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 읽기] 식탁 위로 번질 관세전쟁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의 여파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당장은 90일 유예를 얻어냈다지만, 무역질서의 변화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자유무역 질서는 각국이 가장 잘하는 산업을 키워 시장경제 내에서 국제적인 분업을 하는 구조다. 그러니 어떤 이유로든 자유무역 질서가 깨지면 각국은 도태시킨 자국 비주류 산업을 되살리는 자급자족으로 내몰린다. 국제화에 의해 달성된 효율성이 감퇴해 각국 물가가 다함께 상승하는 구조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밥상 물가도 큰 타격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전체 소비자물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 그리 큰 차이가 없으나, 도드라지게 높은 분야 중 하나가 식료품 물가라서다. 영국 분석기관인 EIU의 물가 통계를 살펴보자. 한국의 식료품 물가는 OECD 평균 물가지수에 비해 20% 정도씩은 비쌌다. 1990년에도 OECD 평균보다 19% 정도 비쌌지만,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 2023년엔 56%나 비싼 격이 됐다. 우리나라 식료품 물가가 이렇게 비싼 건 농산물 중에서도 유독 노동집약적인 과일과 채소 가격 때문이다.
채소 중 상추 가격을 살펴보자. 농넷 빅데이터에 따르면 적상추 소매가는 2001년 기준 100g당 346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2024년에는 이 값이 1380원으로 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가 1.8배 증가할 때, 상추 가격은 3.9배나 비싸진 격이다. 원인은 인건비다. 현재 국내 상추의 대부분은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다. 굳이 따지자면 이것도 시설 농업이지만, 기계화 없이 전적으로 사람의 노동에 의존하니 노지 재배와 큰 차이가 없다.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철저하게 기계화가 진행된 논농사와는 거의 별개의 산업이다.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가 줄거나 노임이 오르면 채소 가격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을까.
비닐하우스는 크기가 작아 본격적인 기계 설비가 들어오기 어렵다. 자동화하기가 어려운 규모다. 그러니 농업 선진국들은 비닐보다 빛 투과성이 좋고 대형화가 가능한 유리온실을 지은 후 기계화로 효율을 높여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채소를 공급한다. 여기에 많은 걸 자동화한 스마트팜이 결합되면 효율은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팜에이트나 굴리 같은 국내 스마트팜 기업들이 살아있는 증거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은 우리나라에서 실현될 개연성이 그리 크지 않다. 영세 농민이 유리온실을 짓기 위한 값비싼 초기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충분한 자본을 가진 기업들은 규제 탓에 기업농으로 진입할 방법이 막혀서다.
공교롭게도 탄핵을 기점으로 개헌 논의에 불이 붙었다. 큼직한 권력구조 개편도 좋지만, 해방 공간에나 유의미했을 경자유전(耕者有田) 같은 조항부터 개정해 먹고 살 살림살이 걱정을 줄여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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