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광차·불 꺼진 아파트… “고향 사라질까 두려워”

이성현 기자 2025. 4. 2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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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채굴 작업은 모두 종료됐고 이젠 폐광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비가 전국을 적시던 지난 22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앞에서 만난 한 직원은 광업소가 조용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얘기했다.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국내 1호 공기업인 대한석탄공사 소속 마지막 공영 탄광인 도계광업소가 오는 6월 말 폐광을 앞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는 대규모 실업자 발생에 따른 지역소멸 가속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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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도계광업소 가보니
석탄公 마지막 탄광 6월 폐광
청장년층 대규모 이탈 현실화
대체산업 의료클러스터 하세월
“일방적 폐광… 예타 속도내야”
흉물로 방치된 철로 지난 22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갱구 앞 철로에 석탄을 싣고 운반하는 광차가 채탄 작업 종료로 멈춰 서 있다.

삼척=글·사진 이성현 기자 sunny@munhwa.com

“석탄 채굴 작업은 모두 종료됐고 이젠 폐광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비가 전국을 적시던 지난 22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앞에서 만난 한 직원은 광업소가 조용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얘기했다.

이날 찾아간 도계광업소 갱구 주변 철로에는 석탄을 싣고 광부를 태워 날라야 할 광차와 열차가 모두 멈춰 서 있었다. 녹이 슨 철제 기구와 장비들이 이곳저곳에 방치돼 있고 오가는 사람도 없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만이 탄광의 적막감을 깨웠다.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국내 1호 공기업인 대한석탄공사 소속 마지막 공영 탄광인 도계광업소가 오는 6월 말 폐광을 앞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는 대규모 실업자 발생에 따른 지역소멸 가속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지역에는 국내 유일 민영 탄광인 ㈜경동상덕광업소 한 곳만 남게 된다.

폐광을 앞둔 도계읍에서는 청장년층의 대규모 이탈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대한석탄공사와 삼척시 등에 따르면 도계광업소에서 일하는 직원은 정규직 274명과 촉탁계약직 등을 포함해 552명이다. 도계읍 토박이인 심진철(53) 씨는 “도계읍은 국내 최대 석탄생산지로 1980년대에는 인구가 5만 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은 9000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계속 줄고 있고 폐광도 앞두고 있어 이러다 고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도계광업소에서 퇴직 후 촉탁직으로 근무하는 황경석(64) 씨는 “광업소 직원이 생활하는 아파트 사택을 가보면 밤에 불 꺼진 곳이 수두룩하다”며 “직원 가족들이 폐광에 앞서 먼저 살길을 찾아 지역을 떠나는 현상이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도계광업소 인근에 있는 전통시장인 도계전두시장에 가보니 총 62개 점포 중 문을 연 곳은 10곳 남짓이었고 상당수 점포는 운영을 중단했거나 매물로 나와 있었다. 한 주민은 “예전에는 저녁이면 시장 골목길이 사람들로 꽉 차 돌아다니기조차 힘들었는데 이제는 저녁만 되면 영업하는 곳을 찾기도 힘들다”며 “도계광업소 폐광이 예정돼 있어서 점포 거래도 뚝 끊겼다”고 토로했다.

강원도가 2023년 발표한 탄광지역 폐광대응 연구용역에 따르면 도계지역에서 공영·민영 탄광 폐광 시 하청업체를 비롯한 실업자 수는 1603명으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탄광 대체산업 육성 등 경제 회복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기대를 걸었던 정부의 고용위기지역 지정이 지난해 10월 불발되면서 주민들은 올해 초부터 도계역 앞에서 천막농성과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며 정부에 생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삼척시는 폐광지 경제진흥산업으로 중입자가속기 치료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도계의료클러스터 조성사업(총사업비 3333억 원)을 2029년까지 추진할 계획인데, 현재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업이 확정된다 해도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눈앞에 닥친 주민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태 도계읍번영회장은 “폐광은 지역주민과 협의는 물론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며 “정부는 이제라도 폐광지 경제진흥사업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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