컬을 앞세운 박성준은 질레트 스타리그, EVER 2005 스타리그에 이어 EVER 스타리그 2008 우승을 차지하면서 e스포츠의 중심에 우뚝 섰다.16강부터 여러 선수들을 꺾고 올라와 우승을 차지한 박성준. 하지만 그의 우승을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테란을 단 한번도 만나지 않고 결승전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란다.본 기자 역시 스타크래프트를 자주하고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마니아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그가 테란을 단 한번도 만나지 않고 우승을 했다는 것은 참 운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래도 종족 상성상 이런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박성준의 우승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16인의 2차 본선 진출자 중 최후로 살아 남은 선수에게 '천운이 따른 우승'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우승의 가치를 깎아 내릴 순 없다. 테란을 만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동안의 노력을 평가절하하지 말자. 박성준의 말처럼 이 같은 평가는 박성준 본인은 물론 그 동안 박성준과 맞붙은 선수들을 함께 무시하는 발언이다.테란을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박성준의 우승은 매우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라. 박성준은 e스포츠가 탄생하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팀에 소속되어 활동한 이후 최초로 '웨이버공시'를 당한 선수다. 물론 선수 본인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웨이버공시'라는 것 자체가 팀에서 필요가 없는 선수라는 뜻이다.MBC게임에서 웨이버공시를 당해 SK텔레콤으로 소속을 옮긴 박성준. 하지만 그는 SK텔레콤에서도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면서 우여곡절 끝에 STX로 둥지를 옮기게 된다. 부진이 계속되자 팬들은 박성준을 '퇴물' 취급했다. STX로 소속팀을 옮긴 이후 팀플전에서 맹활약했지만 팬들은 그의 부활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박성준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을 경험하고 올라온 선수다. 이윤열(위메이드)이 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는지 생각해보자. 이윤열은 오프라인 예선까지 떨어지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우승,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 준우승, 신한은행 마스터즈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정상에 올라선 선수다.박성준은 이윤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 이후 오프라인 예선으로 추락한 박성준은 웨이버공시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박성준은 약 1년의 와신상담 끝에 다시 스타리그의 정상에 우뚝 섰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박성준의 우승이 폄하될 이유는 전혀 없다.투신이 우승을 차지하고 인터뷰를 위해 기자실로 들어왔다. 우승의 소감, 어려웠던 순간 등 일반적인 질문을 하고 있을 때 기자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테란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박성준은 기대 이상의 대답을 해주었다."사실 운이 좋았던 것이 맞다. 저그가 테란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이미 반을 먹고 들어간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운이 좋다는 것만 강조하시는 분들은 내가 이긴 선수들을 모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이긴 선수들은 테란을 이기고 올라온 선수들이다. 나를 폄하하는 것은 그 선수들도 폄하하는 것이다. 그래도 솔직히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그도 알고 있었다. 테란을 만나지 않고 우승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박성준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극강의 저그전을 앞세워 본좌로 인정받던 최연성(은퇴, SK텔레콤 코치)을 4강에서 꺾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던 박성준이다. 저그 최초로 테란을 꺾고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박성준이다. 이런 그가 단 한번도 테란을 만나지 않고 우승한 이번 스타리그를 '운도 실력이다'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발언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대신 박성준은 이렇게 말했다. "다음 조지명식 때 가장 강력한 테란 선수를 뽑겠다", "다음 시즌에 또 우승을 해야 완벽하다고 생각한다"고...박성준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테란전의 부진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우승까지 차지한 박성준에게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투신 박성준의 프로게이머 인생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jupiter@fomos.co.kr모바일로 보는 스타크래프트 1253+NATE/ⓝ/ez-iEnjoy e-Sports & http://www.fomos.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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