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분···분단 안타까워해”

이영경 기자 2025. 4. 23. 14: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라자로 유흥식 신임 추기경(오른쪽)이 2022년 8월27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된 뒤 비레타를 받고 있다. EPA합뉴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분이었다”며 생전 한반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교황의 선종을 애도했다.

유 추기경은 22일 발표한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메시지에서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을 특별히 안타까워하며 형제와 가족이 갈라진 이 크나큰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당신께서 직접 북에도 갈 의향이 있다고 하셨을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교황의 기도 가운데 한국에 관한 기도에는 남과 북이 모두 포함된 기도였음을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움직여 행동으로 조금 더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다”며 평생 사회적 약자 곁에서 사랑을 실천했던 교황을 추모했다.

건강 악화에도 마지막까지 교도소를 찾아 수감자들을 만나고 부활절을 맞아 신자들 앞에 섰던 교황을 돌아보며 유 추기경은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멈추지 않은 그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이 지상에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서 희망과 부활을 보았으며, 우리 자신이 또 다른 부활의 모습으로 이웃과 사회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2021년 8월 2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된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미사에서 유흥식 대주교가 강론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하며 “슬픔과 고통, 외로움보다는 고요한 평화를 본다”면서 “그분은 슬퍼하기보다 우리가 평화롭길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한국의 대전이라는 지방 교구의 교구장을 전 세계 성직자와 부제, 신학생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으로 임명하셨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을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으로 기용한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사제의 쇄신없이 교회의 쇄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교황을 가까이 보좌하면서, 그분이 바라는 교회와 성직자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며 “늘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눈높이에 맞춰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으셨던 교황님의 발자취를 본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는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당시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인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청하는 그의 서한을 계기로 교황의 방한이 이뤄졌다. 이후에도 바티칸에서 수시로 교황을 개별 알현해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유 추기경의 탈권위적인 모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 강력한 추진력을 눈여겨본 교황은 그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서구 출신 성직자들이 도맡다시피 한 교황청 장관에 가톨릭계 변방인 한국의 지역 교구장(대전교구장)을 임명하자 현지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2021년 한국인 성직자 최초로 교황청 장관에 발탁된 그는 이듬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됐다. 2023년 9월16일(현지시간) 성상이 공개되는 모습. AP연합뉴스

2023년 가톨릭 성지인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야 신부의 성상이 세워진 데도 유흥식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유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며 결정됐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 동양인 성상이 설치된 것은 가톨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 추기경은 이날 교황 선종 이후 처음 소집된 추기경회의에 참석해 교황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추기경단은 회의를 거쳐 2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를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유 추기경은 선종일로부터 15∼20일 이내에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에 참여한다. 1951년생으로 현재 만 73세인 유 추기경은 다가오는 콘클라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고 피선거권도 누린다.

유흥식 추기경은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선정한 12명의 차기 교황 유력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흥식 추기경 프란치스코 선종 메시지 전문>

교형 자매 여러분, 동포 여러분

Farrell 추기경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라는 선종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저는 슬픔과 고통, 외로움보다는 고요한 평화를 봅니다. 그분은 슬퍼하기보다 우리가 평화롭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멋있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교황님에 대한 큰 부러움도 있었습니다. 2025년 4월 20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 미사 후 발코니에서 전 세계인에게 교황님이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랑이 증오를 이겼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겼습니다. 진실이 거짓을 이겼습니다. 용서가 복수를 이겼습니다. 악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부활의 은혜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권세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약한
손을 그분의 크고 강한 손에 위탁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희망의 순례자가 되고, 사랑의 승리를 증명하는 증인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움직여 행동으로 조금 더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멈추지 않은 그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이 지상에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영원의 삶을 보여주신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며, 한국의 교형자매 여러분, 동포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애도하였으면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서 희망과 부활을 보았으며, 우리 자신이 또 다른 부활의 모습으로 이웃과 사회로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한국의 대전이라는 지방 교구의 교구장을 전 세계 성직자와 부제, 신학생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사제의 쇄신없이 교회의 쇄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교황님을 가까이 보좌하면서, 그분이 바라는 교회와 성직자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늘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눈높이에 맞춰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으셨던 교황님의 발자취를 본받으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을 특별히 안타까워하시며 형제와 가족이 갈라진 이 크나큰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당신께서 직접 북에도 갈 의향이 있다고 하셨을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교황님의 기도 가운데 한국에 관한 기도에는 남과 북이 모두 포함된 기도였음을 기억합니다. 화해와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선이 있다고 믿으셨던 교황님의 다음 말씀이 오래
우리 안에 살아있길 함께 기도합시다. “선을 행하는 일에 지치지 말아 주십시오.”
희망을 잃지 않고 선을 행하는 여러분의 부활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2025년 4월 22일, 바티칸에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드림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