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기 이제 관심 없어... 요즘 MZ가 돈 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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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누리 기자]
서른 살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어떤 옷을 샀는지, 머리를 어떻게 바꿨는지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생겼다. 바로, 소소한 투자다. 요즘 우리는 보험, 재테크, 셀프 인테리어 같은 이야기를 더 자주 나눈다.
보험에 있어서는 오히려 자녀 세대가 부모님보다 더 빠삭할지도 모른다. 주변 친구들 열에 아홉은 실비보험을 들었다. 하도 인터넷에서 "실비는 필수"라는 말을 봐서 영문도 모르고 가입한 지 벌써 3년째다. 나도 최근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고 처음으로 실비 청구를 해봤다. 청년인 내가 실비에 가입하는 건 인터넷 다이렉트로 5분이면 끝났다.
보험과 재테크
문제는 나보다도 부모님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보험에 가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몇몇 부모님 세대에게 보험이란, 설계사 말에 속아 비싼 금액을 납입하거나 결국 쓸모없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해가 갈수록 부모님은 그저 '다치면 큰일 난다'는 생각만으로 생활을 조심스럽게 이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인생은 예기치 않은 일의 연속이지 않은가.
훗날 부모님을 부양하게 될 자녀로서도 불안감이 앞섰다. 더 확실한 시스템적 보호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루를 통째로 비워 보험을 하나하나 알아봤다. 실비는 기본이고, 가장 인기 있는 암·뇌·심혈관 보험까지. 치료비 한도는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정도로. 조금만 검색해도 관련 정보는 넘쳐났다.
홈페이지에서 매칭된 설계사에게 정확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긴장하며 통화하던 내게 설계사는 오히려 정보를 꼼꼼히 알아보셨다며 감탄했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정보 접근이 쉬워진 덕에 설계사들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처리를 신속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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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대화 |
ⓒ 정누리 |
요즘은 재테크 관련 강의를 찾기도 쉽고, 백 만원이 넘는 유료 강의를 결제하는 친구들도 있다. 물론 이중엔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도 있지만, 한편 내 노후는 내가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는 친구들도 많다. 매스컴에서는 2050년대가 되면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기사가 뜨고, 나는 당장 결혼이나 자녀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안정을 추구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적금 대신 금이나 연금 펀드 등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은 상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금융 접근도 훨씬 쉬워졌다. '토스' 같은 앱은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미국 채권을 살 수 있고, 금은방에 가지 않아도 가상계좌로 실물 금을 주문할 수 있다.
재테크가 너무 쉬워진 나머지,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울고 웃던 친구들도 많았다. 과거 아이돌 이야기를 하던 만큼, 요즘은 트럼프나 시진핑 얘기를 한다. 이제는 누구나 하나쯤은 자신만의 재테크 루틴을 갖고 있다.
셀프인테리어
셀프 인테리어도 즐겨 한다. 자기 집을 갖게 된 친구들이 늘면서, 집들이도 종종 열린다. 눈에 띄는 가구가 있으면 으레 어디서 샀는지 묻는다. 그러면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당근에서 샀어"라며 뿌듯하게 말한다.
어느 날은 친구가 소파와 책상을 당근마켓에서 샀다고 해서, 그 무거운 걸 어떻게 옮겼냐고 물었더니, 직접 용달을 불렀다고 했다. 다리가 분리돼 온 책상은 전동드릴로 직접 조립했다고 한다. MZ세대 사이에서는 10만 원짜리를 5만 원에, 5만 원짜리를 2만 원에 산 것이 최고의 자랑거리다.
어떤 친구는 방을 화사한 민트색 벽으로 꾸며놨다. 그것도 직접 페인트칠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올렸던 게 기억난다. 힙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셀프 인테리어는 단순히 알뜰한 소비가 아닌 하나의 콘텐츠다. 유튜브에 올리기에도 좋은 소재다. 그렇게 올라온 영상과 후기들은 또다른 MZ에게 영감을 준다. '배우면 된다'는 행동력과 과감함은, 가끔 기성세대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가끔 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너무 세속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싶다. 차라리 예쁜 가방을 사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이야기가 더 우리 나이대에 어울리는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소비가 더 좋고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관심사가, 우리의 관심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요즘은 치장보다 내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 더 재미있다. 어릴 적 나는 육성 시뮬레이션이나 경영 게임을 꽤 즐겼다. 그런데 성인이 되니, 이상하게 게임이 재미없어졌다. 아마도 지금은 내 인생 자체가 하나의 시뮬레이션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도를 중시하던 나에게, 현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오픈월드 게임처럼 느껴진다. 적절한 곳엔 아낌없이 쓰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줄이며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오늘은 조금 더 어른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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