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집을 찾는 과정이지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5. 8. 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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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아빠가 떠난다.

다음 날, 아빠 없는 집에서 맞이한 첫 번째 저녁.

의무감으로 마주 앉은 어른의 눈치만 살피던 아이가 아빠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집에 가는 장면.

"있잖아, 아빠··· 이제 안 되는 거야?" 아빠의 넓은 등에 기댄 아이의 좁은 어깨가 가로등 아래 흔들리며 점점 멀어지고 흐릿해지는 바로 그 문제의 시퀀스부터는, 기어이 내 안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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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감독: 소마이 신지
출연: 다바타 도모코, 나카이 기이치, 사쿠라다 준코

내일이면 아빠가 떠난다. 함께 살던 세 식구가 내일부터는 따로 산다. 엄마는 아까부터 별말이 없는데 초등학교 6학년 딸 렌(다바타 도모코)의 잔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아빠, 채소도 잘 먹기로 했잖아.” “진짜 혼자 먹고살 수 있겠어?” “어디 가? 아직 짐도 안 쌌잖아.”

다음 날, 아빠 없는 집에서 맞이한 첫 번째 저녁. “우리 둘이 새출발 하는 날이니까 멋진 데서 외식하자”라며 조금 들떠 있는 엄마가 연거푸 술잔을 비운다. 비틀대며 집에 돌아와 큰 소리로 떠든다. “오늘부터 독신이야! 내 시간은 내 거야! 여기 사인만 받으면 난 자유야!”

엄마가 식탁에 놓고 간 이혼 서류. 가만히 들여다보는 아이. 어제부터 최선을 다해 명랑했던 렌의 얼굴에서 마침내 미소가 지워진다. 아빠는 아빠의 공간이 생겼고 엄마는 엄마의 시간을 되찾았지만, 렌이 좋아할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아빠의 이사까지는 봐주어도 부모의 이혼까지 용납할 마음은 없었으니까. 작전을 짠다. 실행에 옮긴다.

‘어른의 사정을 이해할 리 없는 천진한 아이의 귀여운 소동극.’ 처음엔 그런 영화처럼 시작하더니 갈수록 ‘그런 영화’에서 멀어진다. 이혼 가정 친구를 놀려대는 반 아이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렌이 교실에 불을 내는 장면부터, 영화의 궤도가 바뀐다. 화장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버티는 렌을 설득하다 엄마의 주먹이 유리를 깨고 들어와 피범벅이 되는 순간부터, 이야기의 중력이 달라진다.

별거 도중 오랜만에 세 식구가 모인 식사 자리. 의무감으로 마주 앉은 어른의 눈치만 살피던 아이가 아빠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집에 가는 장면. “내년에 셋이 다이몬지(축제) 보러 가자.” 아빠에게 말했지만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 아이가 나지막이 다시 물어보는 그 순간. “있잖아, 아빠··· 이제 안 되는 거야?” 아빠의 넓은 등에 기댄 아이의 좁은 어깨가 가로등 아래 흔들리며 점점 멀어지고 흐릿해지는 바로 그 문제의 시퀀스부터는, 기어이 내 안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모든 성장영화는 결국 멜로영화. 과거의 나를 만나 잠시 설레고 자꾸 마음이 쓰이고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다가도 부끄러워 숨고 싶어지는 시간. 어김없이 이별은 찾아온다. 그때의 나를 남겨두고 돌아서야 한다. 마지막 작별 인사로 지금의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축하합니다!” 영화 〈이사〉의 선택은 뜻밖에도 이 문장. 누가 봐도 축하할 일 같은 건 없는 아이에게 꿋꿋이 계속 축하를 건네는 영화. 누가 지어도 〈이혼〉이 되는 게 자연스러울 제목이 〈이사〉가 된 까닭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건 아빠가 이사 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렌이 이사 가는 이야기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아의 거처를 옮기는 시간이다. 처음 ‘내 집’을 찾아낸 이에겐 축하를 건네야 마땅한 것이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말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른들 문제에 휘말린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을 치유해나갈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렌이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여정입니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건 ‘왜 부모가 나를 낳았을까?’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태어나버린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2년 전 칸 영화제가 주목한 이 전설의 걸작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이제야 극장에 걸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소마이 신지는 내가 넘어서고 싶은 단 한 명의 감독”이라고 말한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여름정원〉과 〈태풍클럽〉도 연이어 개봉한다. “극장 가서 볼 영화 없다”라는 말, 올여름엔 함부로 할 게 아니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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