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상한 리베이트 수사 [세상에 이런 법이]
검수완박, 검수덜박, 검수원복. 2018년부터 이어져온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나온 신조어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은 중요범죄 수사가 절대로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고 읍소했고, 결국 부패범죄·경제범죄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로 남겨진 ‘검수덜박(검찰 수사권 덜 박탈)’으로 마무리되었다.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은 부패범죄를 8개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불법 금품 수수 관련 부패범죄’ 중 하나로 의약품 리베이트 범죄를 적시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도 검찰이 지켜낸 의약품 리베이트 범죄 수사는 식품의약안전 중점검찰청인 서울서부지검이 담당한다. 서울서부지검은 2013년 식품의약안전 중점검찰청으로 지정된 후 2014년 서울중앙지검에 있던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을 이관받아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A씨는 경보제약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 병의원 수백 곳에 약값의 20%가량을 현금 등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리베이트 400억원을 제공했다고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신고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경보제약의 행위가 공익 침해행위가 맞다고 판단해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고, 대검찰청은 식품의약안전 중점검찰청인 서울서부지검에 배당했다. 2021년 11월 사건을 접수받은 서울서부지검은 신고자로부터 관련 자료를 추가로 건네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3년이 지난 2024년 12월26일 서울서부지검은 경보제약 전현직 임직원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2019년 8월부터 1년간 회사 소유 67억5200만원을 전액 100만원 자기앞수표로 인출한 후 사원들과 가족들을 통해 현금화했고, 그 현금을 의료인들에게 전달하는 용도로 지출했다는 것이다. 공익신고자는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기쁜 마음으로 서울서부지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공익신고자가 서울서부지검에서 교부받은 건 약사법 위반 공소장이 아니라 불기소 이유서였다. 리베이트를 제공한 회사 임직원은 횡령 혐의로 기소됐지만,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의료인들은 추가 수사와 처벌을 피한 것이다. “피의자들은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라는 주문으로 시작되는 불기소 이유서에는 검찰이 밝혀냈다는 리베이트 자금 67억5200만원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324만원에 대한 약사법 위반 여부만 검토되어 있었다. 이 또한 “리베이트를 제공한 일시, 금액 등을 특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없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기재되어 있었다.
의료인 단 한 명도 입건하지 않은 검찰
2010년 11월 리베이트 쌍벌제가 도입되어 리베이트를 지급받는 의료인도 처벌 대상이 되었다. 리베이트 비용은 의약품 가격에 전가되어 결과적으로 소비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준다. 그래서 리베이트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피해자인 부패범죄이고, 시민들이 검수완박 과정에서도 검찰에 수사권을 맡겨둔 이유다. 그러나 서울서부지검은 3년 동안 수사를 하며 의료인을 단 한 명도 입건하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피해자인 리베이트 범죄가 아니라 가해자 가운데 하나인 경보제약(법인)이 피해자인 횡령 사건으로 둔갑했다.
윤석열 구속취소에 대한 이례적 즉시항고 포기,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의 나태함을 통해 다시 이 구호가 등장했다. “검찰개혁!”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검찰 권력을 여기저기 붙이고 떼기를 반복하는 검찰개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수사 대상인 리베이트 범죄에 대해 성의 없는 수사로 일관한다면 검찰에 맡겨진 수사권은 도로 회수될 것이다. 리베이트 등 공익 침해 범죄에 대한 검찰의 분발을 촉구한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