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땅꺼짐, 말라버린 왕궁의 우물이 전하는 경고
[한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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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5일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도로에서 전날 발생한 대형 땅꺼짐 현장에 소방의 출입통제 라인이 설치돼 있다. 전날 오후 명일동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발생한 지름 20m, 깊이 18m가량의 대형 싱크홀(땅꺼짐)에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빠져 사망했다. |
ⓒ 연합뉴스 |
이번 글에서는 컵 속 슬러시와 빨대 그리고 말라버린 왕실 우물의 비유를 통해 도시 지반침하의 실제 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지속가능한 해법과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슬러시 컵과 도시 지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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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러시 음료 |
ⓒ 챗지피티 이미지 생성 |
도시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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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내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우물 |
ⓒ e 영상 역사관 |
빨대로 쪽쪽, 경쟁하듯 퍼내는 지하수
지하수가 줄줄 새나가 지반침하를 일으킨다면 '대체 지하수가 왜 그렇게 빠지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두 아이의 빨대 싸움에 비유해 봅시다. 하나의 컵에 든 주스를 두 아이가 각자 빨대로 마신다고 가정해 보세요. 남은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겠다고 서로 세게 빨아들일수록 주스는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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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 광명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17분께 광명 양지사거리 부근 신안산선 제5-2공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
ⓒ 연합뉴스 |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지하층으로 물이 스며들면 자동펌프로 계속 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자기 지하 공간에서 물을 빼다 보니 도시 전체의 지하수를 쪽쪽 빨아들이는 형국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은 슬러시 컵 밑동을 동시에 여러 개의 빨대로 빨아들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 결과 지하수는 고갈되고, 지반은 속이 텅 빈 슬러시처럼 허물어질 준비를 하게 됩니다.
깨진 하수관, 원인인가 결과인가
땅 꺼짐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원인으로 "노후 상하수도관 파열"이 거론됩니다. 오래된 지하 관로에서 물이 새어 나와 주변 흙을 씻어내면 커다란 공간(공동)이 생기고, 결국 지반이 꺼진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낡은 관에서 물이 샌다면 지반을 약하게 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경우 지반침하의 근본 배경에는 앞서 말한 지하수 문제, 즉 지반을 지탱하던 물이 빠져나간 영향이 깔려 있습니다. 지하수위가 떨어지고 지반이 서서히 내려앉으면, 그 안에 묻혀 있던 상하수도관도 균형을 잃습니다. 견디지 못한 관로 접합부가 벌어지거나 관이 휘면서 물이 새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관이 터져서 땅이 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땅이 움직여서 관이 터진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지요. 아무리 튼튼한 관이라도 발밑 지반이 슬러시처럼 출렁거리면 멀쩡히 버티기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파손된 관로만 탓할 게 아니라,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지하수 고갈과 지반 약화를 진짜 원인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빗물을 땅속으로... 근본 해법은 물순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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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이기 전에는 비 내린 물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흡수되어 지하수층을 채웠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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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역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계획도 |
ⓒ 서울시 제공 |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빗물을 모았다가 곧장 강이나 바다로 버리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해법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눈앞의 홍수 위험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지하수 보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귀한 물을 도시 밖으로 더 빨리 내쫓는 셈이니까요. 지하에 커다란 공간을 만드는 공사는 그 자체로 지반 안정성을 해칠 위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터널은 유지관리 비용 부담만 지울 뿐, 지반침하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값비싼 임시방편인 것입니다.
지하수를 지키는 도시 설계... 해외에서 배운다
도시의 물 순환을 정상화하려면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이제 개발과 건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지하수가 고갈되지 않는 설계'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지을 때 지하수를 무턱대고 퍼내는 관행부터 바꿔야 합니다. 공사 기간에는 불가피하게 물을 빼내더라도, 그 물을 멀리 버리지 말고 인근에 재투입해 주변 지하수위가 급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완공 후에도 지하 공간으로 물이 스며들 때 이를 모두 밖으로 배출해 버리는 대신, 가능한 한 지하수로 재흡수하는 구조를 도입해야 합니다. 건축 허가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물순환 친화적 설계를 요구하는 법 규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세계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해외 선진 사례 중 하나로 독일 베를린 중앙역 건설을 들 수 있습니다. 베를린은 지하수를 중시하여, 중앙역 공사 당시 땅속에서 퍼올린 지하수를 인근에 따로 판 우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공사로 인한 주변 지하수위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덕분에 주변 공원의 나무와 기존 건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되었고, 지반 침하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유럽 몇몇 도시는 법으로 건설 현장의 지하수 처리 방법을 관리하여 개발로 인한 지반 변화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하안전영향평가 제도 등을 보완해, 대규모 지하굴착 시 지하수위 변화까지 철저히 관리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물이나 지하철 공사장마다 빗물을 이용해 지하수를 보충하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을 함부로 퍼 쓰는 개발은 지양하고, 물을 지키는 개발만이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모두의 노력
결국 지반침하 문제는 우리 도시의 물 관리 방식이 낳은 인재(人災)입니다. 땜질식 처방이나 남 탓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민부터 정책결정자까지 모두 긴 안목을 가지고 근본 대책에 나설 때입니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물 관리와 토지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우리가 딛고 선 도시 기반은 더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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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5일 서울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싱크홀(땅 꺼짐) 사고 발생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다. 앞서 전날 오후 6시 29분께 명일동의 한 사거리에서 지름 20m, 깊이 20m가량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싱크홀에 빠져 실종됐고, 함몰 직전 사고 현장을 통과한 자동차 운전자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
ⓒ 연합뉴스 |
지반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진행되지만, 그 영향을 받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과 후손들입니다. 지금 당장 발걸음을 돌려 지속가능한 도시 물순환 회복에 힘쓴다면,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은 더 안전한 땅 위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슬러시처럼 허무하게 꺼지지 않는 단단한 도시의 땅을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 모두의 지혜와 실천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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