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국가 지정에 숨은 코드, 美CIA가 국정원에 사전 경고 안 했다면 상황 심각

조경환 성균관대 겸임교수(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 2025. 3.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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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간 한미 신뢰…對한국 핵기술 정보·방첩 ‘주의보’
美가 의심하는데 日·英·佛은 어떨까…‘한국 핵무장론’이 가져온 후폭풍

(시사저널=조경환 성균관대 겸임교수(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

실용주의 철학자인 존 듀이는 문제를 잘 정의하면 절반은 이미 해결된 것과 같다는 논리를 폈다. 아인슈타인은 질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오래된 문제를 새 각도에서 바라보는 문제의 형성이 그 해결책보다 본질적이라고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3월14일, 올해 1월초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했으며 4월15일 발효한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는 3월17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 문제가 이유"라는 공지를 냈다. 이어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3월18일 "수출 민감 품목을 다루는 에너지부 산하 다수 국립연구소에 작년 한 해만 2000명 이상의 한국 학생·연구원·공무원이 방문했고, 일부 민감 정보를 잘못 다루어 리스트에 오른 것이며, 별일 아니다"고 했다. 3월17일에는 미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도급업체 직원이 2023년 10월에서 2024년 3월 사이에 수출통제 특허 정보인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에너지부의 감사에 적발돼 해고됐으며,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가 합동수사 중임이 알려졌다.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에너지부 ⓒUPI 연합

美에너지부의 정보·방첩국, 주로 CIA 출신이 맡아

민감국가 문제를 진단하는 첫째 관점은 리스트 관리기관인 에너지부 정보·방첩국(DOE-IN) 및 국가핵안보청의 창설 경위와 그 역할에 모아진다. 

정보·방첩국은 독일의 핵 개발 정보 수집 및 미국의 핵 개발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밀을 지키던 2차 세계대전 때에 기원을 둔다. 1993년 클린턴 행정부는 에너지부의 정보와 방첩 조직을 정보공동체에 포함해 국가정보장의 감독권 아래 두었다. 1996년, FBI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대만계 연구원인 리웬호를 최신의 'W88' 핵탄두 기술 문건을 중국에 넘긴 혐의로 수사하자, 정보공동체 내에 파란이 일어났다. 1998년 2월, 클린턴 대통령은 에너지부의 정보와 방첩 요소를 각각 조직화한 뒤, 방첩국장은 FBI 고위직으로 임명하고, 에너지부 장관은 물론 중앙정보국장(CIA)과 FBI 국장에 직보 권한을 부여했다. 2000년에는 국방수권법에 의해 국가핵안보청이 창설됐다. 핵무기와 원자로 안전, 연구개발을 포함해 미군의 핵 프로그램을 책임지게 했다. 핵무기 비축을 설계·운영하며 핵 반확산 기술과 정책 해법을 제시토록 했다. 

지금의 에너지부 정보·방첩국은 2007년 국방수권법에 의거, 핵 정보와 방첩의 통합기관으로 발족됐다. 국장은 주로 CIA 출신이 맡아왔으며, 에너지부 장관이 국가정보장의 동의를 얻어 임면한다. 해외정보 및 방첩 등 정보공동체의 사안에 대한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한다. 예산은 국가정보비를 쓴다. 미 전역의 30여 개 사무소에, FBI의 합동 테러TF·사이버 합동TF와 연동하며, 국가정보장실 국가대테러센터를 비롯해 정보공동체의 17개 정보기관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째, 정보·방첩국이 핵 비확산·핵 안보가 전업인 점이 주목된다. 핵무기와 핵 주기 프로그램, 핵물질 안보와 핵 테러리즘, 전략적 과학기술 개발 등 외국의 핵 능력과 핵 활동에 관해 독보적인 정보를 생산, 배포한다. 에너지부의 시설·인원·지식재산권에 대한 방첩 분석 및 조사를 한다. 17개 국가연구소·사무소의 내부자 위협을 관리한다. 국가핵안보청과 협력해 해외 사이버 사고에 대응한다. 

셋째, 민감국가는 그 정의에서 의도가 짐작된다. 국가 안전보장과 핵 비확산, 지역 불안, 경제 안보 위협, 테러리즘 지원을 이유로 열거한다. 민감국가 출생·국적자 혹은 그 정부, 종사자, 기관·조직에 고용된 사람들이 30일 내외로 에너지부의 시설 방문 및 과제 수행 시 주의 대상이다. 모든 방문과 과업은 45일 전에 요청서를 내야 하며, 초청기관은 방문 또는 임무 완료 후 5일 안에 '효과 평가 및 미래 방문·과제 수행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보기관들의 방첩 그물망과 까다로운 페이퍼워크가 그려지는 대목이다.

보안이 물샐틈없는 미국 정보공동체의 의도나 행동방책을 외부에서 알 도리는 없다. 그렇지만 거대 관료 네트워크가 움직일 때는 심각한 위협 인식과 보안규정 위반의 증거 누적, 그리고 복잡다기한 심의 과정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핵 비확산과 방첩에 촉각을 곤두세울 CIA와 FBI, 에너지부 정보·방첩국이 2023년 1월11일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국방부 업무보고 때의 발언을 놓쳤을 리는 없다.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오랜 시간이 안 걸려서 우리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가질 수 있겠죠." 높아져가는 국내의 핵무장 여론이 대통령을 움직였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공직사회의 생리상 외교·안보·국방·과학기술·에너지 부처와 연구기관 종사자들의 생각이나 정책 집행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국정원은 정보망을 가동하고 부처들은 연구용역에 착수했을 공산이 크다.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내부 모습. 이곳의 한 직원이 원자로 설계 자료를 갖고 한국행 비행기에 타려다 적발됐다고 한다. ⓒINL 홈페이지

수미 테리 체포, '한국 핵무장' 옹호 때문 분석도

미국은 이후 2023년 4월, 워싱턴 선언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구축을 선물하고 윤 대통령의 핵 비확산 준수 약속을 받아냈지만, 그 이틀 후 하버드대 강연에서 "마음만 먹으면 한국은 1년 안에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 내에서 한국의 핵 추구에 대한 경계심은 커졌다. CIA와 FBI가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CIA는 2003년을 전후해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인 AQ 칸의 핵확산 조직망 및 리비아의 핵 개발 계획을 확인·견제·차단한 이력이 있다. 

그 첫 액션으로 그해 7월 FBI는 한국계 재미 안보 전문가인 수미 테리를 체포했다.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이라지만, 10년 넘게 국정원과 일상적으로 교류하던 정상급 싱크탱크 종사자를 구속한 것은 그 무렵에 한국 핵무장을 옹호하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미·중 기술 경쟁과 AI 경쟁은 가히 전쟁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8월 "중국 유학생은 다 스파이"라고 했다. 중국은 2023년 7월 강화된 반간첩법으로 핵심기술 방첩에 혈안이다. 기술전쟁에 '70년 한미동맹'을 찾은들 무망하다. 민감국가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것이 당장 별일이 아닐 수 있겠으되, 미국 원자력 인원·시설 접근 및 고등기술 연구 협력에 대한 제약은 아프다. 더 큰 문제는 금이 간 한미의 신뢰다. 만약 CIA가 국정원에 경고조차 안 했다면, 정보 협력의 전반을 성찰해야 마땅하다. 미국이 의심하는데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 서방은 어떻겠나? 한국 핵무장론의 글로벌 여파는 넓고 깊다. 그 후과가 두렵다. 

조경환 성균관대 겸임교수(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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