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으로 나눌 순 없다… 애틋한 눈으로 본 인간군상

맹경환 2025. 3. 2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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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계간지 '21세기 문학'에 중편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로 등단한 심아진 작가는 단편과 장편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김용익소설문학상과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신작 소설집에서는 "기대기에 너무 쉬운 양극단만이 우리 생의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작가의 말처럼 선악 이분법만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 이웃,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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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책과 길]
안녕, 우리
심아진 지음
상상, 252쪽, 1만6000원
소설집 ‘안녕, 우리’의 심아진 작가. 그는 “소설을 통해, 단지 명명되지 않을 뿐인 무한한 사연 가운데 넘어지고 통곡하고 손을 뻗어 구원을 청하기도 하고 그 손을 잡기도 하고 오히려 비틀어 버리기도 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심아진 작가 제공


1999년 계간지 ‘21세기 문학’에 중편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로 등단한 심아진 작가는 단편과 장편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김용익소설문학상과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에게는 또 다른 이력이 있다. 2020년 필명 ‘심순’으로 쓴 동화 ‘가벼운 인사’로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번 신작 소설집에서는 “기대기에 너무 쉬운 양극단만이 우리 생의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작가의 말처럼 선악 이분법만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 이웃,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만나볼 수 있다. 수록 소설 전반에는 구병모 작가의 표현처럼 “결코 죽지 않았으나, 오래도록 잊힌 나머지 죽었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각자의 어휘 실력에 따라 국어사전을 뒤적이는 수고는 편차가 클 것 같다.


첫 작품 ‘안내’는 “인상부터 기이한” 하숙집 주인 차휘랑 이야기다. 고작 20대 초반의 젊은이지만 ‘하오체’를 구사하는, 도무지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사람이다. 입주 첫날 내민 안내문에는 ‘밥 먹고 바로 눕지 않기(바로 누우면 소 된다)’, ‘명절에 빨래하지 않기(평생 빨래할 팔자)’ 등 미신 같은 금기 사항들로 가득하다. 놀라운 솜씨로 전문식당에서나 먹을 법한 아귀찜과 닭볶음탕도 척척 내놓는다. 사주팔자도 잘 본다. 다른 하숙생들은 차휘랑에게 무한 신뢰를 보낸다. 식탁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번에 쥐면 복 나간다는 지적에 환경과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이도 흠칫 놀라 얼른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아 테이블에 내려놓기도 한다. 막 하숙집에 자리 잡은 성준의 눈에는 모두가 비이성적이었다. 집 안에 우산을 펴놨다가 “이리 우산을 펴 놓으면 가난살이 못 면하요”라는 지적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성준은 하숙집 문화에 점점 녹아든다.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인 성준은 차휘랑에게 막무가내로 조른 것이 있었다. 결국 차휘랑이 알려준 “원혼이 사랑을 방해하는 곳, 잘 사귀던 연인도 단번에 헤어지게 만드는 곳”으로 여자친구와 여행길을 위해 대문을 나서는 성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다.


표제작 ‘안녕, 우리’는 마흔에 접어든 대학 친구들과 가족이 함께 경마장에서 보내는 하루를 그린다. 경마장은 “찬란한 이십 대”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다. 그때는 그들이 “자신과의 거리를 상실한 채 확신에 차서 몸을 재게” 움직였고, “일관성을 갖지 않았을 뿐, 포기라는 것을 몰랐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뱃살 두둑한 아저씨들이 됐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날씬한 해설사에게 집단적으로 설레기도 한다. 요란한 하루를 보내고 헤어질 때 누군가 “안녕, 우리……”라고 말한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려 말한다. “아름답고 푸른 나, 청춘은 그걸 작별 인사로 받을 생각이 없다. 스러질 생각이 없다. 언제든 다시 인사할 것이다. 안녕, 우리…….” 헤어질 때도 쓰지만 만날 때도 쓰는 인사말이 ‘안녕’이다.

소설집에는 한 번에 여러 여자를 만나는 남자(‘불안은 없다’),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 외국인 노동자(‘흑돔을 모십니다’), 연인을 잃고 연인의 반려견을 하나둘 떠나보내며 기억을 되짚는 남자(‘절정의 이유’)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단지 명명되지 않을 뿐인 무한한 사연 가운데 넘어지고 통곡하고 손을 뻗어 구원을 청하기도 하고 그 손을 잡기도 하고 오히려 비틀어 버리기도 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담고자 했다”면서 “그 와중에 아프고 슬프고 우스꽝스럽게 남겨진 무수한 감정의 편린을 줍고자 애썼다”고 말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은 그의 말처럼 “애틋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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