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동화는 나의 소명…걷는 기적도 양보할 것"
휠체어 탄 동화 작가 고정욱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장 많이 만나는 작가로 꼽히는 고정욱(65) 작가는 자신을 ‘언더독의 희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돌 무렵, 소아마비를 앓았다. 장애가 생기자 주변에선 해외 입양을 권했다. “어느 날, 옆집 할머니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와서 어머니께 말했대요. ‘새댁, 쟤는 고양이만도 못해. 얘는 쥐라도 잡아. 외국으로 보내버려.’” 하지만 고양이만도 못하다는 아이는 커서 문학박사가 되었고, 책 380권을 펴내 총 5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의 책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초등학교 국어책에, 『신영숙 선생님께』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그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LMA)의 2025년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타깝게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알마(ALMA)상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죠. 저를 추천해줬다는 것도 감사하고, 언젠가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까칠한 재석이』 민성이 가장 애착
‘장애 장르의 창시자’라는 말이 가장 영광스럽다는 그는 “장애 동화를 읽고 자란 어린이가 우리 사회를 ‘차별 없는 세상’으로 바꾸고 있다”며 웃었다. 일생에 500권을 목표로 현재도 하루도 빠짐없이 집필하고, 1년에 200회 이상 강연을 다니는 고 작가를 만나 작품 세계와 장애 인식 개선에 대해 들었다.
Q : 어떻게 ‘장애 장르’의 창시자가 됐나.
A : “등단(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할 때는 (단편) 소설을 썼다. 동화를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이 된 자녀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당시 시장 분석을 위해 서점을 돌아보고 장애를 다룬 동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진실하게 쓸 수 있는 주제가 장애이지 않나. 외환위기 이후 그런 이야기가 팔리겠냐는 만류도 있었다. 하지만 동화 데뷔작인 『아주 특별한 우리 형』(1999년)은 그해 아동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 당시 장애인 이야기가 1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충격이었다.”
Q : 장애 동화로 큰 반향을 일으킨 비결은.
A : “당시 386세대(1960년대 태어난 80년대 학번, 30대 연령층)가 부모가 된 시기였다. 자립적이고 독서를 중시했던 386세대는 자녀에게 외국 동화보다 국내 창작동화를 읽히고 싶어했다. 마침 그 무렵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운 좋게 올라탄 것 같다.”
Q : 당시에 비하면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나.
A : “내가 『안내견 탄실이』(2000년)를 낸 뒤 20여 년 만에 두 번째 안내견 책을 냈는데, 그 사이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희생의 대상이었고, 불쌍한 존재였던 장애인과 안내견이 지금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건 20년 전 『안내견 탄실이』를 읽은 어린이들이 지금 어른이 되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꾼 덕분이라고 믿는다.”
Q :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책과 인물(주인공)이 있다면.
A : “뭐니 해도 효자는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이다.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120만 권 이상 판매됐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의 민성이다. 주인공 재석이는 싸움도 잘하고 멋있지만, 그 친구인 민성이는 까불고 유쾌한 캐릭터다. 나와 닮아있다.”
A : “사실 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질투도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장애를 가졌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나. 어렸을 땐 우울했다. 그래도 책을 읽고 자기계발을 하며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꿨다. 가족이 매우 밝은 성격인 영향도 컸다. 마더 테레사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기자가 (생전) 마더 테레사에게 ‘매일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수녀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마더 테레사 수녀는 ‘수녀를 뽑을 때 명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명랑한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힘이 있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밝은 성격은 작가 활동에 도움이 됐다.”
Q : 장애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를 지나왔다. 어려운 점이 없었나.
A : “왜 없었겠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마다 어려움에 부딪혔다. 첫 번째는 교육이었다. 의대를 가고 싶었지만,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두 번째는 직업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학교에 남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회사 취직도 어렵고 사업이나 장사도 할 수 없었다. 작가는 그 돌파구가 됐다. 가장 큰 고비는 결혼이었다. 누가 나에게 선뜻 시집을 오겠다고 할까.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직업, 결혼 다 나에겐 무척 힘든 고비였다.”
Q : 큰 고비였을 결혼 스토리도 궁금하다.
A : “대학 후배로부터 아내를 소개받았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와는 처음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내가 결혼하자고 하자 아내는 큰 결심을 하고 시집왔다. 가족의 엄청난 반대를 뚫고 나에게 온 그 의리를 잊을 수가 없다. 1988년에 결혼했으니 벌써 40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아내 덕분에 아이들(1남 2녀)도 얻었고, 무엇보다 내가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AI와 인체 결합한 미래
Q : 걷게 되는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A : “나는 갑자기 걷게 되면 곤란하다. (영업이 안된다) 하하. 5년 전 펴낸 『그래서 슬펐어?』 책에는 실제 아들과의 얘기를 썼다. 차마 마음이 아파서 못 꺼냈던 얘기다. 아들이 어린 시절 한 친구와 말다툼을 하다 ‘너네 아빠는 장애인인데, 넌 뭐가 잘 났다고 그러냐’는 말을 듣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는 아들에게 ‘넌 아빠가 장애인이라 슬펐어? 아빠는 하나도 안 슬픈데’라고 다독였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장애인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 난 웃으면서 답한다. ‘너 눈치 빠르다. 사실 밖에서는 장애인으로 활동하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나 확인한 다음 벌떡 일어나 막 걸어 다녀’ 그러면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솔직히 나도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기적을 주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를 양보할 것 같다. 지금까지 쓴 동화 중 절반 이상이 장애 이야기다. 많은 독자가 그 이야기에 감동했다. 그건 어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Q : 오는 20일은 ‘제45회 장애인의 날’이다. 그동안 장애 인식이 크게 개선됐지만, 여전히 바꾸고 싶은 것은.
A : “장애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요즘 내 책이 주로 동남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문화 수준 때문이다. 각 나라의 상황을, 농구팀에 비유해보자. 학교에 농구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휠체어를 탄 아이가 ‘나도 농구하고 싶어’라고 찾아온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린 시합 나가야 하는데, 너 같은 애는 장애인 팀에 가거나 그냥 구경만 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장애가 있어도 공이라도 한 번 만지게 해주자’고 말해왔다. 그런데 저개발 국가는 아예 장애인이 농구팀에 들어가는 상황 자체를 상상조차 힘들어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나라에서 장애 문학에 대한 공감대와 필요성이 크다. 반면 서구권의 경우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이 이미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나는 늘 장애인이 운동부나 예술반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나라를 꿈꾼다.”
Q : 앞으로 어떤 책을 쓸 계획인가.
A : “AI와 인체가 결합되면 장애인의 삶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장애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런 미래를 동화로 그리고 싶다.”
고정욱 작가가 알려주는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법’은 간단하다. 그는 책에 항상 “장애인의 친구가 되어주세요”라고 사인한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영택이가 나였다면, 가방을 들어준 석우 같은 친구가 있었기에 지금의 고정욱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장애인의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